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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윈 쿨러, 린다 로웬탈-열망/겸허와 진실.

by 탄천사랑 2021. 12. 18.

어윈 쿨러, 린다 로웬탈 - 「열망

 

 

"한 가지를 배웠으면 그때부터 더 깊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수도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내가 학교에 다녀와서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배운 지식으로 열을 올릴 때면 늘 그러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동생들에게 내 생각을 늘어놓으며 잘난 체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이의를 제게하셨다.
그러면 나도 어감없이 대꾸했다.

 

"엄마도 다 아시는 건 아니잖아요.
 제 애길 들으면 배우는 게 있을 걸요."

 

하지만 그러고 나면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매섭게 나를 쏘아보았고,

나는 곧 그 눈길에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뭐라고 하시던?
  좀 더 알아볼 문제는 없을까?
  아마 더 있을 거야."

 

나는 곧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 서재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말해줄 새로운 통찰을, 마침내 어머니를 쓰러뜨릴 해답을 가지고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열띤 토론을 새로 한 판 벌이기 위한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을 낳는다는

유대인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어머니는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단, 우리가 끊임없이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을 때에만 그렇다.

 

어머니는 이 교훈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도 가르치셨다.
내가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과 싸울 때면 어머니는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잘못을 했는지,
누가 먼저 때렸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고 하면

'그럼, 넌? 너는 전혀 잘못이 없단 말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한 가지 괌점이 유일한 시각일 수 없다는 것,
모두의 말에 나름의 진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훤히 알고 계셨다.

 

내가 옳다고 확신할 때마다 어머니는 반드시 이 점을 환기시키셨다.
그것은 상대방의 기분과 생각도 살피라는 신호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일단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나면 이기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현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자기 확신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더 깊은 깨달음에 이르고 도덕적인 시야를 넓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두 사람의 상황이 같을 수 없으므로 모든 답은 근원적으로 잠정적이라는 것을 현자들은 알고 있었다.
내일이면 오늘과 다른 도덕적 딜레마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날은 또 다른 딜레마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큰 의문들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답이 있을 수 없다.
더 심오한 질문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르침에는 참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면이 있다.

 

진실을 구한다는 것은 어느 순간 손을 터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점점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다시 깨닫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p20)

 

... 진실을 터득하고 '아하!'라고 말한 뒤 긴장을 푸는 바로 그 순간, 진실은 변하거나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순간의 진실'이라고 부른다.
처음의 진실이 사라지고 새로운 진실이 한순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각각의 깨달음이 더 깊은 깨달음으로,

그리고 다시 더 깊은 깨달음으로 순간순간 나아간다는 뜻이다. (p31)

 

... 이처럼 진실은 끊임없이 깊어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본다면 가장 값진 진실조차도 좀 더 여유 있고 유연하게 대할 수 있다.
절대적인 진실이 겸허한 진실이 된다.
겸손은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자질 중 하나다.

 

겸손이 없는 진실은 교만이나 권위적인 힘으로 바뀌기 쉬우며

실제로나 비유적으로나 '죽음의 종말'에 이를 수밖에 없다.

(죽음의 종말-dead end, 막다른 길 또는 궁지를 뜻함-옮긴이)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멧(emet)'이다.
이 말의 첫 글자를 덜어내면 '멧(met)이 남는데 이는 '죽음'을 뜻한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야기의 한쪽 면만 알고서는 추락할 때까지 나상(螺狀) 비행을 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자신이 유일한 답을 알고 있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지도자들을 보면,
겸손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덕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겸손하게,
가볍게 여겨야만 교만과 궁지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인생에는 종착역이란 없으며 일련의 작은 역들이 있을 뿐이다.
깨달움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는다.
이 말이 너무 무겁고 어렵게 들릴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하고,
심지어 몹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찾아 헤매야만 하는가?
하지만 환경이 바뀌고 인생이 불가피하게 흘려가는데도 익숙한 하나의 진실에 매달려야 하는 것에 비하면,
사실 이쪽이 덜 괴롭다.

 

진리와 깨달음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결코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열정과 성의를 다해 명료함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p.33)
※ 이 글은 <열망>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어윈 쿨러 , 린다 로웬탈  - 열망

역자 - 문영혜 
지식의숲 - 2007.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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