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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베르나르 베르베르 - 나무 - 파피용

파피용 - 32. 증류

by 탄천사랑 2022. 3. 23.

베르나르 베르베르 -  「파피용」

 

 

32. 증류
발사 후폭풍에 뒤이어 비상(飛上)의 시간이 왔다.
거대한 우주선이 가까스로 하늘로 떠올랐다.
후방 엔진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기둥들로 발사대 주변의 대기가 요동을 쳤다.
로켓이 대기권의 절반을 넘어서자 1단계 화학 연료 엔진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이제 사람들을 가득 채운 거대한 타워 모양의 우주선이 괴력적인 소음을 내며 대기를 가르고 수직 상승을 계속했다.
대기권의 상층부에 가까이 다가가자 2단계 복부 부분의 엔진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1.2단계 엔진들이 헌병대의 용접기에 손상을 입은 터라,
우주선이 무사히 기압을 견뎌 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브 크라매르는 엄청난 안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선의 상승 속도가 서서히 떨어지더니 마침내 지구 정지 궤도에서 멈추어 섰다.
환승 구역에 앉은 14만 4천 명의 승객들은 유리창을 통해 고향인 지구를 바라보았다.
푸른빛을 띠는 커다란 공 위에서 구름들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깜박깜박하는 하얀 섬광들이 그들이 떠나온 곳에서 천둥이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황홀감에 젖어 지구를 바라보았다.
이브가 고전 음악을 한 곡 틀었다.
광대하고 장엄한 교향곡 소리가 물결처럼 들렸다.
갑자기 엘리자베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 방울이 마치 진주처럼 반짝이는 공 모양으로 변했다.
엘리자베트가 눈물을 쓱 닦아 냈다.


"왜 그래요?"  이브가 물었다.


"저기가...."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저기가 우리가 살던 곳이예요."


"우리들의 감옥이었소.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곳에서 해방되었고."


"우리들의 요람이었어요."


"아이가 자라면 요람을 떠나게 되어 있어요."  이브가 간결하게 말했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저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소.
  이제 우리는 <청소년>이 되어야 하오."


"어쨌든, 우리가 실패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시도를 했을 거요.
  누군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오."


"우리가 지금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중력, 빛, 공기, 다 좋았죠.
  지구에 산다는 게 나쁘진 않았어요."  엘리자베트가 말했다.


"익숙한 세상을 떠나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오."


이브가 콧등 위로 안경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최초로 물 밖으로 나와 육지로 기어 올라온 물고기의 심정이 어땠겠어요?
  물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거예요.
  사실 다시 물로 돌아간 물고기들도 많고요."


"소수의 물고기들만이 그 당황스러운 서식 환경에 적응했지."


"어떤 물고기들이 말인가요?"


"불만에 찬 물고기들 말이오.
  물속에서 사는 게 편치 않았던 물고기들.
  편안함을 느낀다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이유가 전혀 없겠지.
  고통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하게 만들지요."


광대한 음악이 조정실 전체로 울려 퍼졌다.


"나는 우리가 고통 없이도 진화할 수 있다고 믿어요." 엘리자베트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보는 항상 고통 속에서만 가능했소…….
  일종의 습성인 셈이지.”


​"습성은 바꿀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소."


엘리자베트는 다시 버튼을 두드리고 기기들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브는 끝없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이때, 배에 두 손을 올린 채 똑바로 누워 마치 수영이라도 하듯이
두 다리를 움직이며 둥둥 떠다니던 맥 나라마가 조정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어쩌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짓을 해냈는지도 몰라."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번만은 폭포수 같은 그의 웃음소리가 기침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는 자문자답이라도 하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끝까지 버터 봐야만 알 수 있겠지.
  하여튼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목슴 아닌가.
  그러니 편범함을 벗어난 경험도 몇 번쯤은 해볼 만 하지 않겠소." 그가 우주복 안에서 술이 든 납작한 병을 하나 꺼냈다.


"금지된 시항인 줄은 아네만, 친구들이 증류시킨 술이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어디 제정신이었나.
  이제 약간은 긴장을 풀어도 되지 않을까."


