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수필 - 「방송인 이숙영 인터뷰」
약속 장소에 이숙영 씨가 등장하자 찻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방송인 이숙영을 알아봐서가 아니라 무척 튀는 옷차림 때문이었다.
그런 대담한 옷차림이 무척 잘 어울리는 것도 놀라웠다.
스무 살도 망설일 새빨간 프릴이 달린 스커트를 입은 이숙영 씨는 스페인 무희처럼 보였다.
대학생 두 딸이 있는 엄마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강렬한 인상에 기가 죽는다고 할까. 첫인상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자
아침잠을 깨는 데 특효약이라는 평을 듣는 이숙영 씨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방송 생활 20년을 맞는 올해, 이숙영 씨가 본격적인 자기계발서를 냈다.
『이숙영의 맛있는 대화법』라는 책으로,
한마디로 대화의 요령을 알려주는, 이숙영 씨가 처음 쓴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타인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상대에게 호감과 진정을 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노하우를 가르쳐준다.
왜 하필 대화에 대한 책을 썼을까?
살면서 우리가 타인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이기 때문이다.
책은 비즈니스 석상에서의 대화만을 다루지 않는다.
친구와 가족, 연인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나은 삶을 위한 대화법을 담은 책이다.
“책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는지요?”
“계약은 2년 전에 했어요.
그런데 매일 방송을 하다 보니 진득하게 글 쓸 시간이 없어요.
하루에 방송을 두 개나 하는 데다가 강연 스케줄도 많아서요.
밤이나 되어야 겨우 내 시간이 나요.
6개월 전부터 제대로 ‘필’을 받아서 부지런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좋은 대화법을 많이 소개하셨는데, 그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것인가요?”
“‘1:2:3’의 법칙을 제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를 이야기했으면 둘을 듣고 셋을 맞장구치라는 거죠.
이것만 한 대화 비법이 없어요.
말을 잘하려면 귀를 활짝 열고, 대화를 잘하려면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경청하고 맞장구쳐주고 공감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맞장구도 잘 쳐야 해요.”
“맞아요. 무조건 맞장구를 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죠.”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려면 듣는 사람이 많이 알아야 해요.
그래야 맞는 맞장구를 칠 수 있거든요.
대화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독서는 대화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성실한 노력가 타입인 이숙영 씨는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방송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책을 더 많이 읽었다고 했다.
방송인 이숙영을 만든 것은 무엇보다 책이었다.
『이숙영의 맛있는 대화법』 역시 몇십 년에 걸친 방송 경험과 폭넓은 독서 경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이숙영 씨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겠어요.”
“많이 읽죠.
방송 일을 하려면 직접 경험 간접 경험을 두루 풍부하게 겪어야 하니까요.
깊이보다 넓이가 더 중요하거든요.
책도 많이 읽지만 신문, 잡지, 뮤지컬, 영화도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리얼리티가 있는 글이 좋아요.
나이가 드니까 남의 상상력에 놀아나는 것이 싫어지더라고요.
저자의 경험이 담긴 사소설(私小說)을 요즘 다시 평가하게 되었어요.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인데요,
이 작품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자전적인 작품이에요.
왠지 저하고 겹쳐지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겹쳤는지 궁금한데요.”
“『도쿄타워』에서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세요.
제 어머니도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때가 방송 생활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였어요.
밤새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아침이면 방방 뜨는 목소리로 종달새같이 방송해야 했어요.
마음은 너무너무 슬퍼도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순간 웃어야 하니까요.
책을 읽다 보니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주인공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하필 마감이라 편집자에게 독촉을 받고 글을 쓰거든요.”
“이숙영 씨는 겉모습과 다르게(?) 성실한 모범생이 아닐까 싶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아침 방송을
20년 가까이 해온 것만 봐도 어지간히 성실한 사람이 아니면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책(『이숙영의 맛있는 대화법』)만 해도 굉장히 정보가 충실해서 조사하는 데 꽤 시간을 많이 투자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굉장히 모범생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어요.
제가 옷만 스타일리시하게 입고 다니지 속은 안 그렇다니까요.
내 삶은 어쩌면 굉장히 지루할지도 몰라요.
전 담배도 술도 하지 않고, 취미는 여행과 쇼핑 정도.
삶에 별다른 일탈이 없어요.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하고, 결혼할 때 결혼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옷으로 이벤트를 하는 건지도 모르죠.”
“그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인 건가요?(웃음)”
“모순을 즐기죠.(웃음) 저는 그런 모순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모순이라는 건 원래 불편한 것 아닌가요? 괴리감 때문에 괴로울 것도 같은데요.”
