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19-0422-1(1)]
나는 지금 낯선 마을에 와 있다.
마을의 이름은 '쿠리'이다.
북인도 라자스탄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 몇 안 되는 흙벽돌 집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엎드려 있다.
내가 이 외딴 마을까지 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 번째 인도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새로운 여행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어차피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지도 위에 한 점을 찍어 그 장소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몇 년째 갖고 다닌, 귀퉁이가 해진 인도 지도를 무릎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서너 바퀴 돌린 뒤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찍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집게손가락 밑에 눌려 있던 장소가 바로 사막 한 귀퉁이의 눈곱만한 마을 쿠리였다.
인도 서부와 파키스탄 국경지대 근방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인데다,
비행기가 내리기로 된 동인도 캘커타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인도 대륙을 동에서 서로 완전히 한 바퀴 횡단해야만 했다.
쉬지 않고 기차를 탄다 해도 40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장 빠른 기차일 경우였다.
갈아타는 시간에다 인도 특유의 엉터리 시간 개념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70시간은 걸릴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지도에 표시된 붉은색 실선의 기차 선로는 그 마을에 가 닿기도 전에 끊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서 다시 장거리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남에게 한 약속도 아니고 스스로 내린 결정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캘커타에서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마치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떠난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처럼 전속력으로 인도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모두 걸린 시간은 8일 반나절하고도 세 시간이었다.
쿠리까지 가는 데만 무려 2백 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었다.
도중에 기차를 갈아탄 것이 일곱 번이었으며,
4일은 기차역에서 잤고, 나머지 3일은 기차 안에서 배낭을 끌어안고 잤다.
더구나 쿠리로 가는 시외버스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배낭을 깔고 앉아 하루 온종일 기다려야만 했다.
여행 가이드북에 40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적힌 거리가
왜 그토록 오래 걸렸는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인도이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막상 쿠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리는 구경할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런 곳이 지도에 표시된 이유가 궁금할 정도였다.
메마른 사막,
작열하는 태양,
그 아래 붉은 흙벽돌로 지은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그냥 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의 신작로 길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한 군인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텅 빈 공간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고 나는 그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영화 화면에서 걸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세모꼴 모자에다 뚱뚱한 체구를 하고, 거기에 카이저 수염을 매달고 있었다.
군인은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영어로 뚝딱거리며 물었다.
"당신,
왜 쿠리엘 왔소?
여긴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사막 끝, 국경 지대를 지키는 순찰대가 분명했다.
잘못 보였다간 고집센 인도 관리들에게 붙잡혀 며칠씩 고생을 할 수도 있었다.
힘들게 목적지에 당도했는데 또다시 생고생을 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초점이 없는 멍청한 시선을 만들어 갖고서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걸 보러 왔어요.
오래 전부터 난 그걸 보고 싶었거든요." 군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수염을 실룩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걸 보러 왔다구?
당신 혹시 약 먹은 거 아니오?"
그는 괴상한 히피 친구를 다 보겠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내가 이번에는 사팔뜨기 눈을 해 갖고 허공을 바라보며 서있자
그는 더 이상 말을 걸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내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인도 여행 중에 성가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방법을 쓰곤 했다.
군인이 타고 가는 자전거 바퀴에서 풀풀 흙먼지가 날렸다.
그가 어디로 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저 너머 어딘가에 초소나 또다른 마을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가 사막 끝으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그를 지켜보았다.
시선을 갖다 댈 만한, 움직이는 물체라곤 그가 탄 자전거가 전부였다.
그는 영화 화면 속으로 다시 사라지듯이 그렇게 멀리,
천천히 사라져갔다.
한낮이었다.
마을에는 뜻밖에도 호텔이 하나 있었다.
집이 열 채 정도밖에 없는 곳에 호텔이 있다는 건 정말 뜻밖이었다.
누구를 위해 그 호텔이 거기 존재하는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인도는 역시 수수께끼의 나라였다.
어쨌든 그곳은 분명한 호텔이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양철 간판에 커다랗게 'HOTEL'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천천히 호텔 현관으로 들어섰다.
사실은 말이 호텔이지,
간판을 떼버리고 나면 다른 움막집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집이었다.
호텔 주인은 시크교인이라서 머리에 거창한 검은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시크교인들은 검은색이나 흰색 터번을 두르는데,
이 사람이 두른 터번은 과장이다 싶을 정도로 무척 컸다.
커다란 터번 때문인지 그 사람 역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같았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투숙객을 맞이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방값을 하루 세 끼 포함해 백 루피를 불렀다.
그러면서 방부터 구경하라고 큰 소릴 쳤다.
나는 그가 왜 그토록 자신있는 태도로 허풍을 떨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 부서져가는 나무 침대,
굳이 감출 것이 없다는 듯 속을 드러내고 자빠져 있는 매트리스.
