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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 13-14.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by 탄천사랑 2007. 5. 11.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13
네 번째 별에는 상인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얼마나 바쁜지 어린 왕자가 왔는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안녕 하세요." 그가 말했다.
"담배가 꺼졌네요."
"셋 더하기 둘은 다섯. 다섯 더하기 일곱은 열 둘, 
 열 둘 더하기 셋은 열 다섯, 
 안녕. 열다섯 더하기 일곱은 스물 둘, 
 스물 둘 더하기 여섯은 스물 여덟, 
 새로 불붙일 시간이 없어.
 스물 여섯 더하기 다섯은 서른 하나,
 휴우! 그러니까 도합 5억 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이 되는 구나."
"무엇이 5억이야?"
"응? 
 여태 거기 있었니? 
 5억 1백만…… 그리고 뭐더라.... 하두 바빠 놔서. 
 나는 성실한 사람이야, 
 난 쓸데 없이 말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둘 더하기 다섯은 일곱……."
"무엇이 5억 1백만이야?"

한 번 질문하면 그걸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상인은 고개를 들었다.

"54년 전부터 내가 이 별에서 사는데,
 꼭 세 번 귀찮은 일을 봤어.
 첫 번째는 22년 전에 난데없이 떨어진 풍뎅이 때문이었어.
 요란한 소리를 내질려서 덧셈하는데 네 군데나 틀렸지.
 두 번째는 11년 전에 신경통이 생기 적이 있디.
 운동이 부족해서야.
 산보할 시간이 없단 말야. 
 난 성실한 사람이야.
 세 번째는 ------ 음, 이번이야.
 그래 5억 1백만이라고 했었지----"
"무엇이 몇 억이란 말이야?"

상인은 조용히 일할 가망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몇 억인고 하니,
 어떤 때 하늘에 보이는 그 조그만 것들이 몇 억이란 말이다."
"파리 말이야?
"아니다, 아니야!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만 것들이지."
"벌 말이야?"
"아니야, 금빛 나는 조그만 것들인데 왜 게으름뱅이들이 그걸 보고 
 쓸데없이 공상하는 것 말이야.
 하지만 난 성실한 사람이라 공상할 시간이 없지!"

"아! 별들 말이야?"
"그래, 그래. 별 말이다."
"별 5억 1백만 개를 가지고 아저씬 무얼 하죠?"
"5억 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이지.
 난 성실하고 정확한 사람이야."

"그 별들을 가지고 어저씬 뭘 해요?"
"뭘 하느냐고?"
"그래요."
"아무것도 안 하지. 그냥 갖고 있는 거야."
"별을 갖고 있어요?"
"그래."

"하지만 전에 왕을 봤는데----"
"왕은 무얼 갖지 않아.
 <지배하는 > 거야.
 아주 다르지."

"별을 가져서 무얼 헤요?"
"부자가 되는 거지."
"부자가 되서 무얼 해요?"
"누가 다른 별을 발견하면 그걸 사지."

'이 사람은 그 술꾼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라고 어린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질문을 했다.

"어떻게 별을 차지할 수 있어?"
"별들이 누구의 것이야?"

상인이 트집을 부리며 되짚어 물었다.

"몰라요. 주인이 없지 뭐."
"그러니 내 것이지. 
 내가 제일 먼저 그걸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돼?"
"물론이지.
 주인이 없는 보석을 봤다고 해.
 그럼 그건 네 것이지. 
 주인이 없는 섬을 봤다고 해.
 그럼 그건 네 거야.
 맨 처음으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면 그걸 특허를 내지. 
 그 생각은 네 것이니까. 
 그러므로 그와 같이 별을 차지할 생각을 나보다 먼저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 
 별들이 내 차지가 되는 것이란다."

"그렇군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런데 그걸로 뭘해요?"
"관리하는 거지.
 별을 세고 다시 세는 거야."  상인이 말했다.
"그건 힘든 일이야. 
 하지만 난 성실한 사람이니까!"

어린 왕자는 그래도 속이 시원치 못했다.

"난 말이죠.
 목도리가 있으면 그걸 목에 감고 다닐 수가 있고 꽃이 있으면 그걸 꺾어 가지고 다닐 수가 있어. 
 하지만 아저씬 별을 딸 수는 없잖아요?"
"응, 하지만 은행에 그걸 맡길 수는 있지."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말이야.
 내가 조그만 종이 위에 내 별 숫자를 쓰는 거야.
 그리곤 그 종이를 서랍 속에 넣고 잠근단 말야."
"그것뿐인가요?"
"그것뿐이지!"

