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 이경식 논설위원」
국내외 전문기관들 "한국 소멸 가장 우려"
세계 최악 저출산 탓..수도권 자원 분산이 존속 위한 최선 해법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란 종은 멸종하고 싶어서 환장한 것 같다.” 최근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3년 간격으로 발생하는 전염병, 대형화하는 자연재해 등 환경파괴의 후유증이 극심한데도 인간은 여전히 반생태적 문명에 젖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보듯, 핵무기 사용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니 어찌 멸종 우려가 나오지 않겠는가.
최 교수는 예루살렘히브리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유발 하라리 교수와의 토론 얘기도 전했다. 인간의 생존 가능 시간을 향후 300년이라고 주장한 하라리에게 “이번 세기를 못 넘길 것 같다”고 했다가 그 근거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우리는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며 인간의 멸종 위기를 경고한 바 있다.
최재천과 하라리의 경고는 한국인에게 특히 심각하게 다가온다. 한국인이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 가장 먼저 멸종할 것으로 보여서다. 실제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간문제연구소는 지구상에서 제일 빨리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2009년 유엔미래포럼은 ‘유엔미래보고서2’에서 2305년이면 우리나라에 남자 2만 명, 여자 3만 명가량만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제언’에서 2100년 한민족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이어 2500년에는 33만 명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했다. 2014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2136년 우리나라 인구가 1000만 명으로 감소한 뒤 2750년 소멸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진단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의 평생 출생아 수)이 2013년 수준(1.19명)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뚝 떨어졌다. 세계 최저인 데다, 1명 아래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소멸 시기가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감사원은 지난해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 감사보고서’에서 2117년이면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 8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상의 국가 소멸이다.
호모 사피엔스 중 멸종 1순위가 한국인이라는 데 대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전문기관이 의견 일치를 본 셈이다. 그것도 소멸 시기가 향후 100년으로 단축됐으니, 이보다 더 화급한 사안이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들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38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10대 공약 중 여섯 번째에 ‘출산 준비부터 산후조리·양육까지 국가책임을 강화한다’는 공약을 올렸지만, 손에 잡히는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문제 인식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그는 “좋은 직장이 밀집한 수도권에 지방 청년이 몰리면서 지방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해지고, 수도권도 높은 집값으로 결혼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돼 저출산이 심화되는 것”이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으로 제시했다. 감사원 분석을 반영한 정책 방향 설정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수도권의 청년층(15~34세) 1인 가구 비율은 35.4%로 비수도권(13.8%)의 배를 웃돈다. 결혼 5년 미만 신혼부부 중 무자녀 비율도 수도권(43.6%)이 비수도권(32.6%)보다 11% 포인트나 높다.
인구,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이 낳은 현상이다. 국내 대기업의 71.4%가 본사를 수도권에 두고, 지역내총생산(GRDP)의 52.5%가 수도권에 쏠린 경제 불균형이 원인이다. 청년층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취업과 주거 등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결혼과 출산은 줄어들거나 늦어진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출산율(0.63명)은 전국 최저다. 인천(0.78명)도 부산(0.73명) 다음으로 낮고, 경기(0.85명) 역시 하위권이다. 감사원은 “수도권의 낮은 출산율이 우리나라의 저출산을 주도한다”고 했다.
최선의 해법은 수도권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메가시티(초광역도시) 조성이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그를 통해 비수도권이 회생 기반을 마련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더러 목표 달성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비수도권이 메가시티를 만드는 동안 이미 형성된 ‘수도권 메가시티’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게 뻔해서다. 수도권의 비교우위가 비수도권 인구와 자원을 계속 빨아들이며 비수도권의 메가시티 추진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비수도권이 고사하면 수도권도 무사할 수 없다. 전국이 자원을 고루 나누는 ‘균형발전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공멸은 불가피하다.
글. - 이경식 논설위원
국제신문 - 2022.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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