맥 나마라가 공중에 떠 있는 고양이를 한 번 돌려 보는 것 같은 재미있는 일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쳤다.
자꾸 이러면, 누구든 털끝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발톱 자국을 내주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자 맥 나마라가 공중에 술을 한방울 쏱아 놓았다.
술은 이내 오렌지색이 나는 투명한 작은 공으로 변해 버렸다.
호기심이 발동한 고양이가 술 방울을 잡으려고 기를 쓰며 쫓아다녔다.
새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는 손을 대기가 무섭게 동글한 술 방울이 떨리면서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p164)

 


38. 비밀
빛으로 부풀어 오른 두 황금빛 날개.
지구의 생명을 가득 실은 거대한 파피용호가 미지의 우주 속을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우주선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엘리자베트가 탐스러운 긴 붉은색 머리채를 흔들며 이브를 향해 돌아섰다.


"저 별 세개란 말이지, 좋아.
  그런데 별들에 가까이 가면 어느 별로 가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지?"


"저 세 개의 빛은 별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성운(星雲)이야.
  그곳에 다가가면 가운데에서 빛을 발하는 또 다른 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우리 태양 크기만 한 별이지.
  지금은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해.
  그 별 주변에서 내가 생물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행성을 하나 발견했어.


"육안으로 볼 수 없다면서,  그럼 당신은 어떻게 찾아낸 거야?"


"항공 우주 연구 센터에서 전파 망원경으로 찿아낸 거야.
  내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관축하던 곳이 있었어.
  그 방향으로 망원경을 돌려서 별을 하나하나 관측한 끝에 찿아냈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도 봤을지 몰라.
  하지만 그 행성까지 가는 여행단을 꾸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당신이 가려는 그 별의 이름이 뭐야?"  엘리자베트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현재로서 그 별의 과확적 이름은 그냥 JW103683이야"


"그럼 행성은?  그 행성도 전파 망원경으로 찿아낸 거야?"


"일반적으로는 같이 사용하지 않는 여러 장비들을 결합해서 사용한 덕분이지.
  그렇게 해서 우리 태양계 외부에 존재하는 그 행성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추론해 낼수 있었어.
  태양과 같은 기능을 하는 별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생명이 불타거나 얼어 죽지 않고
  기온 과 대기 구성도 적당한 행성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이제 그 알듯 말듯 한 이야기는 좀 그만 하고, 말해 봐.
  당신이 가려는 행성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브가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밝힐 때가 아니야.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될 거야.
  인류가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도착해서 그곳을 더럽히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별의 정체를 숨겨 두었지.
  여기, 이 우주선 안에."


엘리자베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브가 아무래도 보물섬 이야기같은 것들을 너무 많이 읽은 게 틀림없어.
이거 지나치게 대성적인 사내아이들이나 하는 짓 아니야>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은 그 행성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금고 안에 넣어 두었어."


"말도 안돼.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데 당신은 비밀이니, 보물이니,
  미스터리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장난이나 하고 있다니, 당신 대체 나이가 몇 살인 거야. 이브?"

이브는 자신의 작전이 아주 흡족한 모양이었다.


"금고는 천 년이 지나야만 열 수 있어.
  안에 기계 장치를 해놓았거든."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14만 4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종착지를 알 수 있다니!"


"파피용호 탑승객들의 마지막 대에 가서야 최종 목적지를 알 수 있게 할 거야.
  그 사람들만, 자격이 있어야만 알게 되는 거지."  엘리자베트가 이브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럼 '자격이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건데?"


"간단한 지능 검사를 하는 거지.
  아주 간단한 수수께낀데, 그걸 풀면 정확한 목적지가 표시된 지도가 든 금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수수께끼를 풀면 글자 조합이 나오고, 이 글자들만 알면 금고를 열 수 있어."


"그 간단한 '수수께끼'라는 게 대체 뭐야?"


"사람들이 절대 잊어버릴 수 없게 계기판 위에 새겨 놓았어."


이브가 가리키는 스크린 위에 잔글씨로 쓰여 있는 세 개의 문장을 엘리자베트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이것으로 밤이 시작하고 Cela commence la nuit.
이것으로 밤이 끝난다 Cela finit le matin.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달을 쳐다볼 때 보인다 Et on peut le voir quand on regarde la lune. (p188)

 

 

베르나르 베르베르 - 파피용
역자 - 전미연
열린책들 - 2013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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