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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박수용-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필로그

by 탄천사랑 2023. 1. 4.

「박수용 -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230101-090308]

 


세빙(細氷)
봄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를 쫓아 진달래가 피어나더니 물결을 따라 다시 강아지풀이 솟아올랐다.
싹은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었으며 꽃은 이슬을 머금고 피었다가 소나기에 젖어 떨어졌다.
여름은 습하고 뜨거웠다.

차가운 대지에 앞발을 가지런히 세우고 앉은 맹수가 푹신한 꼬리를 돌려 시린 발등을 덮듯이, 
숲은 따스한 낙엽으로 겨울 잠자리를 마련했다.
자작나무와 백양나무는 햐얀 피부의 제일 바깥 껍질을 건조시켜 외투로 삼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이미 입은 향기로운 거북등 외투를 더 붉고 두툼하게 부풀려 겨울을 맞았다.

바짝 얼어붙은 키에프카 강은 눈이 쌓인 체로 구불구불 흘러갔다.
그 위를 가로질러 선명한 매화발자국이 건너갔다.
눈도 시간이 지나면 습기가 빠져나가고 허우대만 남는데, 
발자국이 찍혔던 자리에는 습기가 온전히 얼어붙어 윤기가 흐른다.
눈과 발자국 사이의 경계도 마모되지 않고 날이 서 있다.
지난밤, 가루눈이 내린 다음 강을 건넜다.
왼쪽 뒷발이 디딘 자리에 막대기가 끌린 듯 홈이 패어 있다.
뒷발 하나를 제대로 딛지 못해 끌다시피 걸었다.
눈 쌓인 키에프카 강을 절름거리며 홀로 건넌 흔적 위에 겨울햇살이 부서졌다.
위태로운 세월을 살아오며 벼랑 끝에서 얼씬거렸을 삶이 느겨졌다.

사고는 키에프카 마을에서 멀지 않은 신작로에서 일어났다.
강을 건너고 강가의 좁은 버드나무 숲을 지난 발자국이 신작로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렸다.
뒷다리를 절고 있어서 그랬는지 신작로를 건널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며 기회를 엿본 것 같다.
그러다 신작로를 달렸다.
달리던 발자국이 신작로 한가운데에서 튕겨나가 쓰려졌다.
쓰러진 자리에 붉은 피를 한웅큼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숲으로 걸어갔다.

운전사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갑자기 붉은 물체가 뛰어 들어왔다고 했다.
뒷다리를 절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겠지만,
키에프카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달리던 랜크루져 지프가 더 빨랐다.
붉은 물체는 지프에 치여 헤드라이트 밖으로 튕겨나갔다.
랜크루져의 앞 범퍼가 우그러져 있었다.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발자국을 따라 2킬로미터를 들어가자 호랑이가 누워서 쉬었던 흔적이 나타났다.
온몸의 힘을 빼고 옆으로 드러누워 있었던 듯,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호랑이의 형태가 눈 위에 깊이 찍혀 있다.
옆구리쯤에서 피가 흘러나와 눈과 범벅이 되어 얼어붙어 있다.
흘린 피의 양으로 보아 꽤 오래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누워 있던 호랑이 주변을 새로운 호랑이 한 마리가 배회했다.
앞발 볼의 너비가 9.5센티미터.
설백이다.
설백은 멧돼지라도 쫓았는지 따로 움직이다 뒤늦게 아들의 흔적을 찾아왔다.
아들 옆에 엎드렸던 자국이 있다.
자식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설백이 같이 엎드러 아들의 상처를 핥아준 것 같다.

오래 누워서 기력을 회복했는지 아들이 어미를 따라 다시 걸었다.
흔들리며 걸어간 아들의 흔적에 절뚝이던 뒷다리 외에 막대를 끈 듯한 자국이 또 하나 나타났다.
꼬리를 끈 흔적이다.
설백의 아들이 지속적으로 꼬리를 끌고 있다.
호랑이는 걸을 때 꼬리를 바닥에 닿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급하게 달리다 방향을 전환할 떄나 
무릎 위까지 내린 폭설 위를 걸을 때 외에는 꼬리를 눈에 닿게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호랑이가 삶을 마감하기 직전의 일이다.

