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N. 톨스토이 - 톨스토이 단편선 2」
일리야스
우파현 縣에 일리야스라는 한 바슈키르 인이 살고 있었다.
일리야스는 아버지에게서 큰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가 장가를 들고 나서 딱 일 년째 되던 해에 죽어버렸다.
그때 일리야스의 재산이라고 암말 일곱 마리, 암소 두 마리, 양 스무 마리뿐이었다.
그러나 일리야스는 깐깐한 한 집안의 주인으로서 살림을 늘려 나갔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고,
아침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부유해졌다.
일리야스는 서른다섯 애 동안을 일 속에서 지냈으며 마침내 큰 재산을 만들었다.
일리야스는 말 이백 마리, 소 백오십 마리, 양 천오백 마리를 가지게 되었다.
머슴들이 일리야스의 양과 가축을 쳤고 여자 일꾼들은 암말과 암소의 젖을 짜 버터와 치즈를 만들었다.
일리야스는 모든 것을 많이 갖고 있었고 인근에서 어느 누구도 일리야스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일리랴스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무엇이나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죽을 것도 없다."
- 지체가 좋은 사람들도 일리랴스를 알게 되었고 그와 친분을 맺고자 했다.
먼 데서 손님들이 그에게 찾아들었다.
일리야스는 누가 찾아오건 모든 사람들에게 말 젖으로 담근 술과 차, 양고기를 대접했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이내 양을 한 마리,
혹은 두 마리를 잡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으면 암말을 잡기로 하였다.
일리야스에게는 아들 둘, 딸 하나의 세명 자식이 있었다.
일리야스는 두 아들을 장가 들이고 땅은 시집 보냈다.
일리야스가 가난했을 때 아들들은 그와 함께 일을 했으며 말 떼와 양들을 지켰다.
그러나 부유해지자 아들들은 소일 삼아 일하기 시작했으며 한 아들은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한 아들, 큰 아들은 싸움을 하다 죽었고,
다른 아들, 작은 아들은 콧대가 센 여자와 결혼하여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며
마침내 일리야스는 그들을 제금(분가 시키기로) 내야 했다.
일리야스는 그 아들을 제금 내며 집 한 채와 가축을 주었다.
그리하여 일리야스의 살림은 줄었다.
그러고 나서 곧 일리야스의 양들에게 병이 덮쳐 많이 쓰러졌다.
이윽고 흉년이 들어 풀이 자라지 않았다. -
겨울에 많은 가축들이 죽었다.
그리고 또 가장 훌륭한 한 필의 수말이 있는 암말 떼를 키르기스인들이 훔쳐가 버렸다.
그리하여 일리야스의 재산은 줄었다.
일리야스의 가세는 차츰차츰 기울어 갔다.
그의 기력도 쇠하였다.
그리고 일흔 살에 다다르자 외투며 양탄자 말안장이며 포장마차를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가축마저 팔게 되어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어
일리야스는 아내와 함께 늘그막에 남의 신세를 져야 했다.
일리랴스에게 남아 있는 재산이라고는 몸에 걸치고 있는 입성, 외투, 모자,
단화 그리고 역시 할머니인 아내 쉬암
-쉐마기가 그 전부었다.
제금 낸 아들은 먼 나라로 떠나 버렸고 딸은 이미 죽어 버렸다.
그리하여 늙은이들을 돌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이웃인 무아메드쉬아흐가 늙은이들을 안쓰러워하였다.
무아메드쉬아흐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고 여느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일리야스에게서 음식대접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 내고 그를 동정하며 일리야스에게 말했다. -
"일리야스 씨, 제 집에 오십시오,
할머니와 함께 제 집에서 사십시오.
여름에는 수박밭에서 힘이 닿는 대로 일을 하시고 쉬암-쉐마기씨는 말 젖을 짜 마유주나 빚게 하십시오.
당신네 두 분이 먹고 입고 할 것은 제가 대겠습니다.
그 밖에 필요한 것은 말씀만 하시면 제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일리야스는 이웃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아내와 함께 무아메드쉬아흐 씨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윽고 길들어 버렸다.
주인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을 들이는 것은 이로웠다.
왜냐하면 이 늙은이들은 그 자신이 한 집안의 주인이었던 데다가 사리를 알고 있었으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때때로 무아메드쉬아흐로서는
그처럼 지체가 높았던 사람들이 그처럼 낮은 지체로 떨어져 버린 것을 보기가 딱할 뿐이었다.
한번은 무아메드쉬아흐한테 사돈들이 먼 데서 손님으로 찾아왔었다.
회교도의 사제도 찾아왔다.
무아메드쉬아흐는 양을 한 마리 잡아서 죽이라고 일렀다.
일리야스는 양의 껍질을 벗기고 창자를 빼낸 다음 통째로 구워 손님들 앞에 내놓았다.
손님들은 양고기를 먹고 차를 마시며 마유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주인과 함께 양탄자 위의 보료에 앉아 찻잔의 마유주를 마시면서 담소하고 있었다.
일리야스는 일을 치르고 나서 열려 있는 문가를 지나갔다.
무아메드쉬아흐는 그를 보자 한 손님에게 말했다.
"금방 저 문가를 지나간 늙은이를 보았소?'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놀라운 것이라도 있소?"
"그렇습니다. 놀라운 것이 있죠.
저 사람은 한때 이 고을에서 첫째 가는 부자였죠. 일리야스라는 사람인데 혹 듣지 못했습니까?"
"듣고요 말고요." 손님은 말했다.
