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 파피용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다.
여러 국가 원수들이 나서서 이 프로젝트에 불쏘시게 역활을 하는 위험천만한 과대망상증 환자를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요구했다.
그게 아니면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라도 전면 중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하지만 사유 재산권을 고려할 때 강제로 프로젝트를 중단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센터 내부의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들과 스파이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켓 제작 구역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원추형 엔진들이 정열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상 20미터 높이로 세워진 엔진의 크기를 볼 때 파피용 5 호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주 창고에서 폭탄 폭발로 인한 화제가 발생했다.
몇 주에 걸쳐 작업한 성과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불신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브 크라메르는 의심이 가는 몇몇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다른 이들로 대체했다.
경비원들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처에 의심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마지막 희망> 센터에는 초기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대신 팽팽한 긴장감만 맴돌고 있었다.
파피용 빌에서 또다시 폭탄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카페테리아가 전소되었다.
다행히 한밤중에 일어난 화재였지만,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적들이 기계를 공격했고, 그것으로 여의치 않으면 사람도 공격하겠다는 선전 포고를 해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4만 4천명의 참가자들 중에 사람들을 부추겨 중도 포기하도록 선동하는 자가 있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어요.
세계의 모든 나라와 대립하는 상태에서 한 개인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지지할 수는 없어요."
2백 명의 참가자가 그 말에 설득당해 센터를 떠났기 때문에 인원을 다시 충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브 크라메르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는 뭔가가, 아마도 처음에 품었던 열정이 사그라지고 말았다는 생각으로 괴로웠다.
맥 나마라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재건축이 한창인 레스토랑으로 이브를 불러 피자와 포도주를 먹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 앉았던 근사한 테이블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맥 나마라가 이브에게 말했다.
"이런 시련들을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착착 풀리리라고 생각했소?
이런 논쟁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탑승 지원자들을 조금 더 걸러 낼 수가 있소.
만약 그런 자들이 승선한 뒤에 사고가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소?
이런 일들을 통해 개개인의 결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오.
두고 보시오.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지금으로서는 몹시 당혹스럽겠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희망>프로젝트에 약이 될 테니까"
음식을 먹고 나서 맥 나마라가 이브를 창문 쪽으로 이끌었다.
이브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역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밤보다는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린 생각이에요.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정도밖에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우리 시야가 제한되죠.
하지만 밤에는 .....
밤에는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눈에 보이죠.
밤에는 멀리 보입니다.
우주를, 그리고 시간을 보는 겁니다." 이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맥 나마라가 시가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이 잠을 자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사실은 가장 많은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맥 나마라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마치 흥분해서 날뛰는 말을 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나한테는 말이오. 비밀이 하나 있어.
내가 그것 때문에 물질적인 성공을 거두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난 지금까지 정상적인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왔소"
"말씀해 보세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도 당신과 똑같은 면이 있소.
나에게 밤은 <관조>의 시간이오.
나는 항상 잠들기 직전에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지.
다음날 깨어나면 해답을 얻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이브가 맥 나마라를 조금 전과는 다른 눈길로 쳐다보았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자신의 수호천사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까?"
"꼬마 악마일 수도 있고,
나의 무의식이나 신, 아니면 우주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그러면 잠자는 동안 불안감이나 욕망, 감정의 동요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오.
잠간 동안이나마 자유로운 거요.
두려움조차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 맥나마라가 별들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오늘 밤에는 잠들기 전에 어떤 질문을 하실 건지요?" 이브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소.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이 있소.
하루 일과를 꼼꼼히 되돌아보는 것이지.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따져 보고, 머릿속애서나마 하루 동안에 한 실수들을 바로잡으려고 애쓰지.
그러다 보면 질문이 떠오르는 거야."
"실수를 바로 잡는다고 하셨습니까?
저녁이 되면 이미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가브리엘이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너무 늦은 때는 없는법이오.
<사후(事後)> 청소도 가능하지.
내가 당했거나 내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를 지워 버릴 수 있소.
선택적으로 실수를 지워 버리는 거야.
이미 있는 소리를 지우고 다른 소리를 덮어서 녹음하는 녹음기의 헤드처럼 말이오."
"생각이 시간이나 공간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난 그렇게 믿소."
"과거로 돌아가 청소를 할 수 있다면 미래로 나아가 질문을 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조금 복잡한 논리긴 해도 일관성은 있는 이야기네요."
이브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는 곤충들의 무도회가 한결 더 소란스러워졌다.
나방 한 마리가 전등으로 날아와 전구 유리에 몸을 부딪쳤다.
"저 나방은 제 아버지, 쥘 크라메르입니다.
가끔씩 나를 찾아와서 할일을 일러 주고 가시죠." 이브 크라메르가 말했다.
"당신 질문에 대답도 해주시오?"
"그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까맣게 잊고 지내던 질문들도 일깨워 주시죠."
두 사람은 함께 나방을 쳐다보았다.
나방이 회색 날개를 퍼덕이며 전등 위로 날아오르더니 음식 찌꺼기 냄새를 맡으려는 듯 접시 가장자리에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화분 가로 날아가 흡관을 펼치고 꽃 한가운데서 꿀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당신이 보기에 저건 무슨 의미요?
우주선에 꽃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뜻인가?" 맥 나마라가 농담을 던졌다.
"잠들기 전에 제 수호천사에게 물어보죠." 생각의 위력을 알겠다는 뜻으로 이브가 대답했다. (p116)
※ 이 글은 소설 <파피용>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역자 - 전미연
열린책들 - 2013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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