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 2022. 06. 18 - SPECIAL REPORT」
[고령사회의 화두, 웰다잉(Well-Dying)]
“콧줄 단채 죽고싶지 않아” 국민 76% 안락사·조력자살 찬성…죽음의 질 개선해야
SPECIAL REPORT
“지금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예요. 이미 임종실에 두 번이나 들어갔다가 나오셨을 정도로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생명 유지를 위한 의료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가족에게는 물론 아버지 당신에게도 말이죠. 이렇게 가망이 없고 고통만 연장하는 상황에서는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있어야죠. 저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소변줄, 콧줄 등을 달고 죽고 싶지 않습니다.”
2016년부터 벌써 6년째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천모(55)씨가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2011년 알츠하이머, 2014년 치매 5등급을 진단받았다. 이후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2년간 가정에서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마다 집을 나가 차도로 뛰어들어 경찰이 찾아오고, 대소변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가족과 논의해 요양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 저희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 고통스러운 듯 천씨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현재 그의 아버지는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잠든 채로 누워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화도 할 수 없다. 몸은 앙상하게 말라 굽어 있고, 식사는 콧줄로, 소변은 소변줄로 해결한다. 천씨는 “의식이 있을 때 스스로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고, 의식도 가망도 없어진 일정 기간 후에는 안락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돌봄을 맡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락사 찬성률 5년 새 2배로 늘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의 필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엔 시민 10명 중 8명이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입법을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3월부터 4월까지 19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3%가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전 조사에서는 안락사 찬성률이 2008년 50.4%, 2016년 41.4%에 불과했다. 5년 새 찬성 비율이 2배로 오른 셈이다. 찬성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30.8%)’,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 ‘고통 경감(20.6%)’, ‘가족의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순이었다. 반대 이유는 ‘생명존중(44.4%)’이 가장 높았고, ‘자기결정권 침해 우려(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13.1%)’가 뒤를 이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 모두 불법이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것이고,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제공하는 약물을 환자 스스로 주입하거나 복용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과정에 들어선 경우 환자 또는 환자 가족의 결정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불필요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만이 합법이다. 조사를 진행한 윤영호 교수는 “향후 국내 사망자가 2025년 35만명, 2040년 50만명 등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안락사 입법화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은 국내 죽음의 질이 환자 본인에게는 물론 곁에 있는 가족이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나, 나이가 들고 늙어 간다. 그리고 언젠가 병을 앓다 죽게 된다.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 불교에서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할 네 가지 고통으로 정의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쉽지 않다.
우선 질병을 앓는 절대적 기간이 길다.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은 1980년 66.2세, 1990년 71.7세, 2000년 76세, 2010년 80.2세, 2020년 83.5세로 높아졌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건 질병으로 고통받는 시간을 제외한 건강수명이다. 2020년 기준 국내 기대수명은 83.5세인 반면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17.2년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늙어간다는 의미다. 앞으로 병을 앓다가 죽는 기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대수명 대비 건강수명의 증가폭이 낮기 때문이다. 2012년에서 2020년까지 같은 기간 동안 기대수명은 2.6년 증가했지만 건강수명은 0.6년 증가하는 데 그쳤다. 건강수명이 2012년 65.7세에서 2018년 64.5세로 되레 감소한 때도 있었다.
노년기 질환은 필연적이다. 무병장수하는 소수를 제외하곤 중장년부터 만성질환이 시작된다. 노년기엔 합병증으로 병원에 드나들며 하루 기본 7~8알의 치료약을 복용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노인들이 ‘아프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지 않게 죽는 것’을 소원하게 되는 배경이다. 어느 순간 스스로 거동도 식사도 어려워지면 상당수는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 또는 요양원으로 간다. 특히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거주하지 않는 노인 1인 가구는 더 그렇다. 전담간병인이나 개인요양보호사 고용은 금전적 여유가 있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요양원 침대에 손발 묶여 지내기도
돌봄 환경도 열악하다. 요양(병)원에서는 한 명의 간병인이 적게는 3명, 많게는 12명의 환자를 전담한다. 간병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다. 이마저도 한국인은 구하기 힘들어 조선족 간병인이 보편적이다. 공동간병 속 돌봄은 환자와 보호자가 그리는 돌봄과 괴리가 크다. 규모와 시설, 부담 비용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수 요양(병)원에서는 부축을 받으면 거동이 가능해도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 느리게 식사를 할 수 있어도 콧줄로 유동식 식사를 하게 된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간병의 편의를 위해서다. 지난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 박모(54)씨는 “아버지가 보행도 가능하고 인지력도 있으신데 왜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냐고 물으니 병원에서는 ‘케어하는 분들이 불편해 하니까’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침대에 손발이 묶인 채 지내기도 한다. 이같은 신체 억제는 자해나 타인을 해할 우려가 있거나, 의료처치 유지를 위해서 간호나 수발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만 ‘일시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몸을 긁어서’ ‘변을 만질까봐’ 등 다양한 이유로 신체 억제가 지속된다.
