·「재연 스님 - 입산」
탄천
종소리를 멀리 내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일주문 앞에 열 아홉 살을 내려놓고 다시 한 걸음,
마음을 다 하여 마음 없는 곳에 이르기 곳에 이르기 위하여,
거칠 것 없는 대자유를 얻기 위하여,
새벽 공기처럼 싸아한 청년 행자의 상처와 각오가 초발심을 잃고 부유하는 삶의 어깨를 향하여,
때로는 죽비소리처럼,
때로는 새벽 숲을 일깨우는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스며든다. - 책 뒷면 표지에서.
함평댁
후원 한 쪽에서 공양주 보살 함평댁이 울고 있었다.
부목 처사는 홀애비 김 씨가 늦여름 이래 지금까지 해다 주는 나뭇단이 온통 가시투성이란다.
손바닥에 박힌 맹감나무 가시를 뽑아들고 훌쩍거리며 말했다.
"썩을 놈에 인간, 그저 오기만 그득해갖고.
시방 내 나이 쉰이 다 되어서 무슨 상득을 보겄다고 그런 서방을 봐?"
진즉부터 짐작이야 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함평댁의 이야기로 모든 게 확실해졌다.
추근대는 김 씨의 청을 거절한 대가로
밥 짓는 나뭇단 속에 거칠고 사나운 가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 별스런 프러포즈, 별난 시위도 다 있다.
흘끔 함평댁을 훔쳐보며
"보살님은 참 좋겠다. 얼마나 좋으면 그걸라구요." 하고 말했더니
함평댁이 코를 패앵 풀고 치마 끝으로 훔치며 갈랜 목소리로 투덜댔다.
"하이고, 모르는 소리 허덜 말어요.
세상에 맹감나무는 아무것도 아녀라오.
공단 저고리를 줘도 귀찮은 판에 산초나무 가시를 보면
그 인간 속 구멍이 꼭 그 모양으로 생겨먹은 것 같아서 지긋지긋 허게 싫당게."
누가 참견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그대로 가다가는 더 험해질 조짐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노랑 수건 노릇을 해야 될 것 같다.
- 1971년 11월 일
※ 이 글은 <입산>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재연 스님 - 입산
문학동네 - 1999. 02. 19.
탄천 [t-07.11.03. 20211103-15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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