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옥 -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내 사랑 문둥아"
"아내야!"
제일 기분이 좋을 때 남편은 이렇게 나를 불렀다.
좀체 들을 수 없는 이 한 마디에는 그렇 수 없는 따스함이 스며들어 있다.
남편은 참 많은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아내야', '옥이야', '순옥아', '문둥아'. '내 마누라', '고모야', '문디 사기나'.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순간의 남편 기분을 알아챌 수 있다.
기분이 좋으면 막 웃으면서 '문둥아 문둥아' 라고 했고
그와 비슷한 것 같지만 '문디 가시나'는 정반대의 기분일 때 썼다.
불쾌하거나 화가 날 때면 '문디 가시나!'라고 했고 바로 잇대어 '쌍년'을 덧붙었다.
같은 '문디', '문둥아'라도 감정에 따라 톤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한번은 엄마가 한자리에 계시는데도 자꾸 '문디 가시나'라고 불러대자
"그러면 문디는 나 아니냐?
문디는 나고 가시나는 내 딸이니까 문디 가시나라 그러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저거 문디지.
아닙니다요, 저는 엄마 보고 안 그럽니다요" 하며 슬쩍 돌려댔다.
언제나 엄마가 정색을 하면 그이는 금방 능청을 떨며 돌려대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나한테 쓴 적은 없어도 남편이 쓰는 제일 심한 욕설은 '개구리 같은 년'이다.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아마 개구리의 '변덕스럽고 경망스럽다'는 느낌을 욕에 실은 것 같았다.
결혼하고 처음에 내가 가장 욕을 많이 얻어먹었던 것은 황학동에서 고가구점을 했을 때였다.
5시에 문 닫고 6시, 늦어도 7시까지는 집에 들어와야만 욕을 듣지 않았다.
조금 늦으면 욕을 그렇게 해대면서 어디 갔다 왔나, 누구 만나고 왔나,
어떤 놈 만나고 왔나 식으로 따져 물었다.
"나오다 손님이 와서 차 한 잔 하고 이야기하다가 늦었어요. 왜요? 마누라 이제 나가지 말까요?"
"안 나가면 어떡해! 다음부터 6시, 7시까지 안 들어오기만 해봐라."
대개는 이 정도로 그쳤다.
이렇게 의심하고 따져드는 것도 마누라를 사랑해서 그러려니 하고 욕을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좀 심하게 구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쌍년의 가시나, 누구 붙여놓고 왔어!"
"뭐라고요? 진짜 이제 못할 소리가 없네요. 알았어요. 내가 어디로 가버려야지."
화가 나서 나온 김에 나는 버릇을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길로 친정으로 갔다.
찻길도 제대로 없는 험한 길을 밤 11시에 15분이나 걸어서 갔더니 엄마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버릇을 고쳐보려 한다고, 엄마와 함께 일을 꾸몄다.
그때 국민학생이던 영진이는 아침마다 꼭 우리 집에 들렀다가 학교로 갔다.
이튿날,
"고모부한테 가서 집으로 와서 아침 드시라고 해라"며 영진이를 보내고 나는 시내로 나왔다.
영진이는 우리 집에 가서 꽤 연기를 잘 했던 모양이었다.
"고모 어디 갔어요?"
하는 조카 말에 대답을 못 했던 남편은 어머니 집에 와서 아침을 먹을 때에도 걱정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평소 때처럼 유전 다방에 앉아 있는 남편 앞에 가서 앉았더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니가 내 여기 있는 줄 어찌 알았노?"
"다음에 또 한 번 그래보세요."
"어제 어디 갔었노?"
"어디 가긴 어디 가요. 엄마한테 갔지. 엄마가 그러려면 집에 와 있으래요."
"니가 그 길을 무서워서 밤에 어찌 갔노?"
"화나면 까짓 무서운 게 어딨어요."
"근데 영진이 요놈 봐라. 고모 갔었냐고 그러니까 안 왔다고, 요놈 봐라, 요놈 오기만 해봐라....,"
그 후부터는 그렇게 심한 말은 하지 않았다.
'어디 갔다 왔노? 어떤 놈 만나고 왔노?'라고 하면
'또 한 번 그래볼까요?'라고 대꾸했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말문을 돌렸다.
