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 2024. 01. 01.」
건강 유지의 필수조건 ‘원시생활’
신년 특별 인터뷰│미군 하우스보이 출신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
한국인에게는 화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울증과는 또 다른 이 병을 의학용어로 만들어 국제 의학계에 알린 사람이 이시형 박사입니다. 이후 그 치료법으로 세로토닌(신경전달물질)을 제시한 사람도 그입니다. 이 박사가 평생 세로토닌을 연구하고 그 중요성을 사회에 전파한 배경에는 그의 고단한 삶이 있습니다. 1934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는 중학생 때 한국전쟁을 경험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대구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난리 통에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그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로 끓인 찌개를 먹으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돼지에게 주는 죽이라고 해서 '꿀꿀이 죽'이라고 불렀던 음식입니다.
이후 입대해 대구 비행장 외곽 경비병으로 근무했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비행기가 내릴 때 비추는 유도등이 따뜻해 그 옆에 앉아있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미군 상사에게 걸려 심한 매질을 당했습니다. 서울대 상대를 다니다 피난 와서 셋방에 살던 형은 "원수를 갚으려면 예일대나 하버드대에 가라"고 했습니다. 대포 소리를 들으며 공부한 청년 이시형은 경북대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미국 예일대에 지원해 합격한 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1968년 예일대 정신과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경북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테니스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지지리도 못사는 한국의 현실은 화병이 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이를 견디기 위해 과하게 운동한 탓에 40대에 허리 디스크가 생기고 무릎이 망가졌습니다. 자기 몸도 관리하지 못하는 의사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치료가 아닌 예방에 관심을 두고 자연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이 화병 그리고 세로토닌을 평생 연구하고 전파한 배경입니다. 새해 구순이 되는 그를 시사저널이 만났습니다. 몸매며 걸음걸이며 표정이 2012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랐습니다. 복부 비만도 없고 지팡이 없이 걷습니다.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닐 정도로 기력도 정정합니다. 11년 전처럼 차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50년 동안 스트레칭과 명상 실천
2023년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고, 새해에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제가 13년 전부터 운영해 오는 사회공헌 사업인 세로토닌 드럼클럽이 있습니다. 중학생들에게 모둠북 연주(음의 높이가 다른 북을 다양하게 구성해 연주하는 형태)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23년 10월 전국 수백 명의 학생이 영주에 모여 모둠북 경연대회도 하고 합동공연도 했습니다. 아주 멋있는 한옥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장관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책 4권을 썼는데, 새해에 하나씩 출간할 예정입니다. 과거 출간한 책들은 모두 제가 관심 있게 연구한 사회정신의학이나 건강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것들이지만, 이번 책들은 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나 의사 생활에서 겪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라 저도 기대가 크고 독자들 반응도 몹시 궁금합니다.
일과 중 가장 먼저 하는 일과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방에서 스트레칭 겸 간단한 실내 운동을 합니다. 누운 채로 팔다리를 쭉 펴는 스트레칭을 하고 팔굽혀펴기, 스쿼트, 제자리 걷기 등을 합니다. 운동이 끝나면 20분 정도 명상합니다. 오늘 하루 어떤 일과가 있는지 되새겨보고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죠. 밤에 잠들기 전에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요즘도 책을 쓸 일이 많으니 책을 더 많이 읽습니다.
그런 사소한 신체활동이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건강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데, 뭘 하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운동과 명상을 50년 정도 하면서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할 수 있는 건강 습관을 한두 개 추천하신다면요.
무엇이든지 건강을 위한 습관은 모두 추천합니다만, 한 가지를 꼽자면 명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명상은 뇌의 피로를 푸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미국에선 이미 대기업도 직원들에게 명상을 추천합니다. 명상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이것저것 지켜야 할 것은 없습니다. 그저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누워서 해도 됩니다. 마음과 머릿속을 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잡생각이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에 저항하지 말고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흘러가도록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렇게 20분 정도 명상하면 머리가 상쾌해지고 뇌의 피로도 풀립니다.
