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노성만 윤봉현 노성대 - 「삶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학창시절을 지나 직장에 이르기까지 책에 관한 한 나는 자유형이다.
잡히는 대로였다.
책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혀 다른 이유다.
지난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으로 MBC를 떠나게 되면서 세월을 죽일겸,
분노의 열기를 가라앉힐 겸,
책과 좀 더 가까워졌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어 책을 정독할 수 있었다.
그때 좋은 구절은 노트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읽고 메모한 글 중의 하나가 장준하의 돌베게에 나오는 다음 글이다.
'나는 사실 나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숨가쁜 길로 산을 기어오르면서 스스로를 시험한다는 의식 속에,
나를 이기고 있었다.
이긴다는 것은 모두 내 생애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의 생애가 만일 나 이외의 것을 위해 있을진대
반드시 오늘의 이김은 나의 생애를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
나 자신에게는 이기되 다른 사람에게는 지리라.' (장중하 '돌베개' 장준하문집 p70)
'나 자신에게는 이기되 다른 사람에게는 지리라.' 이 대목이 결정타였다.
구속이 되고, 큰 집에 갇히고, 풀려나서도 정든 문화방송에서 쫓겨나 서럽고 분하던 시절,
이 무슨 말인가. 씹으면 씹을수록 위로가 되는, 격려가 되는 한 마디다.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이런 말이 있기는 하다.
'책임은 자신에게 무겁게 지우고 남에게는 가볍게 하라'
그러나 말이다.
서럽고 분한 놈한테 이러한 좋은 말씀이 어디 쉽게 감동을 주겠는가.
장준하 선생의 말은 그때 상황과 맞물려 내 작은 가슴을 크게 울렸다.
장준하의 '나에게 이기기'는 책기서인(責己恕人)으로 이어진다.
북송(北宋) 철종(哲宗)때의 재상 범순인(范純人)이 자기 아들을 훈계하면서 한 말이 책기서인이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수록되어 있다.
좀더 보기로 하자.
책인지심책기(責人之心責己),
서기지심서인(恕己之心恕人).
남을 꾸짖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보통 사람들은 남의 잘못이나 단점은 곧잘 지적하고 이를 책망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가.
장준하 선생의 '나에게 이기기'는 '나에게 엄격하기'가 아닌가.
결국 이 두 말이 나를 결정짓게 하는 벼락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두 말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하는 무서운 말씀이 되어 버렸다.
루쉰(魯迅)의 희망도 그 무렵 내 노트에 메모가 된다.
'생각컨대, 희망(希望)이란 본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없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어둡고 절망적이던 시절, 희망이라곤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던 그때, 루쉰은 뭐라 말하는가.
꿈을 많이 꿀수록, 보다 많은 사람이 그 꿈을 꿀수록 희망은 있는 거라 말하지 않는가.
그러한 루쉰선생은 다음가 같은 경고를 하긴 했다.
'더구나 더 나쁜 것은 곧, 공동으로 당신을 들어 올려놓고선 일을 할 때는 개개 모구가 뒤로 빼는 말을 하며,
또 개개 모두가 당신의 면전에 화약(火藥)을 늘어놓아 버리니,
결국 당신만이 폭탄 파편에 가루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벼락처럼 나를 후려친 말은 또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특별전제로 실린 갈브레이스 교수의 강연이 그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이자 탁월한 정치사상가이기도 한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10여 년 전,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명문여대 스미스 칼리지의 졸업식에서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제도적 진실'을 통박하는 다음의 강연을 했다.
'여러분이 직면할 진정한 선택은 진실의 영역에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불편하고 고통스런 진실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제도적 진실'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여러분의 미래는 '제도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 선택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다소의 오류를 따르는 것이 안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러분이 실체적 진실을 선택하기 바란다.'
미국이 왜 강한가.
이 말을 이 땅에서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진정한 개혁을 하려면 나는 진정한 언론의 개혁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의 하나다.
진정한 언론의 개혁은 최소한 지난 일에 대한 진정한 자기반성을 전제한다.
그래야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80년 5월 '광주 민중 항쟁'을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보도한 언론사들 가운데
그러한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사과를 한 언론사가 있는가?
비록 계엄 하에 검열을 받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넘도록 그러한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오히려 일부 언론은 자신들이 자유언론의 선봉을 맡은 투사 마냥 으스대고 있지 않나 반성할 일이다.
그래서 래지스탕스 출신 작가 겸 언론인이었던 알베르 카뮈의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겠는가?
지식인들이 칼은 칼로써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누가 감히 지난 날은 잊어버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증오를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정의는 그 자체가 기억의 바탕 위에서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교훈을 얻어내는 민족은 발전하나 그렇지 못한 민족은 사라져간다고 한다.
지난 일은 잊자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누군들 지난 일 파헤쳐 상처를 후비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카뮈의 말대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최소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는 민족이다.
더구나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해야 할 당사자가 부끄러움을 모른대서야 이를 어찌 할거나. (p234)
※ 이 글은 <삶을 사랑하며 감사하며>의 일부를 필사한 것임.
노성만 , 윤봉현 외 - 「삶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전남대학교출판부 - 200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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