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이별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이별을 강요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마을에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 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아름다운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 자신과 똑같은 소년과 소녀가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언제까지나 실컷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자 100%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이 그 상대자의 100%가 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얼마 안 되는, 극히 얼마 안 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그런데 우리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100%의 연인이라면 바로 결혼하자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악성 독감에 걸려서 며칠 동안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과거의 기억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마치 D.H 로렌스의 소년시절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마주친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이 마구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100%의 남자 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나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 만큼 맑지도 않다.
두 사람은 그냥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엇갈린 채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에서
[t-07.07.02. 20210714-18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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