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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추모는 뒷전, 돈에 시달리다 끝

by 탄천사랑 2022. 6. 18.

「중앙일보 / 2022. 06. 18. - 국회 ‘조력 존엄사법’ 첫 발의」


추모는 뒷전, 돈에 시달리다 끝…장례식이 ‘웰엔딩’ 망쳐

SPECIAL REPORT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모든 게 돈이었지요.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운구하려는데 입금을 해야 구급차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돈을 부치고, 수십장의 서류에 사인해가며 장례 물품을 준비했죠. 돈에 시달리다 보니 누가 왔었는지도 모르게 장례가 끝나있었습니다. 그제야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사실이 와닿더군요.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지난달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모(70)씨는 울음을 꾹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100세를 넘긴 이씨의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호상(好喪)이라 평할 정도로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씨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장례는 달랐다. 이씨는 “의미 없는 절차에 매몰돼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한 아들을 보시고 훗날 크게 호통치실 것”이라며 “산 사람을 위한 장례식도, 죽은 사람을 위한 장례식도 아니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형식에 치우친 장례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존엄한 죽음(웰다잉)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낼 정도로 유교적 장례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산업화를 거치면서 장례문화는 급격히 바뀌어왔다. 500년 이상 이어오던 매장(埋葬) 문화는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눈에 띄게 줄고, 화장(火葬)이 주된 장법(葬法)이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0년 전인 2002년 18.4%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지난해 약 90%까지 증가했다. 장례를 치르는 공간도 180도 바뀌었다. 주로 가정에서 친척과 동네 사람이 모여 치르던 장례는 병원이나 전문장례식장에서 치르는 것이 대세가 됐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객사 또는 악사라고 불리던 관습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초빙교수는 “철저한 유교적 관습을 따르던 장례문화가 불과 20여 년 만에 완전히 탈바꿈했다”며 “지금의 장례식은 전통적인 예법이 모두 간소화돼 시신을 위생적으로 처리한다는 목적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나친 허례허식이 물들며 장례가 하나의 상업적 행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은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효도할 기회라는 생각에 수의나 관의 종류, 제단 꽃장식의 크기 등 고인을 추모하는 일과는 관계없는 장례용품에 정성을 쏟는다. 그러다 보면 약 3~5일간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천만원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인당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달한다. 지난 5월 조모상을 당한 20대 우모씨는 “유족들이 슬픈 틈을 타 필요 이상의 지출을 유도하는 장례업체에 환멸을 느꼈다”며 “고인과 가족들을 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바라보는 태도가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로 남았다”고 전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웰다잉문화운동 이사)는 “과거 장례식은 마을 공동체에서 슬픔을 나누는 상부상조 문화였으나 이웃의 노동력이 상업적 수단으로 대체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과시욕구가 투영돼 변질됐다”며 “고인 추모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장례의 본래 의미가 퇴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려한 예식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고인과의 작별인사는 뒷전으로 미뤄진다. 전문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면 고인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입관과 염습을 진행하는 30분~1시간 남짓이 전부다. 이조차도 극소수의 유족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로, 고인의 지인들은 사실상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기회조차 없다. 고인을 위한 장례임에도 고인과는 물리적으로 철저하게 분리된 공간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된다. 화려한 꽃장식으로 가리워진 장례식이 끝난 후 남겨진 가족들이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이유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이었던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이나 확진 후 사망자를 비닐팩에 싸 화장했던 사례도 우리 사회가 고인을 교감의 대상이 아닌 그저 시신으로만 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방역으로 인해 임종을 지키지 못한 유족들의 우울감과 죄책감은 상당할 것”이라며 “향후 감염병이 반복되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정책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례절차에서 필수 관문이 된 화장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사망한 지 3일 만에 약 1000도의 불에 타는 관을 한시간 이상 지켜보는 유족은 시간이 지나도 이 장면을 잊기가 쉽지 않다. 신분 확인 차원에서 전 과정을 공개하는 화장장의 조치가 오히려 유족들을 괴롭게 만드는 셈이다. 지난달 부친상을 겪은 안모(32)씨는 “아직 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치 생사람을 불에 태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화장 후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유골을 담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필도 교수는 “혐오시설로 인식된 화장장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화장절차는 결코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절차가 아닌데, 모든 절차를 기계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데만 열중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유족들이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화장장을 님비 시설로 인식하게 된 것은 결국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수십년간 낙후된 채로 방치한 화장시설을 현대화해 화장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사회적 인식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주기적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남겨질 가족들과 장례절차나 방법에 대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필도 교수는 “우리 사회는 결혼 준비에 최소 1년을 투자하지만, 장례는 언급조차도 금기시한다”며 “죽음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나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죽음 준비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인이 주체가 되는 장례식을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처럼 사전에 나의 장례식을 미리 계획하는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서이종 교수는 “고인의 뜻에 맞는 장례식을 하기 위해선 사전에 의견을 교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며 “의미 없는 허례허식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장례의향서를 쓰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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