하루 세끼 식단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평소에 먹는 한국 식단을 즐깁니다. 한국 전통 식단이 최고 건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항상 당근 주스를 마십니다. 스위스 최초 통합의료원인 벤나병원을 방문했을 때 벤나 주스라고 해서 당근 주스를 세끼마다 제공했는데, 그 뒤로 저도 항상 아침마다 당근과 사과를 즙을 내서 마십니다. 당근은 땅의 영양분을 받아들인 뿌리채소입니다. 90년 무탈했으니, 당근 주스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일주일에 2~3차례 강연이 있습니다. 하루에 강연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잡혀 있으면, 그 전에 준비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강연 후 청중의 질문에도 답변하고 간단한 사인회나 포토타임도 갖고 하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지방 강연이라도 있으면 말 그대로 오전부터 저녁까지 모두 강연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강연이 없는 날에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집필활동에 시간을 많이 보내곤 합니다. 이따금 산에도 갑니다. 등산은 아니고 둘레길을 걷는 수준이에요.
'장수의 늪'이라는 유병 기간 줄여야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약 82년이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유병 기간이 17년이나 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그것이 현대 서양의학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서양의학은 병변 제거와 치료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이것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예방과 관리에 소홀합니다. 그러면 내가 늙어 만성병과 생활습관병에 걸렸을 때 현대의학은 죽지 않을 만큼 치료는 가능하지만 완치는 어려워 항상 병을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사전에 병을 예방해 아예 병에 안 걸리는 것입니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현대인은 젊을 때부터 건강관리를 통해 노인이 됐을 때 질병과 만성병을 예방해 유병 기간을 줄여야 합니다.
저서 《신인류가 몰려온다》에서 유병 기간을 '장수의 늪'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과거에 장수는 누구나 원하는 희망과 축복의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냥 그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오래 살아서 걱정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환갑이나 지내고 어영부영하다 세상을 떠나는 노인이 많았죠. 그땐 장수가 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노인이 되면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힘든, 피할 수 없는 마의 고비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장수의 늪'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장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수의 늪은 세 가지 고비로 찾아와요. 첫째는 건강, 둘째는 경제, 셋째는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열악하고 부족하면 장수해도 괴로운 장수의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해 둬야 합니다. 젊을 때부터 생활습관을 개선해 노인이 됐을 때 생활습관병과 만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0·50대부터는 노인이 돼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금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혼자만 준비해선 안 됩니다. 친구·배우자·형제들도 함께 준비해 노년이 됐을 때 혼자 남지 않도록, 늙어도 여전히 친구와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늙어도 여전히 활발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건강에도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이 있을 텐데, 이를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원시생활을 하라고 답합니다. 소식하고 채식하고 걷는 삶입니다. 이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과도 밀접합니다. 제일 안 되는 것이 운동이어서 작심삼일로 끝나죠. 건강을 위해 조금 부지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폭음과 폭식입니다.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평소 강조하시는 '소식다동(少食多動)'인데, 어떻게 실천하면 좋겠습니까.
배고픈 상태에서 식사하면 배가 부를 때까지 먹게 됩니다. 만복 상태에 이를 때까지 별생각 없이 먹는 것이죠. 하지만 의식적으로 딱 80%만 배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식사하면 좋습니다. 공복이 가실 정도, 영양상으로 충분할 정도로만 식사하는 것입니다. 운동은 저절로 되는 신체활동이 좋습니다. 일부러 하는 운동은 의지가 약하면 오래 실천할 수 없어요. 장수 하면 생각나는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105세)를 며칠 전에 만났는데, 그는 2층에서 생활하다 물을 마시러 1층까지 내려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철학자가 의사보다 계획을 잘 짜놨습니다. 제가 강연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차는 멀리, 계단아, 반갑다'입니다. 건물 입구에서 멀리 주차해 걷는 시간을 늘리고 지하철이나 쇼핑몰에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자는 취지입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숨이 차는데 이것이 심호흡입니다.
