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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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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 엄마와 나의 생일

by 탄천사랑 2007. 10. 30.

· 「고혜정 - 친정엄마」

 

 

 

엄마와 나의 생일

엄마의 생신이 돌아오면 늘 우리 가족들은 시골로 향한다.
생신이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부담도 없고 움직이기가 좋다.

그런데 폼 나게 엄마 생신을 축하하러 가기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엄마를 힘들게만 하고 온다.
"엄마는 현금을 더 좋아하지?" 하고는 잘난 봉투 하나 내밀어놓고 그때부터 며칠간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꼼짝하지 않고 뜨뜻한 온돌방에서 뒹굴뒹굴한다.

엄마는 그 잘난 봉투 하나를 생일 선물로 받고, 딸, 사위, 외손주들의 수발을 죽어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일날 아침에도 누가 생일상을 차려주기는 커녕 
당신 손으로 준비해 자식들 깨워서 먹이고 당신도 미역국에 한술 말아 들었다.

그게 미안해서 남편이 한마디 하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한 것보다 엄마가 한 게 더 맛있잖아"

그러고는 겨우 설거지 한 번 하는 정말 못나고 게으른 딸이다.
엄마가 '괜찮다. 나는 이게 재미다'하면 난 다 믿어버린다.
아니다 믿고 싶다. 왜? 내가 하기 싫으니까.

그런데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엄마의 굽은 등을 보며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돈 봉투 대신, 
 내 손으로 끓인 미역국으로 생신 상 한 번 차려드리고 싶다'라고.
엄마는 정말 여러 해 동안 내 생일상을 차렸다.
그것도 정성껏, 마음속으로 딸의 행복과 무병장수를 빌며.

나는 팥칼국수를 참 좋아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가 해주는 팥칼국수를 먹으며 자랐다,
특히 내 생일에는 엄마가 꼭 이걸 해주었는데, 생일에 국수를 먹어야 명이 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팥칼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먼저 팥을 잘 씻어서 푹 삶고, 
양파 망 같은 데다 넣어 양금을 내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홍두깨로 밀고,
둘둘 말아 썰어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 끓이고....,

내 생일이 양력 8월이니 오죽 더웠겠는가.
그런데 엄마는 그 더위에 딸이 좋아한다고, 
딸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며 팥칼국수를 매년 생일날 해주었다.
어른들 표현처럼 정말 '팥죽 같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이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행사로 받아들이며 지냈던 것 같다.
엄마의 깊은 마음은 알 리 없는 정말 못난 딸이었다.
딸은 시집가면 그때부터 엄마 마음 알고 진짜 딸 노릇 한다고 했던가.

나도 결혼하고 나서 새록새록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 마음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속 썩이면 속상할 뿐이지만 자식이 속 썩이면 심장이 녹는다'라는 말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렇게 여자는 결혼해서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모양이다.

나는 결혼하고는 생일에 한 번도 팥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시집을 오고 나니 아무도 내 수명에 대해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까.
늘 내 걱정을 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딸 바라기 꽃 우리 엄마가 아니면,
내 생일을 그렇게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걸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내 생일에 엄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아침이면 전화를 해주었다.
'생일날 잘 먹어야 일 년 동안 잘 먹는 것이니 잘 먹으라는 얘기와 꼭 한 끼는 국수를 먹으라'
라는 내용이다.
그래야 명이 길다고.

결혼한 여자의 생일은 그녀를 낳아준 엄마 외에 누가 또 기억해 줄 것인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 엄마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지내다가 세상에 나오려고 무진장 애쓴 나와,
이렇게 우리 둘이서 우리 식으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나는 언제부턴지 내 생일이면 엄마에게 조금씩 돈을 부친다. 
그리고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 더운 삼복더위에 나 낳느라 고생했지? 
  내가 돈 조금 보냈으니까 시원하고 맛있는 거 사 드셔.” 

처음에 엄마는 너무 놀라고, 감격해서 막 울었다. 
“세상에, 지 생일날 선물 안 히준다고 지랄허는 딸년은 있어도 
  지 생일날 저 낳느라고 고생했다고 돈 부쳐주는 딸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걸 두고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부터는 누구누구랑 맛있는 거 사 먹었다고 전화도 해주며 좋아했다.


세상에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생일날, 작은 선물이나 돈을 준비해서 부모님께 드려보라고,
아마 부모님은 대견해 하며 그걸 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실 것이다.

연세가 들면 자식 자랑하는 재미가 큰 힘이고 삶의 활력이라는 것을 우리 자식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 이 글은 <친정엄마>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고혜정 - 친정엄마
함께 - 2004. 08. 07.

[t-07.10.30.  20240321-135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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