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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피정

시월의 마지막 날

by 탄천사랑 2007. 10. 31.

 

 

 

며칠 기온이 내려가 바람 불고 춥더니 오늘은 따뜻한 날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열 두시가 넘어 명동으로 갔다
가로수 잎들은 아직 단풍이 든 채로 매달려 있는 것이 많았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과 교육관으로 들어가는 마당은 아직 예쁜 가을꽃이 피어있다

커피를 한잔 타들고 나는 언제나 처럼 교육관 옆문을 열고 수녀원 안뜰로 통하는 좁은 정원을 걷는다
그곳은 조그마한 뜰과 장독대 그리고 정원수와 꽃밭이 있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이 조그마한 마당을 낀 작은 꽃밭은 수녀님들의 정성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

철 따라 잎이 무성하고 저마다의 색깔로 꽃을 피우는 화초들로 뜰안은 언제나 싱그럽다
이곳에서는 수를 다한 커다란 나무등걸도 의젓하게 모양을 갖추어 화초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잎만 무성한 아욱같이 생긴 화초도 미움받지 않고 화단의 일원이 되어있다

이곳은 은퇴수녀님이 사시는 곳이란다. 
수도복 속의 나이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자세히 뵈면 거동이 불편하신 수녀님을 곧 알아보게된다

저만치 보이는 장독대에서 봄부터 장독대를 돌보는 수녀님이 계신다.
된장도 담그시고 간장도 담그시고 
다른 장독들을 관리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언제나 장독대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본다

오늘은 다른때보다 좀 어수선한 모습을 본다. 
장독대를 보시는 수녀님은 마당 한가운데 서 계시고 
커피잔을 든 나와 얼굴울 마주치자 웃으며 눈인사를 드렸다

느닷없이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이오 사변이 일어날 때가 몇 살이었어?' 

나는 깜짝놀라서 똑바로 선채로 서있는데 어디서 남자의 목소리가
'열네 살이었어요' 하니 
'응 그랬어' 하신다.

남자는 정원 손질을 하고 있던 정원 사였나 보다. 
할머니 수녀님은 천천히 걸어서 수녀원 안으로 들어가신다. 
정원사가 
'수녀님 부축해드릴까요?'
'괜찮아. 무릎이..... '

평생을 그리스도 정배로 사시다가 은퇴하시어 
수녀원 장독대를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 지금도 그리스도 정배이시겠지..

싸늘히 식은 커피를 쭉 들이키며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내년에 오는 가을날에도 
저 할머니 수녀님이 장독을 손질하시며 낙엽이 깔린 이 뜰에서 
나와 미소를 지으며 조우하기를 희망한다

돌아오는 차 안 
어느 가수가 부르는 '시월의 마지막날' 이란 노래를 부른다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하 그래 오늘이 내생일이지 
'시월의 마지막 날'


2003 시월의 마지막 날

[t-08.10.31.  20221021-17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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