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야는 아드리엥의 집에서 자랐다.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금방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사냥, 요리, 천 짜기, 가축 돌보기, 집안일에도 능했다.
에야는 아버지와 함께 행성 탐사에도 나섰다.
그녀는 예전 지구에 대한 이야기에 굉장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는 특히 글쓰기를 좋아했다.
딱 한가지 문제라면, 난청인 탓에 단어를, 그중에서도 특히 이름을 제멋대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드리엥으로서는 아주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지옥이 뭐야?"
"미안, 지옥은 원기둥 안에서 천국과 대치했던 도시의 이름이야.
그곳 사람들 역시 아주 냉혹하고 공격적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
그렇듯 <예전 지구>에서는 모든 게 망가지고 있었어.
이브가 그때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를 만든거야"
"그리고 수천 명을 태울 수 있는 그 새도?"
"그건 우주선이라는 거야. 이름은 <파피용>이었지.
나비처럼 커다란 날개가 달리고, 별빛의 힘을 받아 움직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어."
"별빛? 와! 정말 멋졌겠다."
"그래, 난 파피용에서 태어났지.
아름다운 곳이었어.
근데 이렇게 자꾸 말을 끊으면 이야기를 빨리 할 수가 없잖아."
"이제 입 다물게." 검은 눈을 가진 에야가 말했다.
"그래서, 이브와 엘리자베트는 14만 4천 명의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 꽃들까지 실은 파피용호를 이륙시키는 데 성공했어."
"거기가 천국과 지옥이 있었던 곳이야?"
"그들은 1천 2백 년이 넘게 여행을 했어.
그리고 마지막에는 14만 4천 명 중에서 여섯 명만이 살아남았지."
"아단?"
"그래. 나하고 다른 다섯 사람들, 그런데 여자는 딱 한 명이었어.
엘리트라는 이름을 가진."
"릴리트?" <왜 에야는 항상 사람의 이름을 바꿔 버리는 걸까>
"아니, 엘리트. 엘리트와 난 우주의 끝에 있는 이 외딴 행성으로 왔어.
이 별에 단둘이 도착한 거야. 그때부터 우린 둘이 함께 살았지."
"그럼, 엘리트가 내 엄마야?" <에야는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근데 도대체 왜?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아니, 불행하게도 난 엘리트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했어."
"그럼 난, 에바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
"아니야, 에바가 아니라 에야.
네가 이름을 바꿔 부르는 솜씨는 정말 놀랍구나.
일부러 그런다고 해도 믿겠어."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듯한 몸짓을 해 보였다.
"난 어떻게 태어났어. 아담?"
"내 말을 들으면 아마 넌 믿지 못할 거야....,
넌 내 많은 뼈들 중 하나로부터, 그러니까 갈비뼈로부터 태어났어." 그는 자기가 집도했던 수술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그럼 아담의 갈비뼈로 날 만들었다는 거야?"
"자, 그다음은 너도 알잖아.
실험실에서 나는 이브가 저장고에 보관해 놓은 수정란들로 계속 동물을 만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너도 날 도와줬고, 정말 많은 동물들이었지."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이 순간, 그는 에야처럼 다른 아이들도 같이 태어나게 하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또다시 갈비뼈를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에야가 다시 메모를 읽었다.
"다시 정리해 볼께.
창조자의 이름은 야훼야." <아니야, 야훼가 아니고 이브야. 어쩔 수 없어.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걸>
"옛날에, 아담하고 릴리트, 이렇게 둘이 천국에 살았어.
그러다가 여기, 이 새로운 지구에 보내진 거야."
"참, 이야기에 사틴도 나와."
"사탄?"
한순간, 그는 에야가 귀머거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 이름을 바꾸는 게 아닌가 하고.
"아니야, <사틴>." 그가 이제 거의 습관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처음엔 정말 훌륭했어.
그런데 나중에 왜 돌변했는지 아무도 몰라."
아드리앵은 예야를 처다보았다.
시원(始原)의 밑바닥에서 온 것 같은 검은 두 눈이 그녀를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생기 있고, 너무나 총명하고, 과거의 이야기들 속으로 너무나 쉽게 빠져들었다.
"그럼 다른사람들은?"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다른 사람 누구?"
"<예전 지구> 사람들은?"
그는 순간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오늘 저녁에 큰 소리로 물어보면 꿈속에 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냄비 모양의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별자리가 곰처럼 생긴 것 같았다.
"큰곰자리 안에 있었는데."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예전 지구>는 큰곰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여기는 .... <새로운 지구다>"
<빌어먹을, 에야 말이 옳아. <예전 지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의 기준은 바로 여긴걸.
이제 여길 새로운 땅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는 거야. 여긴 지구야.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지구.>
언젠가 그들이 떠나온 지구는 <낯선 행성>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지구라고 정의되는 행성은 여기 이 행성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게 반대로 될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냐!
<그들은 미래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그들의 과거인데!>
그는 지나간 경험의 찌꺼기들, 예전 세계의 찌꺼기들 ,
<제때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찌꺼기들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큰곰자리 쪽 별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빰을 타고 눈물이 흘렸다.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래도 이젠 그만 해야 해.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지구에 새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지구에서 탈출했어.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해."
"왜?" 그녀가 물었다.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아담>이라고 부른 남자가 스스로를 <이브>라고 부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신을 갖기 위해 또 한 번 말했다.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 끝 - (p389)
※ 이 글은 <빅 히스토리>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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