의식적으로 80%만 먹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꼭꼭 씹어 오래 먹으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식탁에 30분짜리 모래시계를 놔뒀습니다. 밥을 먹으면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팽만감을 느끼기까지 20분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먹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대체로 빨리 먹습니다. 외국에서는 손님이 와서 저녁식사를 할 때 주부가 시장이 아니라 도서관에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다는 것이죠. 그만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래 먹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한국 사회의 결정적인 단점은 '충동'
정신 건강을 위해 세로토닌을 오랜 세월 강조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세로토닌은 뇌 신경전달물질로 흔히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물질 중 하나입니다. 세로토닌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분노·흥분·우울 같은 감정도 조절합니다. 마치 뇌 속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죠. 목 뒤쪽, 뇌 깊은 곳(봉선핵)에서 나오는 세로토닌은 우리의 행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처럼 흥분되고 격한 행복감이 아니라 잔잔하고 편안한 행복감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회정신의학적으로 세로토닌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는 산업사회로 경쟁과 빠름, 지성과 이성이 지배하는 격정의 세기였습니다. 21세기는 문화와 감성, 평화와 공존이 필요한 차분한 세로토닌의 세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와 세로토닌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한국 사회의 결정적인 단점은 충동입니다. 이는 때때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폭력사범 기소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16배 많다고 합니다. 절제가 안 돼서 그렇습니다. 절제에 필요한 호르몬이 세로토닌입니다. 기분이 높으면 낮추고 낮으면 높이는 역할을 해서 항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분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로토닌 결핍 증후군 환자입니다.
세로토닌 분비를 늘릴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로토닌의 재료로는 포도당, 트립토판, 비타민 B6 등이 있는데 이것 모두 우리가 식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물질입니다. 일반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로토닌 재료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로토닌 분비의 조건 3가지를 지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햇빛, 리듬, 스킨십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햇빛이 부족하면 계절성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 활성화가 잘되지 않아서 우울해지는 것이죠. 식사 후 좋은 공기가 가득한 공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20분 정도 산책하는 것이 세로토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리듬은 가벼운 조깅, 식사할 때의 저작 운동, 명상할 때 호흡 운동 등을 말합니다. 이런 리듬 운동은 세로토닌을 활성화합니다. 스킨십은 포옹, 악수, 어깨동무 등입니다. 이때 세로토닌이 분비돼 행복감을 느낍니다. 특히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행동도 포옹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엄마한테서 면역도 받습니다. 흔히 지중해 식단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사실 해산물과 채소일 뿐 대단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식사할 때 즐겁게 대화하고 웃는 생활습관입니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그들은 식사 때 서로 말을 많이 하고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식사 후 같이 20분 정도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면서 또 수다를 떱니다. 헤어질 때는 포옹합니다.
새해를 맞아 국민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현대사회에 두 가지 함정이 있는데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한경쟁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인데 무리해서라도 더 오르려 합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2024년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세로토닌 가득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10년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는 김형석 교수도 같이 모시면 좋겠습니다.
이시형 박사는…
1934년 대구에서 출생해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했다. 1968년 예일대학에서 신경정신과학 박사를 취득했다. 경북대 의대 교수를 거쳐 강북삼성병원에서 일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들었다. 자연의학에 관심을 두고 2005년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을 세웠고 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서울에 세로토닌문화원을 설립했다. 2010년 《세로토닌하라》를 내면서 '세로토닌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1995년 대한신경정신학회 벽봉학술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그가 90년간 쓴 책은 번역서를 포함해 120여 권이라고 한다.
글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출처 - 시사저널 신년 특별 인터뷰 http:// https://v.daum.net/v/20240101073806056
[t-24.01.02. 20230101-163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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