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정우 - 걷는 사람, 하정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에 방식을 자랑할 만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차와 통점도 모두 다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
내가 갖고 있는 일상의 매뉴얼이 누군가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혹여 쓸 만한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어 참고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 이렇게 시작한 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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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밖에 나갔는데 희한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보더니 말했다.
"어? 무슨 좋은 일 있어? 되게 밝아졌다!"
"너, 뭔가 달라졌어."
"더 에너제틱해졌는데?" 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진짜인가 싶어
거울 속의 나를 관찰해보았다.
거기, 전과 비할 바 없이 건강해 보이는 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건강하고 밝은 기운은 국토대장정 이후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길 끝에서 허무함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걷기가 주는 선물은 길 끝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 p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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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워오면 '신데렐라'에겐 즉각 신호가 온다.
밀러 오는 졸음에 눈을 끔벅거리다가 나는 술자리에 유리구두 대신
그리움을 남겨두고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온다.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의 술기운과 밀려오는 졸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오면 씻고 쓰러져 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번쩍 눈을 뜬다.
일탈도, 치기도 없는 약간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몰라도,
나의 이런 하루가 나는 마음에 든다.
지금 여기서 동이 터올 때까지 매일 축배를 들기엔 아직 나는 갈 길이 한참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 p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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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나는 걷고 먹고 웃는 일에 하루를 다 쓴다.
삶의 곳곳에 놓인 맛있고 즐거운 일들을 잘 느끼는 일.
그게 곧 행복이 아닐까 하고 나는 하와이에서 생각했다. - p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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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벌어진 한 상을 차려보겠다고 욕심부리지 말고 일단 내 입맛에 맞는
딱 하나의 먹거리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왜 반찬이 딱히 없을 때에는 감자조림만 만들어 먹어도 너무 맛있지 않나?
갓 만든 따뜻한 감자조림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감동적이다.
육수를 우리고 요리할 시간이 없을 때는 시중에 파는 다시마 팩으로 육수를 내고,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얼렁뚱땅 넣어서 끓이기만 해도 국이 완성된다.
맛을 보고 별로면, 다음에 요리할 때 뭘 더 추가하거나 덜어낼지 생각해보면 된다.
요리가 좋은 건 이번 한 끼를 애매하게 실패했다 해도,
반드시 만회할 다음 끼니가 돌아온다는 거니까. - p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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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내게도 그런 날이 있다.
눈을 떴을 때 온몸이 천근만근 느껴지는 날.
그런 날은 마음도 울적해서 도로 눈을 감고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고 싶지 않다.
때로는 그런날이 하루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로 하염없이 늘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안에만 머물고 싶은 날,
집 밖이 왠지 낯설고 오직 내 방만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날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아침이면 나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씩 달래고 설득해 일단 누운 자리 밖으로 끌어낸다.
이때 '걸어야 하는데...
얼른 씻고 나가서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
등등의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면 역효과다.
일어나기 더 싫어질 뿐이다.
우선 이렇게 자신을 설득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와 머리가 아프니 침대에서 살짝만 일어나 보자고,
몸이 반향을 하면 안심을 시켜준다.
'아, 걱정하지마.
지금 이렇게 힘든데 땀 흘리며 걷자는 건 아니니까.
그저 살짝 몸을 일으켜 않아보자는 것뿐이야'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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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이 마지막 문장을 남기고 끝난다 -
하정우 -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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