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국회도서관 - 2023. 11. Vol. 515」
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찐빵’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쑥개떡’이라는 이름을 가진 떡은 세상에 허다하지만, 나의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든 그것은 우주에서 단 하나다. 그러니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이 고유하다
강원도 화천은 내가 태어나 아홉 살까지 살았던 고장이다. 화천읍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로 사십 분 달려가야 도착하는 마을, 상서면 산양리가 나의 고향이다. 내가 기억하는 고향은 강원도 산골 평화로운 농가 정경이라기보다 작은 상점들이 몇 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조금 을씨년스럽고 어설픈 연극 무대 세트장 같은 모습이다.
나는 덕거리 상회 막내딸이었다. 우리집은 동네의 도매 가게였다. 당시는 도매 가게와 소매 가게가 따로 있어서 소매점은 도매 가게에서 물건을 받아 팔았다. 우리집을 기준으로 도로 건너 왼쪽은 옷과 화장품을 파는 ‘아모레 양행’이, 오른편은 ‘삼광 양복점’과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오뚜기 상회’가 나란히 있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제일 사진관’, ‘삼일 서점’이 있었다. 군부대 지역이었던 까닭에 시골치고는 이런저런 품목을 파는 가게가 제법 모여 있었고, 그 동네에서 나는 자랐다.
아모레 양행 아주머니의 딸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얼굴이 하얀 은영이였다.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옷을 떼다 팔았고, 예쁜 원피스는 은영이에게 먼저 입혔다. 은영이가 새 옷을 입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삼광 양복점 딸 수연이, 사진관 딸 설희 그리고 덕거리 상회 막내딸인 내가 똑같은 원피스를 금세 사 입기도 했다. 지금도 사진을 가지고 있다. 시골 동네 여자 어린이 서너 명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사진 안에는 얼굴에 버짐이 핀 어린이도 있고, 피부가 까무잡잡하게 탄 어린이도 있는데 옷이 똑같다. 주황색 원피스, 그것도 드레스처럼 발목 위까지 오는 길이의 원피스를 입은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대책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덕거리 상회의 실내 조명은 어두침침하였다. 일부러 조성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조명이 부족한 시대였으리라. 덕거리 상회의 겨울철 풍경이 떠오른다. 가게 가운데 놓인 큰 연탄 난로. 연탄 네 장은 족히 들어갔던 듯 싶다. 난로 위에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올라가 있고, 주전자 안에 보리차가 끓고 있었다. 겨울철 학교에 갔다가, 또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서면 가게 안에 보리차 냄새가 배어 있었다
덕거리 상회 안, 왼쪽 저편 바닥에는 항아리가 묻어져 있었다. 막걸리 항아리였다. 양조장에서 말통으로 막걸리를 사서 그 항아리에 부어놓으면, 동네 어른들이 주전자를 가지고 술을 사러 왔다. 사실 어른들이 술을 사러 왔던 모습은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언니가 말해 주어 늦게나마 재구성된 기억이다.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은 덕거리 상회의 안쪽과 뒤쪽의 방이었고, 부엌은 가게 뒤편에 있었다. 재래식 부엌이었는데 엄마는 그 불편한 부엌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특별한 음식’을 가끔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탕수육 같은 것이었다. 짜장면을 먹던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에 집에서 탕수육이라니……. 엄마는 고기를 바삭하게 만드느라 전분 반죽을 입힌 돼지고기를 꼭 두 번 튀겼다.
엄마가 탕수육을 만드는 날, 가게와 방에 기름 냄새가 얼마나 퍼졌을까. 그런 날이면, 삼 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부엌 옆을 떠나지 않았고 엄마 옆에 붙어 있었다. 아마 애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튀긴 고기 조각 하나라도 입에 넣으려고 말이다. 엄마가 두세 점의 고기를 입에 넣어주다가 “이러다가 탕수육 만들 고기가 없겠다. 이제 끝.” 하고는 매정하게 더 이상 고기를 주지 않아서 어린 나는 더 감질이 났다.
엄마는 가끔 반죽을 직접 해서 찐빵을 만들기도 했다. 따뜻한 찐빵을 반으로 갈라보기 전에 나는 두근거렸고, 반으로 갈라본 후 실망했다. 찐빵 안에 짙고 붉은 팥이 듬뿍 들어있어야 했는데, 엄마가 만든 빵 안에는 과일 조림 같은 것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사과나 복숭아를 잘게 썰어 설탕에 졸인 것을 넣은 거다
과일 조림 넣은 ‘남다른 찐빵’을 만들고, 재래식 부엌에서 맛있는 탕수육을 위해 고기를 두 번씩이나 튀기던 그때의 엄마는, 오십 대 초반에 이른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다.
-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찬을 챙겼다.
반찬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양을 넉넉하게 담았다.
남들처럼 사각 도시락이 아니라 겉에 화초나 대나무, 새가 그려진 검정색의 찬합이었다.
어머니로서는 최대한 멋을 낸 도시락이었다.
