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 한 글자 사전」
[210120-145547]
가장 순정한 말은 오로지 한 음절로 이루어진 감탄사다.
가장 나약한 말은 남을 그럴듯하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짓말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조차 기만하는 거짓말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입증하고야 만다.
가장 허망한 말은 사랑을 맹세하는 말이지만,
그 허망함은 너무도 허망한 나머지 이상하고 야릇한 굳건함이 있다.
가장 영리한 말은 무수한 대화 끝에 매달리고야 마는,
자신의 허위를 자조하는 말에서나 가능해진다.
가장 아둔한 말은 누군가를 꾸짖는 말이다.
무섭게 가르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마음은 닫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무서운 말은 정확한 말이다.
가장 정확한 말은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게 집약적으로 초점을 맞추며 감정을 싣지 않기 때문에 냉혹하다.
가장 가난한 말은 말을 많이 하는 자의 입속에서 나온다.
가장 현명한 말은 그말을 듣는 자가 듣고 싶어하던 말일 뿐이며,
가장 진실된 말은 말로 하는 순간 추레해질 뿐이며,
가장 영롱한 말은 했던 말들을 모두 부정하는 말일 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은 차라리 신음이거나 비명이며,
신음과 비명 너머에서 가다듬어 하는 말은 기도와 겨우 가까워질 수 있다.
말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운을 비집고 생성되는 뜬금없는 농담의 말과
뜻 없이 손을 흔들며 건네는 인사말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언제나 반갑다. (p132)
김소연 - 한 글자 사전
마음산책 - 2018.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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