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이동산. 정주연 - 『생각을 디자인하라』
"어둠이 얼마나 빠른지 궁금해한 적 있으세요?"
"으음?" 최근 논문의 중간 부분을 더 치밀하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톰이 주의를 돌렸다.
"빛의 속도는,
진공상태에서 빛의 속도에는 값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둠의 속도는......"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루시아가 말했다.
"그저 빛이 없는 곳일 뿐이지ㅡ부재(不在)에 붙인 명칭일 뿐이야."
"저는...
저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톰이 백미러를 살짝 보았다. 루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였다.
"어둠이 얼마나 빠를지 생각해 봤어?" 톰이 물었다.
루시아가 그에게 시선을 보냈으나 모른 척 했다.
루시아는 그가 루와 그의 단어놀이에 빠질 때마다 걱정했지만, 톰은 딱히 해가 될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ㅡ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혹은 어둠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지도 모르지.
먼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운동이 아니라 장소로."
"어둠은 실체가 아니야.
그저 빛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야.
움직임을 가질 수가 없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빛도 어떤 추상적인 개념인 셈이지.
그리고 금세기 초에 빛을 멈추기 전까지 사람들은 빛이 운동, 입자, 파동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하곤 했어."
목소리에 날이 서 있어서, 아내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음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빛은 진짜야.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야."
"가끔 어둠은 어둠보다 어두운 것 같아요.
더 짙죠." (p142)
-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의 SF소설 <어둠의 속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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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나를 대표해서만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한다."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의 소설 <어둠의 속도>에 쓰여 있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어둠의 속도>라는 소설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나는 오직 나를 대표해서만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한다.'라는 문장에 이르러서는
'그래, 이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군!' 이라며 환호성을 지를 번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생각이란 걸 하는 듯하지만, 진짜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권위자의 말을 듣거나, 정답을 외우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흘려 보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직 나 자신을 대표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곳에서 잠자고 있을 어긋난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해 나가는 일을 차분히 해 나가면 충분합니다.
타인을 대표한 생각과 주장과 말이 아니라, 자신을 대표한 생각과 주장과 말이 필요합니다.
비슷한 충격을 이홍렬에게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홍렬이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한 유치원생 아이에게 받았습니다.
이홍렬이 물었습니다.
“아이엠에프(IMF) 때 뭐가 달라졌나요?” 아이엠에프라는 단어가 낯설었는지 갸웃거리던 아이가 대답합니다.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적게 사줘요.” 사람들 모두는 깔깔 웃었지만, 전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고요?
고작 유치원생 아이가 유능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정답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가계 지출이 줄었다.'라거나 '내수 소비가 부진하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가계 지출과 내수 소비란 개념어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의 핵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충격이었습니다.
지식을 많이 알아야, 책을 많이 읽어야,
개념을 많이 알아야 정답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단 것을 단박에 깨달았습니다.
지식과 개념은 도구입니다.
혹은 포장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의 현실을 관찰하는 예리한 눈과 그것들이 쌓여 있는 내면의 생각입니다.
자기의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해서 자기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생각의 절반은 완성한 셈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두루뭉술해진 관찰력과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워야 합니다.
이 책은 잠들어 있는 각자의 관찰과 생각들을 깨우는 도구입니다. (P15)
(단행본) 이동산. 정주연 - 『생각을 디자인하라』
그림 - 서장원
두리미디어 - 2007.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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