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 - 2007. 01. 25」
“음악으로 세대간·계층간의 벽 허물고 싶어”
웹버족(Webver)을 아는가?
최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개인 블로그 운영은 물론,
인터넷 쇼핑·게임, 전자상거래, 학위취득까지 하고 있는 시니어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명 디지털 시니어, 웹버족이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다.
웹버(Webver)족이란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노인세대를 지칭하는 ‘실버(silver)족’을 합친 신조어로
인터넷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어르신들을 뜻한다.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에서 ‘고야 음악방송’(http://afreeca.pdbox.co.kr/kimjungyull)을 진행하는
김정열(66)씨 역시 이런 웹버족 중 하나다.
음악애호가들을 위해 개인 음악전문 방송을 시작했다는 그는
아프리카에서 최고령 BJ(Broad-casting Jockey:방송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이 방송을 듣는 애청자는 3500여명, 하루 고정 애청자만 30~50명 되다보니,
방송을 시작한지 보름만에 베스트방송으로 꼽히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중장년층이 많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20대 애청자들이 대다수를 이룬다는 것.
개중에는 10대 학생과 30대 직장인 애청자도 있을 정도다.
유성기 틀면 울음 ‘뚝’
음악사랑 남달라
“안녕하세요. 고야 음악방송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요?
좋은 음악도 배가 고프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도 여러님들의 신청곡을 찾기까지 우선 제가 선곡한 곡부터 올려드리겠습니다.
첫곡으로 Sarsh Brightman의 곡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팝페라 가수로서 배우로서 또 크로스 오버 가수로서 모두 정상에 등극한 뮤지션입니다….”
매일 밤 8시부터 시작하는
‘고야의 음악방송’은 이렇게 김정열 BJ의 푸근하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문을 연다.
진행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다가 목소리 또한 전문 DJ 못잖아 과거 방송관련직에 몸을 담았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와 무관한 신문기자 출신이다.
어릴때부터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그는
'울음보를 터뜨린 갓난쟁이가 유성기를 틀면 뚝 그쳤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창시절에는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많이 접했고,
당시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면 너나없이 찾았다는 YMCA 뒷골목 ‘디쉐네’와 명동의 ‘돌체’를 집 드나들듯이 했다.
사회로 진출하고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고,
이는 현장감 있는 음질을 구하기에 이르러 오디오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했다.
바쁜 기자 생활 중에도 김씨에게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생활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좋은 음반을 한장두장 모으면서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과 이 음악들을 함께 공유해야지’ 생각했던 것도 이쯤의 일이다.
그런데 서울신문 문화부장을 역임하고 심의위원으로 재직 하던 지난 95년, 갑자기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잦은 밤샘과 업무과다,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직업 때문에 몸이 상당히 망가져 있었던 것.
김씨는 할 수 없이 54세의 젊은 나이에 정든 직장을 떠나야했다.
건강을 되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러는 동안 즐겨듣던 음악을 공유하고픈 욕망은 커져갔다.
“누구나 방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개인방송 미디어가 등장했다는 소리에 눈이 번쩍하더라고요.
소일거리가 될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바로 웹캠을 컴퓨터에 장착하고 마이크를 달았다.
그리고 지난 2006년 10월 25일 그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다양한 음악장르
편안한 진행이 ‘인기비결’
‘고야’는 반갑거나 좋을 때 쓰는 감탄사의 ‘아이고야’에서 ‘아이’를 뺀 것과 스페인 화가의 이름,
또 ‘외로운 들녘(孤野)’이라는 세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12까지 노래와 다양한 이야기로 엮어가는 ‘고야 음악방송’이 시작되자
초등학생부터 성인남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찾아주었다.
대부분이
“너무 신선하다,
컴퓨터 익혀 음악방송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교육적이다” 등의 의견을 주면서 애청자들이 하나 둘씩 늘었다.
이는 김씨의 해박한 음악지식과
기자 시절 직접 취재했던 재미난 뒷얘기와 삶의 편린들이 흥미를 더 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모든 세대가 함께 들을 수 있는 폭넓은 선곡이 빠질 수 없다.
“평소 즐겨 듣던 음악은 물론 젊은이들이 즐기는 힙합,
하드록에서부터 스탠더드 팝, 그리고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중동이나 베트남 등과 같은 제3세계 음악도 접할 수 있어 많은 분들이 애청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김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까다로운 음악선곡과 아티스트 정보, 음악이 나온 배경에 관한 자료조사 등이다.
이 과정만 하루 3시간이 넘게 든다하니, 좋은 음악방송이 그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 방송을 하는 다른 BJ들이 할아버지가 하는 방송의 인기비결을 탐문하러 왔다가 후한 점수를 주고 갈 정도.
음악에 관해 지적수준이 상당하고 정성들여 선곡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게다가 센스까지 곁들였다는 평이다.
게다가 김씨의 방송에서는 상대를 비방하는 글이나 욕설, 이상한 대화명은 쓸 수 없다.
이런 실수로 했을 시는 할아버지의 훈계가 뒤따르며,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애청자라 하더라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강퇴(강제퇴출) 당하게 된다.
때문에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려는 청소년들은 물론, 이 방송을 함께 듣는 부모님들의 감사메시지가 게시판을 채운다.
음악신청 사연도 다양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로 전하기도 하고,
대학졸업 앞둔 졸업생의 고민, 여자친구와 결별해 울적한 마음을 달래 줄 노래를 김씨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한번은 삶이 너무 힘들어 이루려고 했던 꿈을 접으려고 한 청년이 있었어요.
나이 많은 제가 이 방송을 열심히 진행하는 것을 보고
‘그래,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갖자’고 생각하고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나 봐요.”
각박한 세상에 나무그늘처럼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방송이라는 평만큼 김씨의 책임감도 커졌다.
“모든 세대와 계층의 벽을 허물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소통의 장,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갈 수 있는
정거장과 같은 역할을 고야 음악방송이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珉)
113호 200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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