“저는 모순되는 걸 잘 균형 잡는 편이에요.
내 안에서 오히려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면 일으켰지, 서로 충돌하거나 그것 때문에 괴롭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음식으로 말하자면 퓨전 요리라고 할까요.”
“그래도 상대방이 자신을 오해하면 불편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그 오해를 즐겨요.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실제 나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의 간격이 재미있기도 해요.
‘아, 저 사람은 나를 저렇게 보는구나. 나한테 저런 모습도 있구나’ 하면서요.
나는 나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은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이숙영의 별명은 ‘인간 호기심 천국’이다.
살면서 도둑질과 화냥질 빼고는 다 해보고 싶다고.
인생을 맛보는 것이 삶의 최대 목적이기도 한 그는 사람을, 나라를, 책을, 음식을, 음악을, 영화를,
풍경을 맛보고 즐기는 ‘성실한’ 쾌락주의자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지루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20년 동안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방송을 하는 일은 지겹지 않았을까?
“매번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듣는 노래가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제가 방송을 좋아해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20년 동안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방송 이외의 생활도 꼼꼼하게 챙기는 타입이신가요?”
“아뇨.(웃음)
그런 건 또 전혀 못해요.
그런 건 남편이 전부 알아서 해요.
그런데 여행 같은 건 엄청 계획을 꼼꼼하게 짜요.
전 죽을 때까지 갈 곳을 다 정해 놨어요.”
“여행은 주로 어디로 가시나요?”
“저는 책에 나온 곳에 직접 가보는 것을 좋아해요.
일종의 문학 기행이죠.
레마르크의 『개선문』에 나오는 파리의 카페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체코도 둘러봤어요.
마이애미에 가서 헤밍웨이가 글을 쓴 서재도 둘러봤고요.”
“글쓰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문학은 저의 영원한 짝사랑 상대죠.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어요.
대학도 영문학과로 진학했는데, 그 이유가 『위대한 개츠비』를 엄청 좋아해서였어요.
개츠비가 저의 이상형이었거든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어떤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
“탐미적인 책이 좋았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도 좋았고, 레마르크 책도 좋아했고.”
“『광기로 혹은 향기로』라는 소설도 쓰셨는데, 앞으로 소설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소설보다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드라마에 끌리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워낙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볼 때가 제일 행복해요.
또 그게 건강하다는 증거기도 하고요.
걱정거리가 있으면 드라마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거든요.”
“드라마 작가 말고 또 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어요.”
이숙영은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는 가슴에 품은 씨앗이 많은 사람이다.
발아할 환경이 되면 쑥쑥 자랄 씨앗 말이다.
뮤지컬 배우도, 드라마 작가도 되고 싶다.
자기 이름을 단 토크쇼도 진행하고 싶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
그렇지만 이 많은 것을 하고 싶은 이유는 유명해지거나 많은 성취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경험 컬렉터’ 이숙영답게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어서다.
“방송 일을 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셨을 텐데요. 어떠셨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건 선입견을 품고 보면 안 되겠다,
이미지에 속지 말아야겠다는 거예요.
대화를 직접 해보지 않고는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않게 되었어요.”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이미지와 다른 분이 많지 않나요?”
“많아요.
이미지는 좋았는데 말을 해보니 별로였던 사람도 있고.
그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좋은 사람이어서 놀란 적도 있었고요.
얼마 전에 자살한 유니도 그랬어요.
저는 그저 섹시한 가수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까 생각이 깊고 책도 많이 읽는 지적인 사람이었어요.”
“프리랜서로 방송 일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으시나요?”
“들어요.
그래서 일을 하다가 가끔 나도 모르게 다운이 될 때가 있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그렇죠.
그럴 때는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요.”
“방송을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뭔가요?”
“제 방송을 듣는 분들은 정말 평범한 분들이에요.
날마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죠.
그런 분들의 진솔한 사연을 듣고, 목소리를 들으면 기운이 나요.
이런 분들과 만나면 정말 방송하기 잘했다, 하는 생각을 하죠.”
이숙영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그가 생각할 때 세상엔 손해가 없다.
불행과 고통 속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메인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아웃사이더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기 모습에서 행복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저는 지금 제 나이가 되었을 때 라디오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것도 바라는 것이 많았지만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 이 두 가지였어요.
지금 방송도 하고, 글도 쓰니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겠죠.
저는 지금 제 모습에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요.”
글 - 류화선
출처 : 경주수필 - 2007.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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