보호자의 동의를 구한다고 해도, 환자를 맡긴 보호자에게 사실상 선택지는 없는 셈이다. ‘손을 묶어놔도 되냐’는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해도, 실제로 손을 묶는지, 안 묶는지 확인할 수 없고, 다른 병원이라고 다를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하는 가족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노인 돌봄의 현실이다. 박씨 역시 요양병원의 미흡한 간병 실태를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병원을 옮기지 못했다.
지난해 박씨는 아버지가 여름에 겨울 양말을 신고 계신 것이 의아해 양말을 벗겼다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발톱이 걷지 못할 정도로 길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 및 손발톱 관리를 한다고 했던 요양병원에서는 ‘실수’라고 얘기했다. 박씨는 “코로나19로 상황이 안 좋은데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겠냐는 식이었다”며 “면회도 한 달에 한 번 10분 남짓만 가능해 자주 뵙지도 못했고,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무조건 아니라고 회피하듯 얘기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지난 3월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타계했다.
이런 가운데 존엄한 죽음이 보장될 리 없다. 2018년 2월 이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경우 작성해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가족 간 합의를 통해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암 말기 환자는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통증 조절과 더불어 전문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봉사자, 사회복지사, 성직자도 환자 및 보호자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돕는다. 어떻게 보면 ‘좁은 의미의 웰다잉’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엔 역부족이다. 여전히 국내 사망자의 75.6%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 요양원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사망하는 사례까지 합산하면 80%를 넘어선다. 집에서 사망하는 사례는 15.5%에 불과하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매년 증가해 지난달 130만명을 넘어섰지만 19세 이상 주민등록인구 4371만명의 3% 수준이다. 국내 암 사망자 중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를 이용한 비율도 2020년 기준 23%에 그친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생긴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상 서류가 하나 더 생긴 것 외에는 변한 게 없다”며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담당 의사와 10분 이상 2~3번은 만나 앞으로 예상되는 신체적 변화와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하며 사전에 몸과 마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환자 본인이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가족이 원하는 경우 연명치료를 이어가는 사례도 빈번하다. 또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치료는 중단하더라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산소·영양 공급은 유지해야 한다. 의료진이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판단해 중단하지 않는 한, 환자나 보호자의 의사에 따라 임의로 멈출 수 없다. 질환을 가진 환자가 집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가족들 곁에서 사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찬성 여론이 높아진 데 이어 최근 정치권에서도 의사조력자살 법제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안락사나 조력사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논의가 더디고, 웰다잉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될 경우 온전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사회적 압력에 의한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은 “안락사나 조력사를 합법화하기 위해서는 자격 요건, 대상자, 방법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 아직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문화가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안락사보다는 현재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강원남 웰다잉플래너 역시 “사람들이 안락사를 원하는 이유는 고통없이 편안하게 인간답게 죽고 싶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도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게 죽고 있다는 건데, 그런 점을 고려해 안락사보다는 모두가 인간답게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호스피스와 같은 정책을 확대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전문가 “안락사·조력사 도입 시기상조”
현재 죽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얼까. 윤영호 교수는 ‘광의(廣義)의 웰다잉’ 체계 마련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광의(廣義)의 웰다잉은 죽음에 임박했을 때가 아닌 여생이 5~6개월 남았을 때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 확대와 더불어 독거노인 공동부양, 유산 기부 방안 마련, 인생노트, 마지막 소원 성취 등을 포괄한다. 윤 교수는 “진정한 생명 존중의 의미로 안락사가 논의되려면 환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고통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며 “향후 안락사나 조력사를 도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광의의 웰다잉이 선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죽음의 당사자가 될 자신이 먼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민해보고, 법률상 효력이 있는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미리 작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족들과 장례 절차를 함께 논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까운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웰다잉 관련 프로그램을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에서 웰다잉 교육을 들은 한순자(75)씨는 “처음에는 유서를 쓰라고 했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며 “교육을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사는 동안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문옥신(59) 노인맞춤돌봄 생활지원사는 웰다잉 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삶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죽음은 삶의 연장이더라고요. 잘 살아야 품위 있게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는 동안 성실하게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내려고 합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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