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국회도서관 - 인터뷰 김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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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일이 곧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의 이유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그는 48년간 시를 써왔다. 현역 작가로 쉬지 않았다.
여든 둘, 뭇사람들이라면 하던 일 모두 내려놓을 나이.
김광규 시인이 생로병사, 사는 이야기 가득 담긴 12번째 시집 『그저께 보낸 메일』을 출간했다.
‘일상이 삶의 가장 정직한 자취’라는 이 시인의 시는 저마다의 삶에 향기가 있음을 알려준다.
열두 번째 시집을 내셨습니다. 7년 만이네요.
1975년에 데뷔를 하고
1979년에 첫 시집을 낼 기회가 있었는데 군부독재 시절이라 바로 발표하지 못했어요.
어느 장교가 검열을 했는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 ‘늪으로’라는 표현이 걸렸어요.
그건 40대 중년의 인생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데, 다르게 해석한 거죠.
또 <어린 게의 죽음>에서는 ‘군용 트럭에 깔려’에 빨간 줄을 그었다더군요.
결국 재심사를 해서 1980년 첫 시집이 나왔죠.
이후로 대략 4년에 한 번씩 그간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아 시집을 냈는데 이번에는 좀 늦어진 셈이지요.
팬데믹의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세상이 다 멈췄던 시간이 오히려 시인에게는 고요하게 시 짓기 좋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한데요.
그렇지 않아요.
팬데믹이라는 압력이 오히려 삶의 탄력을 위축시켰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서로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다 끊겼잖아요.
가끔 문학과 지성사에 나가 나 같은 노인들이 만나 술 한잔하며 나누던 이야기도 못 하게 됐죠.
원고 청탁도 뜸해졌고요.
마지막까지 쓰게 만드는 게 바로 원고 청탁의 압력이거든요.
몇 줄 메모해서 묵혀두었던 시상이 청탁을 받아야 한 작품으로 완성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나중에 시집 한 권을 묶게 되니까요.
시인은 세상과 조금 떨어져서 조용히 골방에서 혼자 작업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서 오해를 했네요.
혼자 하는 작업이란 말은 맞아요.
시는 원래 혼자 조용히 숨어서 쓰지요.
시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줍어해요.
자기 내면을 표출하는 게 시의 본령이라 그런 것 같아요.
수줍게 쓴 글을 출간하실 때 기분은 어떠세요? 그때도 수줍으신 건가요?
쓸 때와 발표할 때는 다르지요.
부끄러운 글은 되도록 쓰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쓰고 나서 후회할 시는 쓰지 않는 것이죠.
항상 자기검열을 합니다.
아주 나중에, 먼 훗날 누군가 읽었을 때 내가 그 앞에서 부끄럽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고쳐 나갑니다.
많게는 스무 번 가까이 고치고 나서야 펜을 내려놓지요.
어느 때 비로소, ‘아 완성이구나’하고 퇴고를 멈추시나요?
내 나름대로 기준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읽어서 알 수 있는 단어, 명료한 구문을 사용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말,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에 기준을 두고 고쳐 쓰지요.
요즘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난해한 시들이 굉장히 많죠.
평범한 생활인들이 나의 시를 읽고 쉽게 그 뜻을 파악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 시에 ‘일상시’라는 별명이 붙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김광규 시만의 심오함이 있습니다.
다 아는 단어이고 표현이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새로운 깨달음을 주거든요.
쉬운 줄 알았는데 어려워지는 시랄까요?
그건 독자의 몫입니다.
양파 껍질을 까면 껍질 하나씩 벗겨지다가 안쪽에서 매운 속이 나오지요.
거기까지 들어가 뜻을 해독해서 매운맛을 음미하는 사람이 있고, 껍질만 까는데 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독자는 여러 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읽어서 알 수 있는 텍스트에 기준을 두는 것이지요.
꼭 매운 속까지 맛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책 제목인 『그저께 보낸 메일』만 봐도 다 알 수 있는 단어들이네요.
네, 그렇지요.
시집 출간 이벤트로 독자 열 분에게 보낸다고 출판사에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원래는 아무개님에게, 라고 쓰는데 익명의 사람에게 사인을 하려니 멋쩍더라고요.
궁리하다가 '그저께 보낸 메일 받아 보셨나요? 김광규' 이렇게 적었습니다.
누가 받아도 의미를 알 수 있는 제법 그럴듯한 인사죠?
제목부터 쉬워야 한다는 게 내 나름의 겸손한 시학입니다
선생님의 시가 일상시라고 불리는 데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구문도 있겠지만,
주변에 대한 관찰이 돋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에 영감을 받으시는지요?
특별한 영감이라는 걸 믿지는 않습니다.
내 시는 일상을 살면서 체험한 사물에서 비롯됩니다.
