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국회도서관 2024. 01 02 vol.517 」
나답게 사는 것으로도 충분한 인생.
새해가 되었다. 보통은 이맘때쯤이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후회와 다짐을 번갈아 하며 내년에는 무엇을 더 ‘잘’ 해볼지 혹은 무엇을 ‘절대’ 하지 않을지를 힘주어 결심한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와 반복을 통해 좌절을 느끼다 30대가 되어 문득 얻은 깨달음 하나. 목표는 작게 세울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꿈을 크게 가져라'는 말이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난 뒤로는 새해가 와도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탓하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드높은 곳이 아닌 시선을 낮추어 곁에 있는 것에 눈길을 주기 시작하고부터일까. 이제는 날마다 나답게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지금의 삶의 방향성과 태도를 가지기까지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마주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다움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책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여러 번의 이사에도 여전히 책장 한쪽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책임은 틀림없다
『달을 보며 빵을 굽다』
쓰카모토 쿠미 지음, 서현주 번역, 더숲, 2019.
이 책의 저자 쓰카모토 쿠미는 단바라는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직원도 없이 홀로 빵집을 열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열 수 있었던 이유는 온라인 판매 전문점이기 때문이다.
로컬 식재료와 전국 각지에서 얻은 가장 신선한 제철 재료를 더해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을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은 언제나 기간 한정으로만 판매를 하므로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맛보기 어려워 5년 이상의 기다림을 감수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다
이 빵집의 가장 특이한 점은 ‘달의 주기'에 맞춰 빵을 굽는다는 것이다. 한 달을 기준으로 0일에서 20일 사이 빵을 만들고, 21일에서 28일 사이에는 그 다음 빵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 여행을 떠난다. 보통 빵집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매장 문을 열기 위해 새벽 출근을 해야 하고, 매장 운영으로 인해 마음대로 휴일을 정할 수 없다. 그런데 쿠미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들며 매달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바꾸었다. 온라인 예약 주문 받은 빵만 만들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없어 친환경적이기 까지 하다.
쿠미는 본인이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를 정성껏 설명한다. 그녀는 단순히 자유를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좋은 식재료로 가장 질 좋고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생산자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지속적인 수입을 함께 만들기 위한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틀을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일을 하면 내가 하는 일을 더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시간에 쫓겨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인 바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가 됐다. 모두가 그러기엔 어려울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 거니까.
그게 나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갔고, 현재는 나 또한 쿠미처럼 나답게 매일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며 살고 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지음, 다산초당, 2021.
혹독한 경쟁 사회인 도심을 떠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떠나는 상상을 누구나 하지만, 그걸 실행해 옮기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도시의 이점도 분명히 있기에 완전한 단절은 싫고 자연과는 가까이 살고 싶은, 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명확한 계획도 준비도 없이 한 가족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 시골로 향했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소개 글은 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질문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경쟁 사회인 도심을 떠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떠나는 상상을 누구나 하지만, 그걸 실행해 옮기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도시의 이점도 분명히 있기에 완전한 단절은 싫고 자연과는 가까이 살고 싶은, 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더 이상 읽지 않지만 버리지도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바라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시골이라는 제약된 환경으로 인해 집 주변에 나 있는 식물 본연의 맛을 기본 식사로 삼고, 핸드폰을 붙잡고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 인터넷을 끊어버리고 필요한 것은 도서관에서 해결하고, 일은 ‘열심히’는 아니고 충분히 자고, 웃고, 떠든 다음 남는 시간에만 한다. 얻는 것보다는 포기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은 정말 괜찮을지 의심하며 읽어가다 보면 그 끝에는 불안이 아닌 평온이 기다린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상의 속도와 요구에 응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사는 것에는 여러 종류의 대가가 따른다. 당장 더 많은 돈을 벌 수 없고, 수많은 인맥을 자랑할 수도 없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따지게 되는 순간들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 시간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세상이 정해둔 틀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한 후 알려주는 귀중한 책이다
『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지음, 현선 번역, 항해, 2017
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세계에서 점차 시간과 체험 같은 비물질적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팔아야 하기에 결국 물건을 대체할 상품이 필요하고, 소비자는 만족할 수 있는 소비 대상이 필요하다
요즘은 ‘뭐 갖고 싶은 거 없어?’라는 질문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오히려 너무 넘쳐흘러서 선물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다. 특히 냉장고에 들어있던 멀쩡한 식재료를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때, 이사 갈 때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물건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올 땐 모두 그대로 두고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물건은 풍요의 상징이 아닌 벗어나야 할 대상이 됐다.
이 책에서는 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세계에서 점차 시간과 체험 같은 비물질적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팔아야 하기에 결국 물건을 대체할 상품이 필요하고, 소비자는 만족할 수 있는 소비 대상이 필요하다.
결국 글쓴이는 물건 그 자체가 아닌 그 끝단에 있는 ‘삶의 방식’을 중요한 키워드로, 소비에 지친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설득력 있는 제안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각각 어떤 역할이 필요하며, 콘텐츠는 어떤 디테일을 챙겨야 하는지도 세심하게 알려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업계 사람이라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일반 소비자라면 조금 더 현명한 소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힌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를 어떻게 적응하고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니까
『달을 보며 빵을 굽다』, 쓰카모토 쿠미 지음, 서현주 번역, 더숲, 2019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지음, 다산초당, 2021
『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지음, 현선 번역, 항해, 2017
글 - 무과수 에세이집 『안녕한, 가』 저자
출처 - 월간국회도서관 2024. 01 02 vol.517
[t-24.02.07. 20210218-16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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