밥이 한 단, 나물과 달걀 등속이 한 단, 거기에 고기나 생선이 한 단, 후식으로 한 단…….
어머니는 단수 높게 층층이 찬합을 쌓아 올리면서 흐뭇해하셨다. - 77쪽, 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음식을 조금 만들어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중얼거리면서 수첩에 뭔가를 적는 엄마의 모습을 종종 보았다. 불편한 재래식 부엌에서도 ‘특별한 음식’을 만들던 그때, 엄마는 삶의 의욕이 샘솟고 용감한 마음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맛있는 탕수육을 만들겠다는 의욕, 남들과 다르게 과일 조림을 넣은 찐빵을 만들어 보겠다는 용기가 가득했을 거고, 성공한 엄마는 흐뭇했을 거다. 그것이 엄마의 자부심이었을 거다.
나의 엄마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2011년 겨울, 췌장암이 발견되었고, 어찌 손쓸 겨를도 없이 석 달 정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은 삼월 말 밤이었는데, 창밖엔 노란 산수유꽃이 곧 봄이 올 거라 말하고 있었다. 봄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에도 엄마는 더 살아볼 힘을 내지 못했다. 숨이 끊어진 엄마의 이마와 손등을 하염없이 쓰다듬던 봄밤이 십 년 전인데 마치 어제의 일만 같다. 아픔과 슬픔이 희석되지 않는 그 밤은,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아득한 과거가 될까.장례식이 끝나고 엄마의 집에 돌아왔다. 이 세상에 엄마는 없는데 냉장고에는 엄마가 만들어 얼려놓은 만두들이, 엄마가 만들어 놓았던 밑반찬들이 남아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뒤, 엄마의 자식이었던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만들어 두었던 만두로 만둣국을 끓였다. 아마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시간에 다시는 먹지 못할 만두였을 테지. ‘엄마의 만두’를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먹었다. 누가 옆에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묵묵히 먹기만 했다.
그날 새언니가 ‘엄마의 쑥’을 찾아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쑥을 데쳐 둥글게 뭉쳐 꼭 짜놓은 덩어리를 냉동실에 얼려둔 것이었다. 엄마는 봄철이면 어김없이 당신의 고향인 춘천 용산리에 갔다. 봄이 온 들판에서, 봄이 당도한 산 아래에서 쑥을 뜯어왔고, 쑥개떡을 만들었다. 삼 남매 중 내가 쑥개떡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가 만들던 방법을 새언니가 얼추 기억해 쑥개떡을 만들었다. ‘엄마의 쑥’으로 만든, 마지막 쑥개떡이었다. 이제 어떤 봄이 오더라도 엄마가 봄 들녘에서 뜯어온 향긋한 쑥으로 만든 쑥개떡은 영원히 먹지 못할 것이다.
- 우리는 잘 모르고 살았지만, 제철의 순환으로 살찌고 미각을 응원했으며 그 힘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일이기도 하다. - 272쪽, 박찬일,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라 어른이 된다. 자신의 엄마가 객관적으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자식들은 모두 자기 엄마가 만든 음식을 최고로 여기니까 말이다. 엄마가 순환하는 계절에 맞춰 만들어 먹인 음식이 나의 온몸을 돌면서 뼈에, 피에, 살에 스며들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의 만두가, 엄마의 쑥개떡이, 엄마의 찐빵이, 이러한 것들이 자아낸 기운의 총합이 내 몸 어딘가에 깃들어 있다.
‘찐빵’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쑥개떡’이라는 이름을 가진 떡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푸른숲•『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박찬일, 달세상에 허다하지만, 나의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든 그것은 우주에서 단 하나다. 그러니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이 고유하다. 내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때까지 엄마의 음식을 눈물겹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박찬일 작가의 책을 읽고 배운다. 세상의 ‘자식’들이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 자신이 먹었던 음식을 상기하는 것은 그저 그런 범상한 일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추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고유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 우리는 인생 앞에 놓인 수많은 맛의 강물을 건넌다. 당신 삶 앞에 놓인 강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때로 혀가 진저리치게 신맛도 있어야 하고,
고통스러운 늪 같은 쓴맛도 결국은 인생의 밥을 짓는 데 다 필요한 법이 아닐까.
밥의 욕망, 밥에 대한 욕망, 그것이 우리를 살린다. - 11쪽, 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살다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지나치게 자라나 저녁마다 혼자만의 동굴로 부리나케 피신하고, 해가 뜨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간신히 세상에 걸어 나오는, 못난 시간이 나를 점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면 또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그러한 존재니까. 약하고 약한 마음이 걸어간 흔적으로 가느다란 삶의 길을 만들어내는 존재니까. 살다가 길을 잃을 때가 있다.그럴 때면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면 또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그러한 존재니까. 약하고 약한 마음이 걸어간 흔적으로 가느다란 삶의 길을 만들어내는 존재니까.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푸른숲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박찬일, 달
글 - 서현숙국어교사, 작가
[t-23.12.10. 20221230-16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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