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문화 정보/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시간

바르비종의 은은한 만종 晩鐘 소리

by 탄천사랑 2023. 11. 15.

·「풀잎 편집부 -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 시간」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단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을 떠날 때 성당 탑에 걸려 있는 시계는 오후 3시 5분이었다.
곧 만종이 울릴 것이다.

 

조경희  수필가.  전 예총 회장.

             수필  '얼굴' 등이 있음.

 



바르비종에 있는 밀레의 집은 단층 고가 古家의 초라한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그대로다. 
밀레는 파리라는 도시의 혼잡함을 벗어나 숲과 바위, 
동물들이 자유롭게 자라는 자연을 그리기 위해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1849년 부터 1875년 까지 25년을 살았다.
이 집에서 별세하기까지, 그때 나이 61세였다.

바르비종은 파리에서 자동차로 40분,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살던 이궁 離宮인 퐁텐블로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은 작지만 그 이름은 밀레와 함께 유명하다.

밀레는 코로, 루소 등과 함께 파리를 떠나서 
이곳에 모여 그림을 그렸는데 그들의 화풍 畵風을 바르비종 파라고 부른다.

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좁은 길 양편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상점,
레스토랑 들이 밀레의 이름을 딴 것이 눈에 띈다.

밀레의 집은 바로 이 길가에 있다.
나같이 몸이 뚱뚱한 사람은 겨우 한 사람밖에 드나들 수 없는 좁은 문 옆으로
밀레의 집이라고 쓴 표지가 완연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원을 지나 내실로 들어간다.
담벼락에 빨갛게 단풍 진 담쟁이가 아름답다.

넓지 않은 방이 둘, 
처음에는 방이 둘 밖에 없는 작은 집이었는데 
나중에 중축을 하고 수리를 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로 화실로 썼다는 방이 퍽 좁다.
대작을 그리기에는 너무 협소하게 보이는 방이다.
밀레가 사용했다는 식기와, 
마지막 붓을 놓을 때까지 기름을 개던 팔레트의 색채가 인상적이다.

벽에 걸린 '괭이를 든 농부들', '봄', '가을', 등의 그림은 오리지널이라고 한다.

그밖에 일본제 대나무 테이블, 1백 년 전에 찍었다는 밀레의 사진, 
파이어 플레이스(벽난로) 위의 대리석판에 새겨진 건축가,
시인(알프레드 뮈세도 있다)들의 얼굴들.

그는 가난한 생활에도 슬하에 9남매를 두었었다. (3남 6녀)
좁은 집에서 화가의 부인은 얼마나 고생이었을까 싶다.
그의 화실을 나와 영국 여왕이 다녀갔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만종 晩鍾'의 무대가 된 들판을 찾아 나섰다.

바르비종 마을 어귀를 빠져나와 동구 밖 길을 조금만 나서면 하이웨이에 이른다.
이 하이웨이로 파리 쪽을 향해 차를 몰면 온통 푸른 밭이다.

하이웨이가 나지막한 언덕을 막 넘었다 싶자 오른편이 탁 트인다.
넓은 들판, 불현듯 저 멀리 그 들판 끝이 나타나는 뾰족한 첨탑 尖塔.
바로 여기다.
'만종'의 그림에 나오는 지평선 끝의 성당 종탑이 저기요,
밀레가 화가 畵架를 세웠던 자리가 여기다.

밀레가 '만종'이 울릴 무렵의 저녁때마다 화구 畵具를 메고 집에서 여기까지 나오자면 한 20분은 걸었으리라.
그때는 들판을 가르는 하이웨이는 없었겠지만,
그림에서 보는 오뚝한 종탑 언저리가 지금은 집들이 들어서서,
그림 속의 먼 지평선에는 지붕들이 종탑과 거의 가지런한 키로 쭉 줄 서 있다.

프랑스의 하늘답지 않게 맑게 갠 하늘,
들에는 아직 수확이 이른지 일하는 농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만종 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올리던 그 부부는 어디로 갔는가.

밭에 심어져 있는 것은 잎이 파란 게 무성한 사탕무였다.
성당의 종소리가 밭 고랑마다 흥건히 괴어 있는 듯한 풍경이다.
종탑이 보이는 성당의 이름은 베트라 부 성당.
하이웨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시골길로 얼마만큼 가면 조그만 마을이 나서고 
마을 한가운데에 높직한 성당이 있다.
1백 여 년 전에 세워진 오래 된 성당이지만 종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제 2차 대전에 출정해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성당 벽에 새겨져 잇는 것이 달라졌을 뿐.

구둣발에 닳아진 돌층계를 올라 갔다.
어디에 성당 문이 있는지,
한 두 바퀴 돌아서야 좁은 샛문을 발견,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텅 빈 성당,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단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을 떠날 때 성당 탑에 걸려 있는 시계는 오후 3시 5분이었다.
곧 만종이 울릴 것이다.

밀레는 이 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묘지에서 보면 바로 이 성당의 종탑이 가까이 우뚝하다.

날마다 저녁 무렵이면 성단의 만종 소리를 귀 곁에서 들으며 
그는 잠들어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반 시간>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아르피아 공원 [t-23.11.15.  20231115-09503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