"만나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소문은 멀리까지 나 있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내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죠, 그의 늙은 아내도 그와 함께 있으면서 말 젖을 짜고 있어요."
손님은 깜짝 놀라 혀를 차고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행복이라는 것은 마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인가 보아요.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어떻습니다까." 손님은 말했다
"그 늙은이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겠죠?"
"글쎄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조용히 차분하게 살고 있고 일도 잘하고 있거든요."
손님은 또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좀 해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그 사람의 생활에 대해서 좀 물어볼까 합니다만...,"
"그럼요, 괜찮다마다요!"
주인은 말하고 천막 뒤에다 대고 외쳤다.
"바바이 (바슈키르어로 할아버지라는 뜻) 이리 오세요.
마유주나 드십시다. 할머니도 부르세요."
그러자 알리야스가 아내와 함께 들어왔다.
일리야스는 주인이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도문을 외고 나서 문가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아내는 휘장 뒤로 가 안주인과 함께 앉았다.
일리랴스에게 마유주가 든 잔이 주어졌다.
일리야스는 주인이며 손님의 건강을 빌고 절을 하며 한 모금 마신 뒤 아래에다 놓았다.
"어떻습니까, 할아버지." 손님은 그에게 말했다.
"우리들을 보면서 처량한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지난날 행복하게 지냈던 자신의 이전의 삶과 지금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낼 경우에 말입니다?"
그러자 일리야스는 씩 웃고 말했다.
"내가 행복이 어떻고 불행이 어떻다고 당신에게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은 믿지 않으실 겁니다,
차라리 우리 할망구한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녀는 늙은 여자라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을 죄다 털어놓을 겁니다,
그녀는 이런 일은 있는 그대로 모두 말할 겁니다."
손님은 휘장 뒤에다 대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할머니.
할머니께서 지난날 행복했던 것과
지금의 고생스러운 처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슁암-쉐마기가 휘장 뒤에서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영감과 함께 오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행복을 찾았습니다만 찾지 못했어요,
지금 딱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어 머슴살이를 하게 된 지 두 해가 되었습니다만 우리들은 정말로 행복해요,
우리들에게는 그 밖의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손님은 깜짝 놀랐다.
주인도 놀랐다.
그러고는 엉거주춤 일어나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휘장을 걷어 올렸다.
할머니는 두 손을 포개고 서서 웃는 얼굴로 영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영감도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다시 또 말을 이었다.
"나는 정말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장난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오십 년 동안 행복을 찾았습니다만 살림이 넉넉했었을 때 그것을 찾지 못했죠,
이렇게 무일푼이 된 지금 남에게 얹혀살게 되고 나서야 더할 나위 없을 만큼의 행복을 찾은 겁니다."
"그럼 당신네는 지금 무엇이 그렇게 행복한 거죠?"
"그건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림이 넉넉했었을 때 우리 내외에게는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눌 틈도 영혼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도 신에게 기도를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걱정거리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무엇으로 대접해야 하나,
무엇을 선물해야 하나 하고 걱정해야 했죠.
손님이 떠나고 나면 이번에는 머슴들을 감시하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일을 하지 않고 놀며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려고 벼르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들은 물건이 없어지지 않도록 지켜야만 했어요.
그래서 죄를 지었죠.
행여나 늑대가 망아지나 송아지를 죽이지나 않나,
도둑들이 말을 훔쳐 가지 않나 하고 걱정거리가 그치지 않았어요.
잠을 잘래야 잠이 옵니까, 행여나 양이 새끼를 깔아 죽이는 것은 아닌가 해서요.
그래서 한밤중에 몇 번이고 일어나 둘러보러 나가곤 했어요.
좀 잠잠하다 싶으면 다시 또 걱정거리가 생기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겨울 동안 먹을 것을 비축한다든가 하는 따위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 영감님과 뜻이 맞지 않은 적도 있었지요.
영감님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저렇게 해야 한다든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욕설이 오가고 함으로써 죄를 짓기 시작하는 거죠.
이렇게 우리들은 근심 걱정이 그칠 날이 없이 죄를 지어가며 살다 보니까 도무지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어요."
"그러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아침마다 내외가 함께 일어나고
언제나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가 하면 말다툼을 하는 일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어요,
그저 걱정거리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 주인한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뿐이죠.
힘이 자라는 데까지 일을 하며 어떻게든지 주인에게 손해가 가지 않고 이익이 되도록 기꺼이 일을 하고 있어요.
집에 오면 점심이고 저녁이고 딱 마련되어 있고 마유 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추우면 땔감도 있고 모피 외투도 있어요.
이야기를 주고받을 짬도 있고 영혼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있고 신에게 기도할 여유도 있어요.
우리들은 오십 년 동안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왔었는데 이제야 겨우 찾은 겁니다."
손님들은 웃어 댔다.
하지만 일리야스는 말했다.
"여러분, 웃지 마세요.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삶입니다,
우리들은 나나 할망구나 어리석어 재산이 달아난 것을 두고 처음에는 울기도 하였습니다만
지금은 신께서 우리들에게 진실을 밝혀 주신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위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네의 선을 위해서
그것을 당신네들에게 밝히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회교도의 사제가 말했다
"그것은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일리야스 씨가 말씀하신 것은 모두가 진실 그것입니다,
그것은 책에도 쓰여 있습니다."
그러자 손님들은 웃기를 그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이 글은 <톨스토이 단편선 2>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L.N. 톨스토이 - 톨스토이 단편선 2
역자 - 박형규
인디북 - 2003. 04. 23.
[t-07.07.13. 20210702-18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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