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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책방(소설/ㅅ - ㅇ

위장된 평화 - 성격 이야기 / 안미경

by 탄천사랑 2025. 4. 28.

 

 

성격 이야기 - 안미경 / 바오로딸 2005. 11. 05.

 

위장된 평화
밤 12시.
싱크대에 수북이 쌓였던 설거지를 마무리하면서 안나 자매님은 화가 났다.
남편은 도대체 왜 그토록 사람 불러대기를 좋아하는지, 신혼부터 시작한 손님 쳐내기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오늘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불러모아 한바탕 웃고 떠들며 먹고 갔다.
만나면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속내 깊은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쪽 옆에서 텔레비전까지 켜놓고, 별로 귀기울이지도 않는 이야기를 그저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댈 뿐이다.

밤늦게 다들 가자마자 남편이 하는 말,
"다음 주엔 누나네 식구랑 형님네 식구를 좀 오시라고 할까?
 조카 결혼시켜으니 밥 한번 먹어야 하지 않겠어?"  기가 막혔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이사를 10번 넘게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 친척들 다 불러서 집들이를 하고, 시댁에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다 불러댄다.
위로 형님도 계시지만 왜 그토록 나서는 건지.
친척들 부를 때도 몇 시까지 모여서 저녁 먹자고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 날에 우리집에서 밥 먹자는 식이다.
게다가 누구누구 오라는 것도 아니고 '사촌 형님들도 연락되면 모시고 오던지...., ' 이런 식이다.

그러니 누가 몇 명이 오는지도 딱히 모르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손님이 하나 둘 모여드니 점심식사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그 다음날 아침까지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꼭 초대를 하는데,
없을 땐 막 욕하고 흉을 보다가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진득하게 집에서 쉬는 일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손님들을 불러대거나, 아니면 사람 만나러 나가버린다.
도대체 집에 붙어 있지를 못한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아플 때뿐이다.

자매님 역시 노는 걸 좋아하지만 남편처럼 정신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지도 않거니와 
온갖 사람을 다 망라하지도 않는다.
거절도 못하고, 누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주머니 속 먼지까지 탁탁 털어내는 남편을 보면 한심하고 화가 난다.

한편 요한 형제님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이란 것이 이사를 하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다 그런 이유를 빙자해서 얼굴 보고 만나는 것이지,
그런 일 아니면 만날 일이나 있단 말인가.
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만사를 제치고 시간을 내면서,
자기가 불편하고 재미없는 일이면 무슨 핑게를 대서라도 빠지고 만다.
형제님이 막내이다 보니 친척들이 와서도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다 도와주고,
심지어는 김치까지 담아오기도 하건만, 받을 때만 해해거리고 가고 나면 그뿐이다.

조금이라도 귀찮거나 손해 보는 것 같으면 무 자르듯 여지없이 잘라버리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즐거운 일이면 호들갑을 떨면서 과장되게 분위기를 띄운다.
그렇게 즐거워 하다가도, 돌아서면 언제 봤냐는 듯 모른 척할 때조차 있다.
세상에 그런 독불장군이 없다.
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돌고 도는 게 인생 아닌가, 어떻게 자기 잇속만 차리고 살 수 있는가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나고,
좋을 때도 있고 나뿔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고 그런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고 철이 없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요한 형제님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도와줌으로써 사랑을 얻으려는 2번 유형 사람이다.
이들은 모든 관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저 아내가 자신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충분히 잘해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2번 유형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떤 사람과도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다.
이들은 관계가 멀어질까 두려워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못하는데,
자신의 진실한 느낌을 표현하지 않는 한 그관계는 피상적으로 겉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며 활발하며 재미있는 일과 분위기를 잘 만드는 안나 자매님은 7번 유형의 사람이다.
이들은 곧잘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활을 스스로 떠맡는다.

하지만 그 관계가 진지해지거나 깊어져 가면 그 관계에 자신이 붙들렸다고 느끼고 뒷걸음질 친다.
특히 책임감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한다.

이들은 내면에 고통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이 있으며,
이 불안 때문에 집중하기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것에 쉽게 마음이 끌려가 버린다.
그러나 금방 싫증을 내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다.
자신의 이런 성향을 알아차리지 않는 한 7번 유형 사람들은 타인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안나 자매님 역시 남편이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불평하고 화를 내다가도,
요한 형제님이 시무룩해서 섭섭해 하면 금방 유머 감각을 발휘해 분위기를 띄운다.
그러곤 곧 두 사람이 관심잇어하는 즐거운 화제를 꺼내거나 여행 갈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의 부부 관계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 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서로 가까워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2번 유형이든 7번 유형이든 이들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들인지라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바라보기가 다른 유형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입은 두꺼운 방어의 옷을 벗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가깝게 연결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성장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내면에 잠재해 있는 고통과 맞닥뜨리고,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오랫동안 축적된 마음의 응어리들을 다루게 된다.
이는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내가 어떤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사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성격 이야기>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5.04.28.  20250426_15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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