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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그 설익음과 진지함에 대하여

by 탄천사랑 2022. 7. 30.

「 다치바나 다카시 -  靑春漂流(청춘 표류)」

2013년 도쿄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이어령(왼쪽) 교수와 다치바나 다카시(중앙포토)

 

 

靑春漂流(청춘 표류)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청춘은 세월이 흘러 그 시기를 벗어나 봐야, 그때가 바로 자신의 청춘이었음을 깨닫는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서  '음, 이게 바로 청춘이지'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천박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사람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과연 이것이 청춘인가를 느껴볼 거를 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열중하고 있는 동안 청춘은 지나가고 있다.

나도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청춘이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다지 먼 옛날의 일은 아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다섯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만큼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가 나 방황이 이젠 끝났구나 하고 알아차린 시기이다.
시간을 따져 물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 청춘의 시간인 것이다. 

그 기간이 길고 짧음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려서부터 노숙해서 청춘을 전혀 느끼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육체는 젊지만 정신은 노화된 청년들. 
그들은 세상의 상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다. 
또 그에 맞는 처세술이나 삶의 방식만을 추구하려 한다. 
마치 그들은 무덤까지 일직선 코스를 향해 달리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보통 30대까지를 청춘기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공자는 '40에 들어서니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40세까지는 계속 방황을 한다는 뜻이다.
나도 그랬다.
청춘이 끝났음을 알아차렸던 그때가 바로 공자가 말했던 '불혹'이었음을 깨달았다.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만큼 창피한 기억도 많고 실패도 많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라 이름할 수 없다. 
자신에게 충실하고 대담한 삶을 꿈꿀수록 부끄러움과 실패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망설임과 방황 끝에 올바른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실패한 채, 
인생이 그대로 지나쳐버리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 많다. 
젊은이들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때 ‘모든 가능성’에는 모든 실패의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앞서 말한 정신이 노화된 청년은 사실, 
모든 실패의 가능성 앞에서 시도도 하기 전에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도전 없는 자신들의 인생을 이래저래 변론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인생을 앞에 두고 단순히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것뿐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대담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결국 무모하게 살았을 뿐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대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청춘을 제대로 산 것이다.

내 자신도 무모하게 살았다.
때문에 이렇듯 변변치 못하다.
망설임과 방황의 시간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많았다.
인내력 역시 부족했다.
참을 수 없는 일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참기 어려운 일을 참고 살기보다는 남은 인생을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울타리에 무엇인가가 나를 팽팽히 묶어 놓을라치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진 적이 두 번 있으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를 여행길을 나선 적도 두 번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행지에서 방을 얻어, 
돈도 떨어지고 치료할 방법도 없기에 싸구려 여인숙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안 되겠구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후회하지는 않았다.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나도 모르게 묘하게 차가운 체념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이제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회환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 
얼핏 보면 대단히 성공하고, 
무척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바라던 인생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또 이와는 반대로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버린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선택으로 초래된 결과라면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체념은 가능하리라. 

육체는 젊지만 정신이 노화된 청년들은 모두 엇비슷할 정도의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에게 또 다른 인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도전과 가능성의 시기를 그냥 지나쳐왔음을 후회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 대담한 선택을 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는 사례들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직 청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망설임과 방황의 크기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분명 불안과 괴로움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청춘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보련다.
그들에게 깨달음에 가득 찬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망설임에 대해 듣고 싶다.
과거 그리고 현재의 방황을 다듬어지지 않은 설익은 그대로를 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론이란 카페나 술집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인생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인생론은 말보다는 실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생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대로 하나의 인생론이 되어버리는 그런 인생, 
그런 인생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 다치바나 다카시.

 

 

 

 이 글은 <청춘 표류-프롤로그>에 실린 전문을 필사한 것임.
다치바나 다카시  - 청춘표류

역자 - 박연정
예문 - 2005.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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