일상이 가장 정직한 인생이잖아요.
그걸 관찰해서 쓰는 것이죠.
따로 영감을 받는 건 없지만 문득 떠오르는 시구는 있습니다.
자다가도 떠오르고, 밥 먹다가도 떠오르죠.
그래서 주머니 속이나 머리맡에 항상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두고 삽니다.
꿈을 꿨는데 잊기에 아쉬우면, 자다 일어나서라도 몇 글자 써 놓지요.
금방 잊어버리니까요
이번 시집에는 죽음, 소멸에 관한 이야기가 부쩍 많습니다.
아무래도 요즘의 일상과 연관이 있겠지요?
내가 지금 여든 둘입니다.
내 또래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어요.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딱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생로병사라고 하죠.
늙고 병드는 건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겪게 됩니다.
요즘 그런 걸 겪고 있어요.
40대에 늪으로 간다고 썼는데, 본의 아니게 계속해서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 벌써 후각을 상실했고, 왼쪽 눈을 수술했고, 심장에도 배터리를 넣었죠.
<사라진 냄새골>이 후각을 상실하신 것에 관한 이야기죠.
맞습니다.
어느 5월에 산길을 걷는데 아카시아 향이 나지 않았어요.
아내에게 물어보니 천지가 그 향기로 꽉 찼다는 거예요.
그때부터였어요.
조금 있으니 멸치 볶는 냄새는 희미하게 나는데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후각을 잃었죠.
5월은 해마다 오고, 아카시아 길을 걸으면 조금 슬픈 느낌이 듭니다.
이런 시인의 체험, 경험,
자신만의 느낌이 시로 나타나는 것인데 요즘 그럴듯하게 글을 쓴다는 AI ChatGPT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계속 시를 지을 수 있을까요?
ChatGPT 덕에 학생들이 숙제할 필요가 없다고들 하던데요(웃음).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 AI가 입력된 빅데이터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이더군요.
하지만 재료가 많다고 시가 쓰여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보낸 메일』에 실린 <그 짧은 글>이라는 시를 읽어보시면 시가 어떤 것인가,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알 수 있을 겁니다.
ChatGPT가 지은 시를 읽어봤는데 제법 시 같은 문장도 있었어요.
그럴듯하지만 그건 창작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걸 조합했을 뿐이니까요.
시인마다 각자의 율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도 표현할 수는 없겠죠.
더군다나 고뇌에 의해서 쓰여진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시란 본질적으로 고뇌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기 때문에
AI가 아무리 시를 쓴다고 해도 인간의 시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최근에 ChatGPT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발견했는데 AI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공지능의 능력은 비가역적이고 절대적인 능력을 갱신하고 있지만,
그것을 창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으로 시작(詩作)을 시도하지 말 것!”
안심이 되네요.
시 짓기, 고뇌와 창작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사유하고 관찰하면서 시를 읽고 지으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는 『월간 국회도서관』 독자들이
『그저께 보낸 메일』 외에 서가에서 골라보았으면 하는 시집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여러 해 전 문학 행사에 초대받아서 갔던 국회도서관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도서관을 찾는 모두가 즐거운 독서의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제 시집 딱 한 권을 추천한다면……, 『그저께 보낸 메일』 바로 전에 출간된 『안개의 나라』를 들겠습니다.
나의 희수 기념 시선집이고, 224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김광규 시의 흐름을 알 수 있죠.
표제시인 <안개의 나라>는 12개국에서 번역 소개됐어요.
콜롬비아에서 열린 대규모 세계시인대회에 초청받아 갔을 때 개막식에서 이 시를 낭독했는데,
다음날 현지 대표 일간지 1면에 실렸습니다.
자연으로서의 안개,
뿌연 현실을 대변하는 안개,
불투명한 미래를 뜻하는 안개,
어느 나라에서나 공감하더군요.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짧은 글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 했지 *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호한 시학 아닌가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
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
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
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
비록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메마른 사막에 감춰진 수맥이라도
촉촉하고 부드럽게 살려내는
그 짧은 글이 바로 시 아닌가
어려운 시학 잘 모른다 해도
* 예컨대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학>에 나오듯.
-『그저께 보낸 메일』 시집 중에서
김광규시인
1975년에 등단 후 하루도 빠짐없이 시인으로 살았다.
인왕산 아래서 태어나 서촌에서 30년, 인왕산 서쪽 무악재 너머에서 50년을 살았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속의 삶을 살며 시를 지었다.
시는 이기지 못한 이들의 삶을 기록한 것이라 말하며
보통 사람들도 알 수 있는 언어로 9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200편 가까운 독일 시를 우리말로 번역 소개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p51)
글 - 이재영
출처 - 월간 국회도서관 - 2023. 04. Vol.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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