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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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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윈 쿨러, 린다 로웬탈-열망/불확실성과 춤추기

by 탄천사랑 2022. 1. 2.

(단행본) 어윈 쿨러린다 로웬탈 - 「열망

 

 

사람들은 대부분 씨앗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는 사실을 잊은 채,

불안을 겪은 후의 열매만을 절실히 탐내고 예찬한다.
하지만 스스로 불안 속에서 혜매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서는 무엇을 발견할 수도 밝혀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으며,
사랑도 경이로움도 기쁨도 느낄 수 없다.

 

목적지가 어딘지 굳이 알려하지 말고 일단 여행은 떠나보고 볼 일이다.
하지만 내가 랍비로서 지내온 20년 동안, 어떻게 하면 덜 명확해질까를 의논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더 많이 질문하고 모호함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내 사무실에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짓눌리거나
심지어 그로 인해 마비된 상태였고 알지 못한다는 불안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길잡이를, 어지러움과 혼란 속에서 반짝이는 등대를 갈망한다.
대개는 인간관계나 자녀나 노부모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처지고,
자신들이 내리고자 하는 결정에 대해 내가 확신을 주기를 바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일은 드물지만, 나 역시 같은 것을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확신에 대한 열망, 미래를 파악하고 운명을 명확히 알려는 우리의 열망은 너무도 절실하며 너무도 고귀하다.
만사가 잘 되리라는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잘 닦인 오솔길을 가기 원한다.
못해도 스캇 펙이 쓴 유명한 책에서 제안한 '덜 밟은 길' 정도는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결국 자신이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걷고 걸어 자기만의 행로를 만들어낸다. (p129)

 

..... 늘 가지 않은 길이 남아 있다.
19세기 철학자 프란츠 로젠바이크는 인생이 '길 없는 상태'로의 일련의 도약이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길을 택하고, 그 길을 따라 걷고, 그러다가 다시 도약해야 한다.
마지막 결정 즉, 모든 선택을 끝낼 선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늘 가지 않은 길이 남게 되므로 모든 결정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지도를 읽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과거에 택한 길들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물론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결정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길에서 길 없는 상태로 옮겨가야만 한다.

 

유대인의 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할라카(halacha)'의 어원은 '걷다'라는 의미다.
할라카는 원래 '길'을 뜻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길을 가다'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과 같다.
할라카는 정해져 있거나 정체된 법과는 반대다.

 

길을 가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로지르고, 따라가고, 올라가고, 달리고, 뛰고, 어슬렁거리고, 돌아간다.
길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한, 우리는 길에 대해 좀처럼 신경쓰지 않는다.
풍경과 냄새를 받아들이고 차를 타는 기분을 즐기고 언덕길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 언덕이 너무 높다든가, 길이 사라지거나 어두운 숲속으로 꺾어진다든가, 길이 너무 곧고 좁아지면,
우리는 꼼짝없이 갇혔다는 기분이 든다.
두려워지기도 하고 지루해지기도 한다.
이제, 왔던 길을 거슬러 가거나 다른 길을 찾거나 얼마 동안 광야를 헤매야 한다.  (p136)

 

.... 유대교의 지혜는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결정하지 못해 무력해져 있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세상에 기여하고 변화를 만드는 것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결정이 중요하고, 그런 까닭에 가능하면 여러 각도와 방법을 궁리해보아야 한다.
랍비들은 삶을 천칭저울에 비유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삶 쪽으로 좀 더 기울거나 죽음 쪽으로 좀 더 기운다고 본다.
이것은 단지 시적인 표현이거나 중세적인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들의 축적이다.
모든 순간이 운명적인 순간이다.
이 점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결정은 실은 ‘자기가 되어가는’ 순간들이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우리는 진화한다.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결정하지 않는 것 역시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단지 다른 리듬으로 길을 가는 것이다. (p138)

 

.... 우리는 어떤 한순간에 엄숙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를 통해 세상에 입장을 밝히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현상에 지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 순간은 실제로 진행되어온 대화의 과정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받아들어야 한다.
이중성이 우리의 생득권임을 인식하고 자신이 늘 '자기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마저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웠다) 삶에 대한 외경심은 더욱 커질 것이고,
자신의 행보가 진정으로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결정과 행동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p141)
이 글은 <열망>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어윈 쿨러 , 린다 로웬탈  -  열망

역자 - 문영혜 
지식의숲 - 2007.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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