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신문 - 2022.11.23」
은퇴자를 위한 묵언 ABCD
A(Acceptance): 외로움의 그늘을 받아들여라
누구에게나 온 평생을 바쳐 일해 온 조직을 떠나야할 때가 온다. 그 날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높고 명예로운 자리에 있었다 할지라도, 항상 더 높은 자리와 더 명예로운 자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꼭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떠나야 할 때가 온다. 때로는 예고된 시점에, 때로는 불시에 그 날을 맞이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갖추어 떠나는 사람은 없다.
설사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몸은 한동안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새벽이면 눈이 떠지고, 아침이면 차에 시동을 걸던 자리로 걸어간다. 그런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란다. 화려한 퇴임식은 오히려 빨리 나가달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아무리 은퇴를 합리화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을 떠나라 강요하는 조직도, 그렇게 떠나야하는 자신도 용서되지 않는다.
◇ 누구나 종국에는 비정규직, 떠나야 할 때가 오기 마련
정년이든 임기 만료든, 환하게 웃으며 조직을 떠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과의 정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사를 막론하고 조직은 이익단체다. 이해관계가 종료되면 매몰차게 관계를 정리한다. 그걸 평소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생을 바쳐 일해 왔다. 그러나 어느 때가 되면 그런 구호는 간 데 없고, 그 ‘한 가족’을 위해 ‘명예롭게’ 떠나 달라고 한다. 순순히 나가지 않으면 명예롭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박처럼 들린다. 정년이나 임기가 남은 채로 떠나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더 헤아리기 어렵다. 시기와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떠나야 할 때가 온다. 그게 조직인의 운명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 신분이다. 언제까지나 잘릴 일 없는 정규직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갈 뿐이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사람도 세력 판도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무능하고 거추장스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한 개인을 떠나게 만드는 조직의 이유는 무수히 많다. 그것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분노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준비되지 않았어도 떠나야 한다.
◇ 은퇴 = 인생경기의 하프타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한없이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은 누구와도 나누기 어렵다. 거부하면 할수록 외로움은 더 깊이진다. 잘려나가는 가지 같은 분리 불안이 엄습한다.
은퇴는 인생이라는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전반전 경기가 끝났다는 신호일 뿐이다. 호각 소리가 나면 선수는 말없이 라커룸으로 들어가야 한다. 라커룸은 희미한 조명아래 의자 몇 개만 있는 곳이다. 마냥 눈시울이 붉어지는 곳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니 그래야 한다. 후반전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눈시울을 붉히는 자는 모든 경기가 끝난 후 활짝 웃으며 경기장을 떠날 수 있다. 후반전에 반전과 역전을 이룰 수 있다.
◇ 어둠이 와야 비로소 별이 보인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라는 시의 일부다. 그는 “그늘을 피하지 말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걸으며 때로는 빗길을, 때로는 눈길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왜 나에게만 유독 이렇게 힘든 길들이 주어지는가?” 의아하고 속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인생의 어두운 길에 접어들었을 때에야 우리는 왜 사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목적을 다시 세우게 된다. 아무도 없는 길을 울면서 걸어갈 때 어느 순간 지천에 펼쳐진 들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두운 밤이 되어야 별을 볼 수 있다. 어둠이 내릴 때 잊었던 꿈이 비로소 아프게 드러날 것이다.
전반전 경기를 지고 있었다면 라커룸에 들어간 선수는 너무 아쉬울 것이다. 반칙을 범한 상대선수에게 분노가 일어날 것이다. 헛발질로 골을 놓친 것 때문에 자책과 회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그러라고 라커룸이 있는 것이다. 관중이 보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 앉아 속울음을 울 수 있는 시간이 하프타임이다. 그렇다. 외로움은 형벌이 아니고, 축복이고 기회다.
◇ 하프타임, 눈시울을 붉히며 나비의 꿈을 꿔야
애벌레는 좁고 어두운 고치 속에서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채 외로움을 견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애벌레 모습에서는 유추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훨훨 날게 된다. 스스로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서 칩거하며 기어이 자신 속에 있는 나비의 DNA를 찾아낸 결과이다. 나비의 한 살이를 살펴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애벌레 시절에는 열심히 나뭇잎을 먹는다. 몸집이 통통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그렇게 한다.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나뭇잎만 갉아먹고 살다 사라지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온하지만 아무 기대도 감격할 일도 없던 애벌레의 삶을 그치고 어느 날 고치를 틀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고치 속에서 빛도 소리도 없는 적막 속에 웅크리고 여러 날을 보낸다.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만을 응시한다. 먹고 싶고 움직이고 싶은 생존의 욕구를 뿌리치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탈피의 시간, 변태의 시간을 기다린다. 황금빛 날개를 상상하고 온 들판을 나는 꿈을 꾼다. 드디어 그날이 온다. 예전에 살던 세상의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가, 폭발적 변화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로 전환된다. 생의 변화(變化, change)를 넘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생으로의 전환 즉, 변태(變態, transformation)가 일어난다. 먹고 자는 일상을 그치고 길고 긴 외로움의 시간을 견디며 꿈을 꾸는 자는 누구나 나비가 될 기회가 있다.
인생의 하프타임에 선 자는 그렇게 외로울 줄 알아야 한다. 애벌레가 스스로 고치를 틀고 어둠속으로 들어가듯이 자신 속 나비의 DNA를 전심으로 찾아야 한다. 그 칠흑의 어둠 속에서 꿈을 꿔야 한다. 나비가 되는 꿈, 온 들판을 날아다니는 꿈. 은퇴를 준비하는 시간은 이렇게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 꿈을 꾸는 시간이다. 생명을 잉태하는 시간, 나비의 부활을 꿈꾸는 시간이다. 외로움의 그늘 속에서 인생 반전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재섭 교수는 영국 켄트대학에서 공적연금, 노후소득보장을 전공한 사회정책학자다.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로서, 글로벌리더십경영융합대학원에서 ‘노후준비최고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글 - 이지현 기자
출처 - 금융경제신문 http://www.fetimes.co.kr
[t-22.12.06. 20221202-1410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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