천장에는 사람 머리만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하늘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리고 도마뱀 두세 마리가 도배 안 한 벽에 달라붙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백 루피라는 거금을 내고 이 방에서 자느니 차라리 바깥의 나무 아래서 자겠다고 말했다.
내가 가방을 들고 도로 나가려 하자 주인은 호들갑스럽게 나를 붙들더니 50루피로 가격을 내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좋소.
당신은 이미 내 집 안에 들어왔으니 내 친구나 다름없소.
친구라면 거저 재워줄 수도 있는 일이오.
30루피에 해주겠소.
더 이상은 깎지 마시오.
시바 신이왔다 해도 그 이상 싼 값으로 재워 줄 순 없소."
나는 다시 고개를 저으면서 음식은 안 먹어도 되니까 잠만 자겠다고 말했다.
주인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럼 뭘 먹을 건데?"
나는 두 팔을 벌려 보이며 바람, 모래, 햇빛, 도마뱀----,
그런 단어들을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았다.
이 친구, 정말 히피구먼 하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역력했다.
그러니까 이런 데까지 흘러왔겠지.
비싸게 받긴 틀린 일이야----,
커다란 터번이 몇 번 갸우뚱거린 뒤, 마침내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방값은 잠만 자기로 하고 15루피(450원)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돈을 주기 전에 나는 단서를 달았다.
만일 밤에 비가 와서 천장의 구멍으로 빗물이 들이치기라도 하면 숙박비는 한푼도 줄 수 없다고.
그러자 주인은 큰소리로 웃으며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노 프라블럼!
우리 마을엔 50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소.
내 나이가 마흔 다섯인데 나도 여태껏 비를 구경한 적이 없소이다.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나는 호텔 밖으로 나왔다.
마을 끄트머리 사막 초입에는 커다란 늙은 바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가 마을의 유일한 나무였다.
나는 천천히 그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군인 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볼 게 없는 마을이었다.
비루먹은 개 두세 마리만 모래바람 속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았다.
여행은 꼭 무얼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낯선 세계로의 떠남을 동경하는 것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까.
그런 것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마을 너머로 펼쳐진 사막은 단조로움 일색이었다.
누군가 며칠씩 걸려 이곳까지 왔다가
막막한 풍경에 압도되어 한 시간 만에 허둥지둥 떠나버렸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없었다.
하기야 50 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니까 구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거기에 있었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숨을 쉬고,
냄새 맡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어떤 시선들이 그곳에 있었다.
신작로를 지나 바냔나무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늘 깊은 토담집들 안에서
아이와 여인과 노인들이 숨을 죽인 채 나를 관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바냔나무 아래 가서 앉자 개 두 마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개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한껏 애처로운 표정으로 먹을 걸 달라고 나를 쳐다보았다.
한 마리는 허기가 져서 죽겠다는 듯 아예 옆으로 픽 쓰러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비스킷을 꺼내 봉지째 멀리 던져주었다.
그러자 개들은 마치 대지의 생명력을 받은 인디언 전사처럼 벌떡 일어나 비스킷을 향해 돌진했다.
두 번째로 나를 찾아온 것은 어떤 노인이었다.
그는 열기가 이글거리는 신작로 길을 걸어 천천히 다가왔다.
아주 천천히.
그 걸음이 어찌나 느린지 내 앞에 당도하기도 전에 수명이 다할 것만 같았다.
상체는 벗은 몸이고 허리에 헝겊 쪼가리 같은 걸 둘둘 말아 아랫도리만 살짝 가린 차림이었다.
내 앞에 다가온 노인은 잠시 뚫어져라고 나를 쳐다보더니 대뜸 물었다.
"당신, 이딸리안?"
그의 눈에는 내가 이태리 사람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이태리 사람이냐는 질문은 난생 처음이었다.
세상은 결국 주관적으로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사실 지구상의 외딴 마을인 쿠리에서는 내가 이태리인이든 한국인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노인은 또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딸리안이지?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자신의 추측이 딱 들어맞았다는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엉뚱하게 이태리 사람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늘 깊은 바냔나무 아래서,
노인은 저 영국 식민지 시절에 배웠음직한 뚝딱거리는 영어로 자기가 알고 있는
이태리에 대한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마 수년 전에 이태리 청년 하나가 나처럼 배낭을 메고 허둥지둥 이 마을을 지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얘기 속에는 내가 예상하던 로마나 베니스 같은 지명은 나오지 않고
엉뚱하게 파리니 도쿄니 하는 지명이 뒤섞여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것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 가서는 호주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노인은 지금 자기가 주워들은 온갖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를 이태리라는 한 나라에 갖다 붙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노인은 갑자기,
내가 호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면서 숙박비는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만한 돈은 있다고 말하자, 노인은 엄숙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나한테 돈이 한푼도 없는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알기에 돈 없이 무전취식하는 친구들이 인도에는 백만 명도 넘는데,
나 또한 그런 부류의 방랑자로 짐작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비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노인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그는 내가 돈을 갖고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기 위해 자기한테 5루피만 줘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누가 묻기라도 한 듯이 자기는 절대 거지가 아니라 힌두교 성자라고 주장했다.
