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편집부 -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
하루라고 하는 것은 나의 작은 생애로 볼 수 있으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비로소 그 날의 탄생이다.
신선한 아침은 청년이고 오후는 장년, 그리고 밤은 노년기이다.
잠자리에 들면 모든게 끝나는 것이다.
서근석 시인. 수필가. 총신데 교수.
시집 '오천년 언덕에서 울었다' 등 다수
독일의 퀄른대성당은 서기 1248년에 시작하여 자그마치 600여 년이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한 건물을 짓는데 600여 년이라니-----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규모 안팎을 뒤덮은 온갖 크고 작은,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조각들,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독일 민족의 저력을 나타냈으며, 그들의 인내심 내지는 끈질긴 국민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유럽은 십여 년 전에 하던 공사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 허다하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격언을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하나하나 완전무결하게 풀어 나가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여유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가 배워가야 할 점이라고 느꼈다.
무엇이든지 바쁜 게 없었다.
도대체 눈을 씻고 봐도 뛰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또한 서양의 어느 식당엘 가봐도 빨리 가져오라고 소리를 치거나 늦는다고 야단하는 광경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여유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풍부한 대화와 유모어로 생활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남에게 내 보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히 풀어나가는 것이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초조한 얼굴을 한, 뛰는 모습의 한국인과 무척이나 대조되는 일이다.
'바빠 죽겠다'
'속전속결' '스피드' 등을 좋아하는 우리가 한 번 정도 깊이 생각해 보고 넘어갈 과제가 아닐까 한다.
프랑스의 드골 공항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 일행은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막바로 가려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내가 비교적 뒷좌석에 앉았고 또한 내 앞 좌석의 백인 신사가 너무 양보를 많이 해서 늦게 내리게 되었다.
말은 짧고 어느새 50m 쯤 앞에 가는 일행을 쫓아 가느라고 혼난 적이 있었다.
뒤에서 보니 마치 <도망자>들 같았다.
비행기를 바꿔타려면 아직도 두 시간 정도 남았는데 반은 뛰어가다시피 빨리 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여러군데서 흔히 볼 수 있다.
물건을 사거나 호텔같은 데서 뭣을 물어볼 경우도
분명히 앞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순서대로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거는 것이다.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막연히 소비자가 왕이라는 한국식 생각으로 말을 거니
좋은 대접을 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며 어김없이 <잠시 기다려라>라는 대답을 듣고 주삣하기 일쑤다.
우리에게는 왜 이처럼 여유가 없으며 기다릴 줄 모르고 서두르는 것일까?
왜 바쁜 것을 그처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바쁜것을 자주 강조하던 타인이 당황하게 되며 어떤 일이든지 완벽하게 풀기가 어려워지는데----
어느 외국인 선교사는 한국 사람의 단점은 '식사를 너무 빨리 하는 것'이란 평범한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금방 들으면 별 것 아닌데도 많은 내용이 담긴 얘기인 것 같다.
택시를 타도 친구와 술을 마셔도 대체로 성질이 급하고 서두르는 것이 역력히 보았다.
우리 모두가 속전속결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번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부인들을 모시고 모처럼 시내 유명한 호텔에서 망년회를 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식 레스토랑인데 담당 웨이터의 설명으로 식사 시간이 3시간이라는 것이다.
각종 슷가락도 열개나 되며 모든 것이 신기하여 좋았는데 '3시간의 식사시간'이 문제였다.
한 가지 한 가지씩 나오는데 너무 양이 적고 시간도 걸려 친구들이 아우성이다.
'후딱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날 부인들과 함께 모처럼 좋은 호텔에 가서 서로를 쳐다보며 많이들 웃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김치에 밥 먹는 것이 최고'라고 하였다.
생각해 보니 지난날 우리가 너무 못살고 가난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식사를 천천히 오랫동안 즐기면서 먹어야 되는 것이 좋을줄 알면서도
'밥에 국 말아서 후딱 먹는 버릇'이 생겼나 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성질이 급하고 조급한 데서
많은 부실과 부작용이 자연이 따르게 되니 다시 한번 우리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섬나라 일본조차도 '평생고용제'등등으로
백성들을 적극 보장해 주고 평생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우리의 경우 '명예퇴직' '숙정' '강제퇴직' 등이 사회전반에 흐르니 이 일을 어찌하나?
이 모든 것이 조급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요즘 '한탕주의' 란 말이 신문에 많이 오르내린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이처럼 서두르는 것을 평범한 친구 ㄱ군은 '철학의 차이'라고 말했으며
또 어느 학자는 '반도의 변덕스런 기후 탓'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어디 이 문제를 한 두 가지의 말로 결론 지을 수 있겠는가?
어디에서 딱 떨어지는 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있으며 인내심 있게 잘 기다리는 민족이 현제의 선진국이며
지금도 이들의 나라가 세계사의 주역이라는 진부한 발견이다.
서양사 자체를 여유와 인내심의 개념으로 푼다면 지나친 주관일까?
필자는 유럽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면서
그 어느 것보다도 그들의 인내심과 여유에 매료되었으며
조급하게 서두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머나먼 낯선 이국땅에서는 자기 자신과 조국을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 가운데서 자신과 조국을 보는 안목도 생긴다.
전 세계의 문명을 리드했던
이 유럽의 언덕에 서서 과연 내가 가져갈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렴풋이 나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여유와 인내심'이었다.
아름다운 지중해에서 바라본 유구한 유럽의 하늘은,
'생활' 바로 그것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마치 귀한 보물을 취한 듯 하였다.
그건 천재작가 이상이 추구한 '날개'.
바로 내 마음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날개'의 발견이었다.
※ 이 글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2.07.05. 20220701-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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