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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들어온 책 - 내가 만난 남해바다 바다를 읽어 주는 화가 김재신

by 탄천사랑 2024. 6. 12.

·「월간국회도서관 2024. 05 vol.520 」



 

내가 만난 남해바다 바다를 읽어 주는 화가 김재신

굽이굽이 돌아서면 보이는 통영의 바다
이십 대의 끝자락, 취업과 함께 내려온 통영은 아주 낯선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광역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통영의 바다가 이상했다. 

분명 해안에서 차를 타고 내륙을 향해 이동했는데, 재 하나 넘을 때마다, 모퉁이를 하나 돌 때마다 바다가 나타났다. 

도시 어디에서나 바다의 내음이 풍겼다. 

시장에서도, 술집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에도 짭짤한 바다 냄새가 배어있었다. 

한 며칠은 이 낯선 도시를 신나게 돌아다녔지만, 내륙에서 자란 내게 바다는 금세 지루한 것이 되었다. 

매일 철썩대기만 하는 축축하고 비릿한 것. 내가 바다에 가진 감상이었다.

새해는 밝았지만 바람이 매서워 몸이 자꾸 움츠러드는 1월, 김재신 선생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주 짧은 머리에 말수도 적으신 선생님은 수줍게 자신의 작품과 바다에 대해 말씀하셨다. 

현대미술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40년간 작품 활동을 해 오신 대가의 말씀은 미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과 삶,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었다. 

통영의 바다는 내가 알던 바다와는 아주 달랐다. 

내가 살며 자주 보았던 바다는 동해다. 

넓고 탁 트여 수평선이 보이고, 시릴 듯 푸른빛의 깊은 바다. 

육지에서 몇 발짝만 나가도 수십 길의 물속으로 가라앉을 듯 압도되는 거대한 바다였다. 

하지만 통영의 바다는 그렇지 않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어딜 둘러봐도 섬이 보인다. 

특히 도천동에서 바라보면 바다 건너편의 가게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뭍 아주 가까이에 미륵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륵도와 통영 사이의 바다는 강처럼 보인다. 

한강보다도 작고 낙동강보다도 작은 하천처럼 보인다.


- 때로는 미풍에 일렁이 는 아주 잔잔한 바다를 그리기도 하고, 
   돌풍에 부딪혀 크게 일 렁이는 바다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 바람에 따라 침잠하는 빛무리를 바라보면, 마치 내 마음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듯했다. 
   '보듬어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다를 화폭에 담는 화가
김재신 선생님은 화폭에 바다를 담는다. 

때로는 미풍에 일렁이는 아주 잔잔한 바다를 그리기도 하고, 돌풍에 부딪혀 크게 일렁이는 바다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런 바람에 따라 침잠하는 빛무리를 바라보면, 마치 내 마음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듯했다. 

김재신 선생님이 말했던 ‘보듬어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의 그림은 모두가 결국 사람 이야기다. 
  (중략) 
  전시를 이어 가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내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느라 무겁기만 하구나.'

  단순하면서 나름 아기자기하게 예쁘기도 했지만, 
  나의 궁핍하고 외로운 날들의 일기 같은 그림인지라 나에게는 그 그림들이 무겁고 어두웠다.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 서로 보듬어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84쪽)

통영에 오래 산 분들은 바다 사진만 보고도 통영 바다와 다른 바다를 구분한다. 

통영의 바다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난 뒤에야 보이는, 아주 세밀한 특징이었다. 

미륵도에서 건너편 도천동, 당동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진다. 

분명 강처럼 폭이 좁은데도, 물의 흐름은 좀처럼 알기 어렵다. 

강처럼 상에서 하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복잡하게 일렁이는 것 같다. 

멍하니 그 물의 흐름을 눈으로 좇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한다. 

자연은 아무 말 없지만, 인간은 현상을 서사로 만들어 낸다고 하였던가. 

나는 그 물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고 방황하는 나의 번뇌를 떠올렸다. 

티끌만 한 일에도 번민하고 일렁이는 나는 평온에 이르기에는 설익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김재신 선생님은 물감을 수십 겹으로 쌓아 조각칼로 깎아낸다. 조탁(彫琢) 기법이라 하셨다. 

그렇게 깎고 깎는 조탁(彫琢) 기법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한 점이 완성되는 데에 길면 6개월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넓은 화폭에 물감을 서른 겹이고 마흔 겹이고 쌓는다. 

한 겹을 칠하고 완전히 마른 후에 또 한 겹을 쌓아 올린다. 

그 뒤, 아주 작은 조각칼로 점점이 깎기 시작한다. 

새기고(彫) 다듬는다(琢)는 의미처럼, 물감의 깊이를 기억하여 치밀하게 파내어간다. 