"내가 속상한데 무슨 말을 못 하겠노? 늦게 오니까 그렇지. 사람이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사실 우리는 제대로 부부 싸움을 한 번도 못해 보았다.
서로 부딪쳐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싸움이 되는데 부딪칠 일이 없었다.
남편은 욕도 잘 했고 고함도 크게 질렀지만 그것은 괜한 허풍과도 같은 것이었다.
같이 화를 내면 그의 시詩 속의 표현처럼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마구 때를 쓰다가
엄마의 고함소리 한방에 잠잠해지듯이 남편은 그렇게 수그러들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잘 냈다.
심성이 가냘프고 따뜻해서 변덕을 잘 부렸기 때문이다.
'문둥아. 문둥아...'하며 금방 기분이 좋았다가 별것 아닌 일에도 '쌍년아!'하고 화를 냈다.
금세 '한다!'라고 했다가 돌아서자마자 '안 해! 안 해! 안 해!로 바뀌었다.
그런 남편을 두고 나는 '우리 천상병 씨는 칠면조 변덕'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칠면조 변덕을 이기려면 나도 변덕스럽게 대처해야 했다.
"저런 거 무식한 년! 쌍년의 가시나!"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요? 정말 해볼까요?"
"정말 해볼까? 내가 못 이길 것 같아? 쌍년의 가시나! 무식한 거!"
"그래 난 무식해요. 유식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욕도 잘해요?
쌍년 하면 쌍놈의 새끼 해볼까요? 누가 손해인지....,"
"....,"
내가 정말 화내는 것 같으면 남편은 더 이상 대꾸를 않고 딱 돌아눕곤 했다.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릴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렇 때 나는 마치 참새 새끼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을 때 느끼는 그 심장의 팔딱거림 같은
그의 가슴 속을 마음으로 듣게 된다.
안쓰러워진다.
잠시 있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이불이라도 덮어주면서 달래야 했다.
"어이구, 참 성격도.... 마누라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
"마누라한테 그렇게 화를 내고, 뭔 성질이 그래요?"
"....." 가만히 있는 남편은 어쩐지 처량해 보여 나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참, 김 선생님이 있잖아요..." 하고 말을 돌리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언젠가 아무개 교수가 취재를 갔던 모 기자에게 남편의 이야기를 물어보았단다.
그러면서
'목 여사 참 안됐다.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사느냐. 재능도 있는 여잔데 천상병 씨한테는 아깝지 않느냐' 며
'이혼하고 그냥 행복하게 살지 그러느냐'라고 딱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과 만날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부터는
'천 선생을 만나니까 목 여사가 아니면 안 될 사람'이라며 지난번에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말했단다.
'아기같이 순진한 양반인데 그 성격에 목 여사가 아니면 못 살 사람'이라며
그 뒤부터는 남편의 안부를 곧잘 물어오곤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게 '목 여사는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개 교수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부부로 사느냐는 것이다.
남자, 여자라는 성을 놓고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못 산다'라는 이야기가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내가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그 사람은 못 산다는 생각으로 나는 살았다.
남편은 아기 같은 사람이었다.
부딪쳐서 싸움도 할 수 없을 만큼 여린 사람이었다.
내가 그의 곁에서 사라진다는 걸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꼭 필요한 '인간'으로서 살아왔기에 남이 보기엔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보름 정도를 셋방에서 함께 기거하면서도 남편은 손 한 번 잡는 일이 없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자 '이제 우리는 부부다'라며 선포하듯 말했다.
'0월 0일에 거사를 올립니다'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이야기까지 했지만 막상 우리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전기고문을 두 번만 당했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을 텐데
세 번을 당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라고 늘 하던 말처럼
우리는 '성'이 없는 부부일 수밖에 없었다.
12가구가 함께 살던 상계동 셋집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에 마당으로 나갔더니 새댁들이 나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아니 어젯밤에는 왜 그러셨어요?"
"뭘? 내가 어쨌는데?"
"깔깔깔, 아이고, 아저씨가 뭐 놔! 놔! 놔! 아던데요?"
원체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가 허슬 한 집이다 보니 밤에는 말소리가 다 들렸다.
그런데 우리 방에서 전날 밤에 사랑놀음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게 어때서?"
"아저씨가 싫다는데 왜 만지고 그러세요" 깔깔깔."
