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2022. 06. 18. - 존엄사 신중해야」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SPECIAL REPORT] 존엄사 신중해야
“현재 죽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찾는 게 먼저다.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되면, 사회·경제적 압력에 의해 죽음을 결정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다.”
최근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찬성 여론이 뜨겁다. 지난 15일 국회에서는 의사조력사 입법화 법안도 발의됐다. 이 가운데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사진)은 온전한 개인의 신념이 아닌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안락사 및 조력사를 선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생명윤리 관련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사회적 압력에 의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나.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제도가 잘 되어 있지만 실제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본인 부담금이 상당하다. 가족의 지원 없이 스스로 의료비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되면 의료비 부담, 간병 부담 등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선택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를 고민하도록 만든 환경적인 요인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치료 받을 능력이 있고, 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어야 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문제가 없나.
“인프라나 인력 문제보다는 현장에서 환자를 곁에서 지키는 사람들의 윤리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과연 지금 의료인들의 윤리 수준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돼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의료진의 생각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난 4년 동안 관련 교육을 수료한 의사는 전체 병의원 종사 의사의 5.7%에 불과하다. 교육 수료 간호사도 전체 병의원 종사 간호사의 2%에도 못 미친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으면서도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절차나 취지도 제대로 모르는 의사들이 있다는 얘기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훨씬 더 많은 윤리 문제를 동반하는 문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현실적 대안은.
“환자 스스로 영양 공급 여부를 선택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 사실 노인은 식음을 전폐하면 며칠 후 돌아가신다. 그런데 현재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공급, 산소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물론 며칠간은 힘드시겠지만 그 사이 가족들과 대화도 하고, 통증도 조절하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안락사나 조력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영양공급에 대한 선택권이라도 환자 본인에게 주어지면 10년 넘게 비위관(콧줄)을 끼고, 욕창이 생긴 채로 죽음을 맞는 사례도 없어질 것이다.”
현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장소를 늘려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과 관련된 문서로 강제할 수 없고, 자발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문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 현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작성할 수 있는 장소가 극히 제한적이다. 주민이용률이 높은 주민센터, 보건소 등 어디서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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