선생님이 기억하는 바다의 색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 물감의 쌓는 순서와 깊이를 고민한다고 하셨다


- 새기고 다듬어지는 것은 돌이나 그림이나 우리의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정함과 따뜻함을 새기고, 질투와 증오를 다듬어내어 매끈하고 단단 한 마음만 남게 되는 것. 
   유난히 쉽게 흔들리는 내가 항상 소망 하는 것이었다. 


새기고 다듬어 매끈하고 단단함을 남기다.
조탁.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공연히 되뇌어 본다. 언젠가 잠시 수석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아주 깊은 물에 잠겨 만들어지는 수석은 검고 단단하며 깊은 골이 패 있다. 

느린 물의 흐름에 수천 년간 다듬어져 연한 부분은 깎여나가고 그 돌의 가장 단단한 부분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깎여나간 돌은 높은 산의 기암괴석을 닮게 된다. 

우리는 그 돌을 산수경석이라 부르며 최고 귀한 돌이라 여긴다

새기고 다듬어지는 것은 돌이나 그림이나 우리의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십 겹 물감을 쌓은 널빤지를 깎아내는 것과 수석이 만들어지듯 

깊고 느린 물속에서 천천히 무른 부분이 깎여나가는 것의 원리를 내 마음에 품고 싶었다. 

다정함과 따뜻함을 새기고, 질투와 증오를 다듬어내어 매끈하고 단단한 마음만 남게 되는 것. 

유난히 쉽게 흔들리는 내가 항상 소망하는 것이었다.

초년생의 회사 생활은 천방지축 어리둥절하다. 

작은 회사 안에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부딪히고 흔들리며 일렁인다. 

그렇게 나아가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는 길에는 수십 번이고 생각한다. 

조직 속에서의 서투름과 나의 행동에 담긴 이기심에 대해서. 

퇴근길에 노을에 일렁이는 바다를 따라 걸으며 감상에 빠진다. 

섬과 같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가, 실은 모두와 손을 맞잡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섬은 고립되지 않았다. 
  다정히 붙은 집이 있고 육지 소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방 바다는 꽃같이 피어오른 윤슬로 눈부시다.” (102~103쪽)

유난히 걸음이 빨라 항상 저 앞에 먼저 걸어가곤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걸을 때면 나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가지만, 둔한 몸으로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마음이 급해지면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더욱 허둥지둥 따라간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거나 잠깐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한참 앞에 가 있던 그 사람이 어느새 돌아와 손을 내밀어준다. 시큰한 것은 무릎보다도 염치다. 

그런 감사함과 민망함 속에서 나날을 보내면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 든다.

“운하교 아래 물살은 다른 곳보다 세고 물길도 여러 갈래다. 
  좁은 길목에서 갈 길이 다른 물들이 서로 만나니 부딪히며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한참 동안 흐름을 바라보고 있으니 먼저 가려는 놈, 돌아가는 놈, 직진하는 놈,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여유롭게 노니는 놈. 사람 사는 것과 진배없다.  다양한 삶의 군상이 담겨 있다.” (100쪽)


모든 젊음은 바다를 보러 떠나면 좋겠다. 바다를 보며 걷는 일은 영혼을 깊게 만들어 준다. 

꼭 내 마음 같기도 한 바다가, 어느 때는 우리들의 삶 같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에 비친 내 마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어느 선사의 말처럼, 

바다를 매개로 내 마음과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은 멀리 있지 않음을 배우게 된다. 

영혼의 깊이는 어둠이 아니다. 전복 껍데기 안, 자개와 같은 찬란한 빛이다

“그림을 그리며 ‘깊이’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예전에는 어두워야 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 어둠만이 깊은 것이 아니란 깨달음이 와 닿았다. 
  전복 껍데기 안쪽의 빛깔은 무척 화려하지만 굉장히 깊이가 있다.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 작품의 색이 점점 밝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10쪽)

일렁이고 산란하는 바다처럼 서른 즈음의 우리들은 더욱 흔들리고 좌절할 것이다. 

또 때론 깊은 허무에 침잠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길이라 믿는다.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한 겹 한 겹 파고 들어가면 유년의 나, 원시의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유난히 잘게 반짝였던” (80쪽)

나를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젊음은 바다를 보러 떠나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이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기를,  그 속에 자신의 빛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린 파도를 내가 끝맺지 않았다. 보는 이들이 본인의 파도를 그리도록 이야기를 남겨 두었다. 
  그래서 파도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이들의 이야기로 무궁무진 이어진다. 
  나의 그림은 나와 당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82쪽)


『바다를 읽어 주는 화가 김재신』, 김재신 지음, 남해의봄날, 2023

글 - 조용완 ‘봄날의책방’ 책방지기
출처 - 월간국회도서관 2024. 05 vol.520

[t-24.06.12.  20240603-1549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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