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과거형 할아버지가 미래의 아이에게 주는 편지 형태로 쓴 글이다.
동기는 간단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처럼 나 역시 늙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의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쳐다보며 울기만 하던 모습에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조급함보다 여유를 갔고 물결 하나 일지 않는 연못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된다고,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가라앉고 있는 몸에 불안감이 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에겐 열을 더하고 나는 열 살을 줄여 글을 쓰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재밌겠는데요'라는 말로 허락을 얻고도 긴 시간을 생각했다.
혹 아이의 가치관에 혼동을 주지 않을까?
부모의 교육관이나 사고방식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땐 애국가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학교 조회시간이면 빠지지 않고 불렸다.
나라는 가난했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먹고사는 어려움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때 내 나이 열 살 무렵이었고 달에는 토끼가 방아 지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유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던 날,
남산에는 커다란 텔레비가 설치되었고 서울 시민 대부분이 모여들 정도로 난리가 났었다.
TV는 물론 동내에 공동 전화기 한대라도 있으면 부자 동네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4일을 날아가 달에 사람의 발자국을 남긴 게 1969년 7월의 일이었다.
지금은 1초에 약 10만 킬로를 날아가는,
자연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약 4.3 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다고 하며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시속 약 6만 킬로로 지금도 태양계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2호가 약 2만 년을 날아가야 겨우 도착한다는 지구와 가장 가깝다는 별.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시공간이라 이름 붙었다.
그곳에는 시간을 관장하는 영원불변의 신 같은 존재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우주를 연구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다.
이 우주가 자연의 큰 그림이라면 그런 자연과 사람의 대화는 숫자로 묻고 대답을 한다.
학설에 의하면 사람이 자연의 힘으로만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약 48년을 산다고 전한다.
그럼, 지금 열 한살인 아이는 벌써 5분의 1을 산 셈이 된다.
민하야,
우주 공간인 자연에서 산다는 것은 동화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렴.
힘들다고 생각하면 정답을 찾기 위해 수학 공식과 씨름하듯 어렵지만,
한 편의 재미 있는 동화책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란다.
왜냐하면 동화책 속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고,
그 스토리를 이어가는 건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왜냐하면 동화책 속 주인공이 바로 너 자신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 글도 동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연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기에 그 이치를 이해하면 동화 같은 즐거움도 있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품고 있는 자연과 우리의 삶은 어떻게 연관되는지
여자와 남자는 어떻게 구분되었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자연에서 시간이란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
열한 살의 나이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중에 하나 '견디는 힘'을 배우는 시기란다.
견딘다는 것은 무언가와 부딪친다는 것이지.
그 부딪침의 고통을 견디며 판단하고 최선책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거란다.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내라는 것도 필요하단다.
그래야 올바른 나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란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연어처럼,
산다는 것은 자연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란다.
연어가 자신이 시작된 곳에서 그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알을 낳는 것처럼 말이다.
[t-24.08.02. 20210803_06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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