노인의 수작이 하도 재미있어서 나는 순순히 5루피짜리 종이돈을 꺼내 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돈을 받아든 늙은 성자는 짐짓 엄숙하게 선언했다.
마을 사람들한테 내가 빈털터리 히피가 아니며 돈을 갖고 여행중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그 돈을 갖고 가야만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나를 무전취식자로 의심하고 있다고 그는 또다시 뚝딱거리는 영어로 강조했다.
노인은 땟국물이 흐르는 허리 두르개 속에다 5루피를 챙겨넣고는 천천히 마을로 돌아섰다.
도중에 그는 개들이 먹고 버린 비스킷 봉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주워들어 유심히 살펴보더니 나를 힐끔 돌아보고,
다시 한번 봉지를 조사하고 나서 그것도 꼬깃꼬깃 접어 허리 두르개 속에 집어넣었다.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에는 한 무리의 여인과 아이들이 나타났다.
저마다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있었다.
어딘가로 물을 길러 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나무 밑을 지나 행렬을 이루며 사막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두 시간쯤 뒤에 돌아왔다.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동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들은
강렬한 원색의 사리로 얼굴을 가리고 사막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홀연히 다시 나타났다.
그 사이에 남자 두 명이 다가와 또 말을 걸었다.
그들은 내 가족사항,
신고 있는 신발 가격,
월수입, 필요없는 물건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
혹시 비스킷 봉지를 내가 먹고 버린 것인가 등을 캐묻고는 마을로 되돌아갔다.
염소와 닭 같은 것들도 내 주위를 어정거리다가 가버렸다.
벌레들도 열심히 지나갔다.
바람들도 지나갔다.
그리고 이윽고 저녁이 찾아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쿠리에 오기까지의 긴 여정이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이다.
사막 저편으로 오렌지색 노을이 번지고 마침내 최초의 별 하나가 떠오를 무렵이 되었다.
나는 '별이 뜬다'는 말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쿠리의 저녁 하늘에서는 별들이 그냥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지평선에서 빗금을 그으며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모든 별들이 금막대기 위에 걸린 것처럼 지평선 위에서 떠올라 일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내가 앉아 있는 나무 밑으로 떼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와서는 내게 왜 저녁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호텔밖에는 달리 음식을 사먹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지저분한 곳에서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비스킷 몇 개로 때우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인도 여행에서 음식을 잘못 먹어 설사병에 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그럴싸한 말을 지어냈다.
"나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요가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단식중이지요."
그렇게 말하면 그들이 쉽게 납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말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들이 믿지 못한다 해도 나는 지금 요가 수행법에 따라 금식중입니다.
그러니 나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날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다른 사람의 수행을 방해해선 안됩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먼 여행을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내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사막 지방에선 자살 행위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내가 아무리 수행중이라도 육체에 위험이 되는 짓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도저히 그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들 집에서 차파티(밀가루떡)와 온갖 먹을 것들을 가져와 막무가내로 내게 권했다.
늦은 녘에 갑자기 나무 아래서 잔치가 벌어졌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자기들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낯선 여행자인 나를 염려해 자기들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거짓말 금식 수행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먹었으며,
배가 부른 것보다 스무 배 이상으로 마음이 불렀다.
그들이 사막 어딘가에서 떠온 우물물은 사막 같은 내 인생을 축축이 적셔주고도 남았다.
밤이 깊어 다 찌그러져가는 호텔로 돌아왔다.
내가 없는 사이에 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와 내 배낭 검사를 끝낸 흔적이 역력했다.
이것저것 뒤지고,
냄새 맡고,
끈을 잡아당겨 보았을 덩치 큰 시크교도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부서지기 직전인 나무침대에 누워 천장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구멍으로 별들이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우주 전체가 쿠리 마을과 바냔나무와,
5루피(150원)를 떼어먹은 노인의 집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구멍 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p30)
※ 이 글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류시화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열림원 - 1997. 05. 10.
'명상의글(종교.묵상.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남 (0) | 2007.05.04 |
---|---|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0) | 2007.04.29 |
버스 지붕 위의 이야기꾼 (0) | 2007.04.18 |
영혼의 푸른 버스 (0) | 2007.04.14 |
이 책을 먹으라 - 텍스트의 비인격화 (0) | 2007.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