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山의학 February 2019. Vol. 265」
[19-02유마거리19-0204-3(30)]
이달에는 히로애락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아름다운 삶을 요리하며 살다가 궁극의 치유를 선택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웰 다잉 Well-dying의 의미와 진정한 치유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의지대로 아름답게 사는 건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지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과 명분을 바탕으로 현대의학은 인간을 온전히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온갖 처치와 약을 투여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고로 절명하거나 갑작스런 심정지로 죽음에 들지 않는한 인간은 대부분 병사할 수밖에 없다.
일단 병상에 눕고 나면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닌 보호자와 의료인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향암제 투여, 심폐소생술, 인공호홉기, 혈액투석 등을 통해 생을 이어가는 연명 치료를 하게 될 때,
생명의 주인인 '나'의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그 모든 착각과 욕심을 떨쳐 버리고 자기 생명의 결정권을 스스로 지켜내고자 하는
각자覺者들이 있기에 그나마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의 나약함이 조금은 덮어지는 것이며
소소하나마 위로마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육체(암)도 나의 일부다"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이어령)
"울음과 눈물을 빼놓고서는 한국을 말할 수 없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겄까지를 '울음'으로 들었다.
'운다'는 말부터가 그렇다.
우리는 절로 소리 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운다'로 했다.
'birds sing'이라는 영어도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들이 운다'로 된다.
'sing'은 노래 부른다는 뜻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반대로 '운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저 유명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어령 著, 현암사,1963)>라는 책에 적힌 한 구절이다.
한국인들이 지닌 '한恨의 정서'를 이처럼 적확的確하게 드러낸 문장은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碩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그가 지난 1월 초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암을 앓고 있다'며 암 투병 사실을 털어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의사가 '당신 암이야' 이랬을 때 철렁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천동지할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투병鬪病'이란 용어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 교수는 암 진단을 받고도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도 받지 않고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사랑하는 딸(故 이민아 목사)마저 53세의 이른 나이에 위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그였기에
암에 대한 생각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은 그에게 깨달음을 선물했다.
그의 말속엔 궁극적인 치유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의사의 암 통보는 오히려 내게 남은 시간이 한정돼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나의 죽음도 나의 삶이다"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104세가 되던 해에 기나긴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호주의 유명한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바로 그다.
더는 삶에서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안락사가 금지된 호주를 뒤로하고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104번째 생일인 2018년 4월 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늙고 있습니다.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은 퇴화했습니다.
나는 아직 새소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력이 더 나빠지면 이제 그것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나는 집에 24시간 갇혀 있거나 양로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 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5월 9일 베른의 한 병원에서 의사의 지도 아래 신경안정제 약물을 투여한 후 사망했다.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안락사 전 즐거운 표정이었다.
베토벤의 9번 합창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스스로 약물 벨브를 열었다.
그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전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고마쓰 회장 안자키 사토루)
2017년 11월 20일 자 일본(니혼게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광고가 실렸다.
해당 날짜로부터 3주 후인 12월 11일에 있을 '감사의 모임'행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행사는 사실 초대자의 생전 장례식이었다.
광고를게재한 사람은 안자키 사토루라는 80세 남자로,
일본 건설기계 분야 1위 기업 고마쓰의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 불가능 판정을 받고 일체의 언명 치료를 거부하며 생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항암제나 방사선 차료를 통해 삶을 더 연명하는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연명 치료 대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생전 장례식을 기획했다.
대기업 회장의 생전 장례식이란 이례적인 행사에 지임, 동창생, 회사 관계자 등 1.000명이 참석했다.
안자키 사토루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이 상영되었고,
그가 태어난 도쿠시마 현의 전통 춤 공연도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테이블을 돌면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모두에게 감사의 편지도 남겼다.
그리고 생전 장례식을 치른 지 6개월 후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말처럼 '몸부림치지 않는 죽음'이었다.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는 웰 다잉도 건강할 때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레시피다.
삶을 요리하는 방법이야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맛있는 삶의 레시피는 건강에서 나오는 법,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강하고 멋진 모습을 남긴 사람이 진정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아닐까. (p93)
글 - 박홍희 (건강 칼럼니스트)
출처 - 仁山의학 February 2019. Vol.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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