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2022. 06. 18. - SPECIAL REPORT」
[고령사회의 화두, 웰다잉(Well-Dying)]
최근 방송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옥동(김혜자)은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아들 동석(이병헌)과 함께 고향을 찾고 한라산에 오른다. 제주도 집에 돌아온 옥동은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잠든 것처럼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연간 사망자 30만명 가운데 80% 이상은 병원이나 기타 복지시설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들 중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거나, 질병의 고통에 시달린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30만명으로 3년 새 6배로 늘었지만, 여전히 전 국민의 3%에 불과하다. 통증을 줄여주는 완화의료센터를 이용하기도 어렵다. 매년 8만명이 암으로 숨지는데 호스피스 병상은 1500개도 되지 않는다.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3%에 그쳤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존엄성을 지키며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연명치료 중단이나 호스피스 이용 같은 소극적인 존엄사뿐 아니라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등의 적극적인 존엄사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5일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는 법안이 처음으로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어 16일에는 70대 노인으로 구성된 ‘노년 유니온·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이 “안락사법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돌보다 가정이 파탄나고 결국엔 간병 살인에 이르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시민들의 76.3%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 찬성한다’(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 조사)고 답했다. 2016년 조사에서 41.4%던 찬성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윤영호 교수는 “환자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가족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죽음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기대수명은 83.5세로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17년 이상을 건강하지 못한 상황에서 살게 된다는 뜻이다.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의견은 극명하게 갈린다. 법조계에서는 “환자 개인의 죽음까지 국가가 결정하는 것은 비민주적”(김현 변호사)이라는 찬성론에서 “의료비 부담에 떠밀려 순수하게 자기 뜻이 아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신현호 변호사)는 신중론까지 다양하다. 종교계는 “스스로를 해하는 것이 합법화되면 사회의 기반인 생명의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박은호 신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고 반발한다.
하지만 호스피스 확대 등을 통해 품위 있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돕는 사회·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든 전문가가 동의한다. 말기 암 환자의 20%만 연명치료를 중단해도 1년에 건강보험 약 800억원이 절감된다. 윤 교수는 이 돈을 웰다잉 문화·인프라 조성에 투자해 ‘광의의 존엄사’를 실현하자고 제안했다.
“아직 국내에서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바라게 되는 신체적 고통, 경제적 부담 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면 굳이 생명을 버리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 안식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때가 진정으로 안락사 및 조력사를 논할 때입니다.” (A 1면)
김창우·윤혜인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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