"야유, 젊으니까 다르기는 다르다."
잠잘 때 이불을 같이 덮고 있다가 서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놔! 놔! 하는 소리를 잘못 해석했던 것이다.
전날 밤에 남편이 몸부림을 치다가 이불을 다 끌고 가버려 내가 덮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남편은 뺏기지 않으려고 잡고 있다가 '놔라'라고 소리를 쳤던 것이다.
"이불을 끌어당긴 것을 아저씨를 끌어안은 줄 았았다"며 새댁들은 깔깔댔다.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과 내가 듣기 좋아했던 말은 '천생연분'이라는 말이었다.
내 친구 중에 사주를 보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 사주를 봐주더니 '정말 천 선생님하고 너는 천생연분이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남편은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는 툭하면 천생연분을 들먹였다.
"이혼해요. 이혼하면 되는 거지 뭐!"
"니가 뭐 시집을 갈 수가 있겠나?"
"갈 수 있죠"
"늙어 빠져서 우째 갈라꼬...."
"한번 가볼까요? 그럼?"
"쌍년의 가시나, 나는 우짜라꼬! 이 나이에 나는 우짜라꼬! 다시 장가도 못 갈 낀데"
"마누라는 시집갈 수 있어요"
"문디 가시나, 니 같은 할마씨를 누가 데리고 가노!"
"해봐요?"
"...."
"마누라가 천상병 씨를 두고 어떻게 가겠어요"
"문둥아, 니하고 내하고 천생연분인데 그럴 수가 있나? 천생연분이라고 니 친구가 그랬다면서....,"
천생연분.
22년을 함께 했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해 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우리 두 사람만의 정감,
남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우리 둘만의 내밀한 교류,
이런 것들이 있었기에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었으리라고,
하늘이 맺어준 인연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느냐고, 문득 느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 부부도 우리만의 독특한 애정 표현이 있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듯 재미나고 우스운 몸짓들이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가 남편은 내 손을 느닷없이 무척 아프도록 꽈악 쥐어 주었다.
그건 단순 명쾌한 그이의 시처럼 아내의 가슴에 와 닿는 천상병식 애정표현이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
예뻐 보일 때 그렇게 말없이 손을 꽉 쥐어 주는
그 행위는 애틋하기 그지없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제스처였다.
그리고 변덕스럽고 벽창호 같으면서도 남편만의 수줍고 내밀한 표현 수단도 있었다.
내 방으로 건너와 있을 때
유리창 너머로 내 얼굴에 날아와 박히는 시선을 느끼곤 얼굴을 그쪽으로 돌리면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딱 마주치는 남편의 눈이 있다.
그 순간 남편은 수줍어서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그냥 지켜보다가 살며시 눈을 떠보는 남편과 또 눈이 마주칠 때
내가 오른손을 들어 치는 시늉을 하면 그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에끼! 하는 표현으로 응수한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 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아내를 가장 좋아한다고,
남편은 고백시를 썼지만 나는 즐겨 우리 사이를 묻고 남편은 기꺼이 대답하곤 한다.
"마누라가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맙지, 고맙지, 마누라가 고맙지요. 저는 순전히 마누라 덕택에 살지요"
"마누라를 사랑해요?"
"사랑하지요. 사랑하지요."
"그런데요. 누구를 제일 사랑해요?"
"내 아내를 제일 사랑하지요"
"옛날부터 좋아하셨어요? 옛날부터?"
"물론이지요. 제가 옛날부터 마음 속에서 사랑했지요"
결혼하기 전부터 마음에 있었다고 말해주던 남편은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이야기해. 너도 그렇게 이야기해" 하고 내게 다짐 받기를 바랐다.
"물론이지요. 선생님. 하나밖에 없지. 내게 누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할게요.
나도 옛날부터 당신을 사랑했었지요. 하늘로 돌아가신 지금도 당신만 사랑하고 있지요.
내가 뒤따라 갈 때까지 그곳에서도 나만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해요.
그곳에서 만나면 이상한 부부라 손가락질해 보이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겠지요"
하늘에 있을 남편이 내 마음의 다짐을 들으면 아마도 정답게 나를 부를 것이다.
"문둥아, 문둥아, 문둥아!" (p296)
목순옥 -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타임비 - 2012. 05. 03.
[t-23.07.25. 210708-18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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