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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사는 기술 - 사랑

by 탄천사랑 2022. 3. 24.

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타고난 음유 시인
거의 35년간 지속적 성체조배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the Franciscan Sisters of Perpetual Adoration 수녀로 살아온
테아 보우만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프랁치스코 영성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했다.
"프란치스칸에게는 일종의 광기가 있지요."하고 수녀는 웃으며 말했다.

 

죽음처럼 강한 사랑
아가 8장 6절에 표현된 것처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이다.
테아 수녀의 삶과 죽음은 선조들의 그러한 통찰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녀를 존경했던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녀는 하느님과 깊이 사랑했고, 그 결과 사람들과 깊이 사랑했던 "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은 그녀가 보낸 최후의 몇 달 동안 그녀와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계속 지탱해 주었다.
그녀는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느님 나라 건설에 지치지 않았으며,
이러한 그녀의 모범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저마다 완전한 무력감을 체험할 것이다.
죽어 감은 아무도, 친구도, 사제도, 의사도 우리를 구해 줄 수 없는 삶의 한 체험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거부할 힘을 잃고 무력해진다.
죽음이 우리에게 분명해지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홀로 외로이 죽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사랑에 길들어지면 길들여질수록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에개 더 다가가게 되고,
그들을 더 충만히 사랑하게 되며,
이로써 건강할 때나 병약해져 누워 있을 때에도,  그리고 임종 앞에서도 더 많은 '너'를 곁에 두게 될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궁극적 당신은 하느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의 현존으로 충만해져 점점 친숙한 자리가 된다.


우리가 죽어 갈 때, 그들의 사랑의 힘은 우리 곁에서 어두운 여정을 앞둔 우리를 위로해 준다.
역으로 우리가 증거하는 죽음의 표양은 그들에게 자신의 최후를 용기 있게 맞설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은 사람들을 계속 이어 주고 지탱해 준다.


테아 수녀가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가르침이자 경고는 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을 심어 주셨지만,
훈련과 길들임 없이는 우리가 사랑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숨 쉬는 것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다가가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동반’하려는 열망은 진지한 자기 성찰과 건강한 자존감의 함양을 수반해야 한다.
또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춰 주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이의 상황으로 들어가려는 의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하는 헌신이 요구된다.
이러한 것들은 의식적이고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할 사랑의 자질들이다.
특히 실천하는 사랑은 때때로 혹독하고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또한 그러한 노력조차 거부한다면,
자신의 내적 자산과 힘이 동나기 시작하는 삶의 끝자락에 가서도 그것을 실핼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다른 모든 이가 그렇듯 그저 무력하게 죽어 갈 뿐만 아니라,
'너'가 아닌 황량하고도 비인격적인 '그것'에 둘려싸여 홀로 외로이 죽어 갈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행한 만큼 받는 자업자득의 결과다.
이에 대해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이렇게 언급한바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진정한 인간관계가 결핍된 채로
  근심과 침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무의미하고 공허한 존재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테아 수녀가 이 말을 들었더라면
당장에 진심 어린 '아멘!'을 외치며 호응해 주었을 것이다. (p124)
이 글은 <빅 히스토리>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케리 월터스  -  아름답게 사는 기술

역자 - 김성웅 
생활성서사- 201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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