'그것 참 재미있군.'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것 참 시적이야. 하지만 성실한 것은 아니야'

어린 왕자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 대해 어른들과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겐"  어린 왕자는 말했다.

"꽃이 하나 있는데 매일 물을 줘. 
 또 세 개의 화산이 있는데 주일마다 청소를 해.
 죽은 화산까지도 청소해 주지.
 알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화산이나 꽃에게 이롭거든.
 하지만 아저씬 별에게 이로울 게 하나도 없네."

상인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대답할 말을 찾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길을 가며, 
어른들은 정말이지 아주 이상야릇하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14
다섯 번째 별은 아주 이상했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작은 별이었다.
거기에는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밖에는 없었다.
어린 왕자는 하늘 어디에도,
집도 사람도 하나도 없는 별에 가로등과 점등인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어쩜 어리석은 사람인지는 모르지,
 하지만 어떤 면에선 왕이나 허영꾼나 상인이나 술꾼보다 덜 어리석다. 
 적어도 그가 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니까.
 그가 등을 켜면 별과 꽃이 하나 더 생기게 될테니 말이야.
 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재우는 거지.
 이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니까 진심으로 좋은 일일 거야.'

그는 별에 들여서면서 공손하게 점등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왜 등을 끄셨어요?"
"명령이야, 안녕."  점등인이 대답했다.
"명령이 뭔데요?"
"등을 끄라는 거지. 안녕."  그리고 그는 다시 등을 켰다.
"왜 등을 켰어요?"
"명령이야."  점등인이 말했다.
"알 수가 없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알고 모르고 할 게 없어."  점등인이 말했다.
"명령은 명령이니까. 안녕."  그리고 그는 등을 껐다.

그리고 그는 붉은 바둑판 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이건 정말 기막힌 일이야.
 전에는 좋았지.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에 불을 켰으니까.
 나머지 낮 시간에는 쉴 수 있고 나머지 밤 시간에는 잘 수도 있고----"
"그럼 그 뒤로 명령이 바꿘 건가요?"
"명령은 바뀌지 않았지." 점등인이 말했다.
"그게 문제란다!
 이 별은 해마다 더 빨리 도는데 명령은 바뀌지 않았단 말이야!"
"그래서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래서 이젠 일 분에 한 번씩 돌기 때문에 단 일 초도 쉴 수가 없단다. 
 일 분마다 한 번씩 켰다 끄는 거야!"
"좀 이상한데?
 아저씨네 별은 일 분이 하루야!"

점등인이 말했다.

"이상할 거 하나도 없어.
 우리가 이야기 한 것이 벌써 한달이 된다."
"한 달이나요?"
"그래, 
 삼십 분이니, 삼십 일이지! 안녕."  그리고 그는 다시 등을 켰다.

어린 왕자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명령에 그처럼 충실한 점등인이 좋았다.

그는 자기가 옛날에 의자를 끌어당겨 해를 지게 한 것을 생각해 냈다.
그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아저씨---- 쉬고 싶을 때 쉬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뭔데."  점등인이 말했다.

"충실하면서도 게으를 수 있는 법이니까."

어린 왕자가 계속해 말했다.

"아저씨 별은 하두 작아서 세 번만 뛰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어. 
 아저씨가 항상 해를 볼 수 있도록 천천히 걷기만 하면 그만이야. 
 쉬고 싶의면 걸으면 돼-----
 그럼 낮이 계속 될 테니까."
"그건 별로 큰 도움이 안 돼."  점등인이 말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잠자는 거야."
"그건 안 됐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됐지."  점등인이 말했다.
"안녕."

그리고 그는 불을 껐다.
<저 사람을> 어린 왕자는 더 멀리 여행을 하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 
 왕이니, 허영꾼이니, 술꾼이니, 상인이니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멸시를 당할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아.
 아마 그건 그이가 자신 외의 다른 것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는 섭섭해서 한숨을 내쉬고 계속 생각했다.
'내가 친구를 사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별이 정말 너무 작아서 둘이 있을 수가 없어.----'

어린 왕자가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루에 천 사백 사십 번이나 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축복받은 별을 못 잊어 한다는 사실이다.
※ 이 글은 <어린왕자>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저자 - 생텍쥐페리 
역자 - 박용철
덕우 - 1989.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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