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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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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 제1장 문학 1.

by 탄천사랑 2007. 6. 23.

 

 

 

책 속의 책 (완결 편) - 폴임 / 우리 문학사 1997. 04. 20.


미국 최초의 시인.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검둥이 노예 소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필리스 위틀리로 이 흑인 소녀의 시를 

조지 워싱턴이 좋아해서 매일 아침마다 읽었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후편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Tomorrow ls Another Day'이다.
이 소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의 가족은 후편을 발간하기 위해서 미국 여류 작가 알랙산드라 리프레이를 선정했다.
후편은 1991년 출판되어 판매 첫날 미 전국 서점에서 10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금세기 최고의 소설과 소설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을 어떤 사람들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라 일컫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머셋 몸이 지칭했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단연 우위로 꼽는다.

총 16권으로 된 이 소설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평생 집필한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소설이다"라고클리프톤 회디만은 말한다.

16권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13년과1928년 사이에 출판된 '스왕 가 쪽으로'로서
이 작품은 귀족 게르망트 가족, 중신층 스왕 가족 그리고 평민 신흥 부호층, 베르듀린 가족 등
세 부류의 가정 생활을 일인칭 화자인 마르셀의 눈을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



105세의 여류 작가
1994년 10월 두 번째 저서 '델라니 자매의 모든 이들을 위한 지혜 모음'을 발간한 
사라 루이스 델라니 여사는 당시 105세였으며.
그 책의 공동 저자이며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델라니 여사의 나이는 103세였다.



성스러운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젊은 작가  바실리 로사노프는 자신보다 20년 연상이었던 아포리나리야 프로크피엔브나 수살로바라는 여인을,
다만 그녀를 도스토예프스키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열렬히 사랑한 끝에 결혼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신처럼 받들던 로사노프에게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유하던 여인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성스러운 환상을 만족시키는 일종의 종교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선정적인 시
'솔로몬의 송가'를 시 詩로 친다면 이것이 바로 가장 유명한 선정적인 시가 된다.
19세기경 '구약 성경'을 연구하던 셀리스 베리 교회의 에드러프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솔로몬의 송가에는 대중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읽기에 난처한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혼자 읽기에도 너무나 음란한 내용이 들어 있다"

하나님에 관한 내용보다는 주로 육체적인 사랑을 노래한 이 송가가 
과연 초기 기독교 정경 正經에 포함되어 있었는지의 여부가 궁금하지만, 
어쨌든 이 솔로몬의 송가는 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유나 완곡한 표현으로 해석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솔로몬의 송가는 아르탁세르세스 통치 때인 기원전 400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도 모방했다.
1609년 7월 24일 500여 명의 이주민들을 싣고 영국에서 버지니아로 향하던 아홉 척의 함대가 
버뮤다 근처에서 하리케인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한 척은 침몰되였고 나머지 배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었으나 
일곱 척의 배는 간신히 빠져 나와 제임스타운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도록 시벤처 호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이주민들은 그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배에는 버지니아의 새로운 주지사와 토머스 게이트 경이 승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안타까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동료들의 모습을 다시 볼 것을 포기한 그들은 제인스타운에 정착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1년이 지난 1610년 5월 23일 
시벤처호가 거의 모든 승객들을 태운채 두 척의 함재정과 함께 제임스타운에 도착했다.
그들의 배는 버뮤다에 닻을 내리려는 순간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으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무사히 해안가에 닿을 수 있었다고 했다.
버뮤다에 도착한 선원들이 표류하다 만난 그곳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으며,
그들은 버뮤다에서 아홉 달을 머무르면서 제임스타운으로 가기 위한 배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 이 소식을 접한 몇몇 극작가들은 
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그들의 마지막 작품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1611년 월리엄 셰익스피어도 허리케인으로 첫 장면을 시작한 '템테스트'를 완성하는데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희극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 허리케인 장면 묘사는 미국 작가 월리엄 스트래치가 쓴 책 내용을 셰익스피어가 모방한 것이다.



외설이냐 예술이냐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땅콩 서너 알을 질 속에다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보얐다.
뭔가 미진홰서 짜증스럽기만 하던 기분이 한결 가셔진다.
나는 불두덩 근처가 한층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한 주먹의 땅콩을 질 속에 다 쑤셔 넣어본다.
꽉 찬 만복감, 아니 만질 감 滿膣感같은 느낌이 항문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이 거 참 기분이 상당히 괜찮다.
근사하다.
나는 다시 질 속에 꼭꼭 숨어 있는 땅콩 알갱이들을 뾰쪽한 손톱 끝으로 한 알 한 알 빼내어 입에다 넣고 먹어본다.
처음에는 빼내기가 쉬웠지만 나중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깊숙이 박혀 있는 땅콩 알갱이를 빼내려고 손가락들을 집어넣고 휘저어 대다 보니 
정말로 저릿저릿 하면서도 그윽한 쾌감이 뼛속 깊숙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손가락 동작을 아주 천천히 하여 질 속의 땅콩을 우아한 방법으로 수색해 내기 시작했다. 

또한 1970년 소설가 염재만의 '반노'가 음란 문서 제조죄로 기소된 바 있었다.
법정은 그의 소설 '반노'가 음란 문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벌금 30.000을 선고했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보자.

그는 미친듯이 나를 쓰러뜨립니다. 자신도 옷을 벗고 내 옷도 익숙하게 벗깁니다. 
서로의 나체만이 남습니다.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격이 요동쳐 갑니다. 어느덧 기진하여 둘은 널브러집니다.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이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전위 예술 작가인 거트루드 스테인은 파리에 이민 온 미국인들 중 가장 널리 이름을 떨친 인물로,
헤밍웨이, 피카소 등과 친구 사이로 지냈으며 특히 그녀의 화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였다.
(스테인이 죽은 지 15년 후그 화랑은 시가 600만 달러나 나갔다)
또한 그녀의 저서들 중 '엘리스 B. 토크라스의 세 가지의 삶과 자서전'으로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단순함과 반복성을 추구하는 그녀의 문체는 한마디로 혁신적이었는데,
스테인은 자신의 문체가 제임스 조이스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다.

우선 그녀는 문장을 쓸 때 구두법을 지키지않은 채 대부분의 글을 마침표만으로 이어 나갔다.
때때로 문장 안에 쉼표를 넣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쉼표를 아주 싫어했다.
쉼표를 넣으면 문장이 상당히 쉬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쉼표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신발을 신고 코트를 입는 것을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처럼 
  쉼표는 창조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 문학 세계를 단순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쉼표란 문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죠!"

뿐만 아니라 그녀는 물음표와 느낌표에 대해서도 아주 협오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이다'
이 문장은 가장 질 알려진 그녀의 문구들 중 하나로 
그녀의 문체가 보통의 작가들과 얼마나 상이한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녀는 죽을 때까지 엘리스 B.토크라스와 동성연애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 이 글은 <책 속의 책 (완결 편)>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06.23.  20220613_16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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