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도종환 - 「오월의 편지」
오월의 편지
도종환
붓 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는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 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은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랫동안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나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님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낳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 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 니다.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시인의 삶에 동반자였던 친구을 하늘 별자리 찿아 멀리 보낸 허점함과 그리음을...
[t-07.05.14. 20210513-175844-3]
'내가만난글 > 갈피글(시.좋은글.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한 사람의 속옷 - 바이런의 아픔 (0) | 2007.05.20 |
---|---|
중년의 많은 색깔들 (0) | 2007.05.16 |
행복한 사람의 속옷 - 노인이 사랑하는 것들 (0) | 2007.05.09 |
고도원-부모님 살아 계실 때 (하나)/좋아하는 것 챙겨드리기 (0) | 2007.05.05 |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0) | 2007.04.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