500미터 남짓 더 들어가자 온통 전나무에 둘려싸인 아늑한 곳이 나타났다.
그 아래에 설백의 아들이 누워있었다.
동생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오빠가 
결국 제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운 채 잠들어 있었다.

말랐지만 상장했고, 상장했지만 또래에 비해 어딘가 왜소해 보였다.
랜크루져에 옆구리를 부딧쳐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지고 내장이 상했다.
제 어미의 어미인 블러디 메리가 죽었을 때처럼 옆구리가 터져 창자도 보였다.
흐르던 피는 이미 얼어붙어 딱딱하게 굳었다.
운명처럼 절룩이던 뒷다리는 인대가 끊어졌는지 뼈가 부러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다 나아 정강이 위에 오래된 외상의 흔적만 보였다.
태어난지 1년 6개월,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반독립 상태로 들어갈 나이다.
그랬다면 로드킬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백은 주위를 서성이며 아들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설백의 아들은 움직일 수가 없어 눈밭에 누워만 있었다.
설백은 아들에게 일어나라고, 길을 떠나자고 제촉했다.
설백의 묵직한 주둥이가 눈밭을 헤집으며 
아들의 엉덩이와 등을 떠민 흔적이 깊게 나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설백의 절박한 마음이 햐얀 눈밭에 찍혀 있었다.
어미의 재촉을 바라보며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들은 일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설백의 아들은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운명이 모두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설백의 아들에게 설백은 삶의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였다.
누군가 곁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헤쳐나갈 수 없는 삶,
그런데도 결국은 혼자 살아가도록 예정되어 있는 삶,
그 지푸라기 같은 삶의 마지막 끈을 이 차가운 눈밭에서 놓아버렸다.
하나의 인연이 설백의 삶으로 흘러와 절룩이다가 다시 흘러갔다.
눈동자는 맑았다.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자연에 영혼을 맡기고 고요히 떠나버린 빈자리가 느껴졌다.
손으로 눈을 쓸어 감겼다.
뻣뻣하게 굳은 주검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눈덩이들을 떼어냈다.
썰매를 이용해 차가 기다리는 신작로까지 실어낸 다음 자연보호구 사무소로 옮겼다.
설백의 아들은 해체된 뒤 박제로 만들어졌다.

사흘 뒤 전나무 숲을 다시 찾았다.
설백의 아들이 쓰러졌던 곳 근방에 방금 지나간 듯 생생한 발자국이 나 있었다.
설백이 아직 전나무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새끼를 찾는 건지 새끼의 자취를 배회하며 그리움을 달래는 건지,
설백은 아들이 죽은 숲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다음날 가루눈이 내렸다.
새벽부터 눈가루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과거의 흔적은 눈으로 덮였고 자연의 표피는 새로운 삶의 자취를 기록하는 장을 열였다.
그 위에 매화무늬 발자국은 더 이상 없었다.
설백의 기억 속에 과거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얗게 내리는 눈처럼 
과거를 덮고 자신에게 남은 삶을 새로 기록하기 위해 설백은 흔적 없이 떠났다.

뾰족하게 시린 전나무 가지 사이에 아침햇살이 쏟아졌다.
여우비가 내릴 때처럼,
먼지같이 내리는 가루눈 위로 눈 무지개가 떠올랐다.
전나무의 푸른 우듬지와 바늘잎에는 눈가루가 소복히 쌓여 가끔씩 불어오는 남실바람에 흩날렸다.
맑은 가루눈과 함께 
세빙이 햇살을 타고 날아다니며 숲을 밝고 환상적인 다이아몬드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햇살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인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생명 없는 질서는 생명 있는 무질서와 손을 잡는다.
유한과 무한을 구분할 수 없듯이,
삶과 죽음은 자연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날아올라 햇살에 반짝이며 대기를 떠도는,
그러다 푸른 전나무 숲 위로 아롱져 내리는 저 얼음알갱이처럼.  (p427)  
※ 이 글은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박수용 -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김영사 - 2011.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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