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국회도서관 2023. 10월호 VOL.51」
광교 호수공원
내 삶에 들어온 책
노부인의 방문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作
『 노부인의 방문 』은 현대 스위스의 대표적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35세 때인 1956년 완성한 3막극 희곡으로 50년대 말 취리히에서 초연되었다
내가 『노부인의 방문』을 처음 읽은 것은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3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에 카프카류의 실존주의 서적을 과시하듯 손에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이상과 현실,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문제(부조리)와 희생을 주변에서 목도하면서 사회를 ‘부조리’라는 단어 하나로 특징지어 비판하곤 하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출간되기 40여 년 전이었지만 같은 제목의 토론에 귀 기울이던 그 시절,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노부인의 방문』은 현대 스위스의 대표적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35세 때인 1956년 완성한 3막극 희곡으로 50년대 말 취리히에서 초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12월에 강두식 역, 이승규 연출로 극단 ‘가교(架橋)’에 의해서 초연된 이후 여러 극단들이 자주 공연하는 인기 레퍼토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짜하나시안이라는 노부인이 젊은 시절에 실연과 배신의 설움을 안고 떠났던 고향 귈렌을 복수를 위해 45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데서 시작된다. 귈렌 역에 서지 않는 급행열차를 갑자기 멈춰 세우고, 그 열차에서 내리는 노부인을 여객주임이 따라 내리며 비상 브레이크를 당긴 노부인에게 엄중히 항의한다. 노부인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4천 마르크를 던져주자, 여객주임은 몰라봐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정해진 사회의 규범을 본인의 편의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돈으로 바꿔버리는 노부인의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은 독자와 관객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정해진 사회의 규범을 본인의 편의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돈으로 바꿔버리는 노부인의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은 독자와 관객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몰락한 도시의 재건비 지원을 기대하는 귈렌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노부인이 수행원들과 함께 검은 표범이 들어 있는 동물 우리와 빈 관을 끌고 숙소로 이동하는 장면은 앞으로 누군가 살해되어 관에 넣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하여 독자들을 섬뜩한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날 저녁 환영 만찬에서 노부인은 “난 당신들에게 10억 마르크를 주고 정의를 사겠어요”라고 말하며 거액의 금액을 귈렌에 후사하는 대신 정의를 요구한다. 그것은 자기를 배신했던 옛 애인 알프레드를 살해하는 대가로 10억 마르크를 희사하겠다는 조건부 제의였다. 이러한 노부인의 제안에 대해 시장은 시민을 대표해 “우리는 피를 흘리기보다는 가난하게 살 것입니다”라며 거절하고, 시민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환호의 박수를 받는다. 이어 노부인의 “기다리지요”라는 짤막한 반응과 함께 귈렌 시 안에서 정의의 갈등이 시작된다. 과연 정의는 사고, 팔 수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에는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과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로 자행된 이 살인을 책임질 어떤 특정 개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 참여자들은 다만 귈렌 시민이라는 집합체 속에서 익명으로 숨겨져 있을 뿐이다.
이후 그녀는 차츰 귈렌 시의 대부분을 하나씩 사들인다. 그리고 남편을 소모품처럼 두 명이나 바꿔가며 이혼과 결혼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가끔 호텔 로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소위 그녀의 정의가 구현되길 기다린다.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은 황금 쪽으로 기울고, 각종 사치품을 외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다. 알프레드는 시민들이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외상을 늘리고 있다며 가위가 눌리는 고통으로 불안해하다가 탈출을 시도하지만, 시민들의 방해로 좌절된다. 마침내 시민들은 그의 살해에 동조하면서 그들의 변심을 합리화 내지 정당화해간다. 결국 알프레드는 자신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시민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시민회의가 있던 날 가족과 동네를 드라이브하고 혼자 콘라아쯔바일러 숲을 산책하다 노부인을 만나고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아나운서가 TV 중계를 하는 가운데 시민회의가 열린다. 끝까지 양심을 지킬 것 같았던 교사의 연설과 시장의 “깨끗한 마음으로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라는 표결 제의 후 ‘알프레드 살해를 전제한 노부인의 10억 기금 수락’은 시민의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경찰관과 시장은 알프레드를 군중들 사이로 안내하고, 군중들이 그를 에워싸 살해한다. 얼마 후 기자들이 왔을 때, 의사는 “너무 기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라며 사망원인을 설명한다. 그렇게 살인이 민주적인 절차까지 거쳐서 원만히(?) 진행된 후, 주검을 확인한 노부인은 약속대로 10억 마르크 수표를 시장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콘라아쯔바일러 숲에서 알프레드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던 대로 그녀는 알프레드의 시체를 관에 넣어 카프리섬으로 떠나간다. 그녀의 계획대로 정의는 10억 마르크에 팔렸고, 구현되었다.
“이 세상은 나를 창녀로 만들었고, 나는 이제 이 세상을 사창굴로 만들 작정이다”라며 복수심으로 가득 차 거대한 황금의 유령이 돼 버린 그녀는 절대적인 정의의 가능성을 비웃는다. 거부(巨富)의 돈지갑에 들어있는 화폐의 색깔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정의가 존재하며, 재정적 능력으로 빵을 찍어내듯 정의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제는 자신도 정의를 제조할 만한 재력을 갖추었노라는 자신감으로 정의의 실현을 기다렸던 그녀는 알프레드를 살해한 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시종 조소를 머금고 있다. 그녀의 모든 행위는 세상에 대한 혐오에서 출발하며 자신이 던져주는 수표를 받아들이는 귈렌 시민들을 혐오한다. 그녀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정의도 불의도 아니다. 그녀는 인간 질서 밖에 위치하여 인간성을 시험하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
시민들과 노부인은 ‘정의’라는 명목 아래 알프레드의 목숨을 거래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노부인, 그리고 경제적 풍요와 욕망 앞에 무력해지는 시민들, 과거의 행위에 책임져야 할 알프레드까지 무대 위의 모든 사람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돈과 권력 앞에 인간성과 정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한다. 『노부인의 방문』은 표면적으로는 한 노부인의 복수 서사극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과 권력 앞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노부인의 방문 』은 표면적으로는 한 노부인의 복수 서사극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과 권력 앞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과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로 자행된 이 살인을 책임질 어떤 특정 개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 참여자들은 다만 귈렌 시민이라는 집합체 속에서 익명으로 숨겨져 있을 뿐이다. 귈렌 시민들은 노부인과 결탁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 자신들의 정의 구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갔겠지만, 사실 그들은 재력과 결탁하여 엄청난 불의를 저질렀다. 반면, 알프레드는 최대의 패배자인 듯 보이지만, 실제는 죄를 인정하고 죽음으로써 죄의 대가를 치르고, 정의를 구현한 유일한 인물이며 귈렌을 빈곤으로부터 구출한 의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후 역사는 정의나 불의와 관계없이 살아남은 자인 귈렌 시민의 입장에서 기술되어 졌을 것이다. 그 내용은 시민들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알프레드의 잘못을 더 크게 부각시켜 작성되었을 것이다
70여 년 전 유럽에서 쓰인 작품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도 작품 속의 귈렌 시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의는 무엇인지? 나도 귈렌 시민 중 한 사람처럼 정의를 거래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p63)
글 - 정광헌작가,『서촌, 그리는 마음』 저자
『뒤렌마트 희곡선』,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민음사
광교 호수공원 [n-23.11.08. 20231108-10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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