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비문학(역사.사회.문학.

김형래-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제목 없는 이메일이 왔다.

by 탄천사랑 2021. 11. 6.

김형래 -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

 

 

제목 없는 이메일이 왔다.
자주 연락하던 S선배가 보낸 것이었다.
습관대로라면 즉시 열어보았겠지만 제목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일단 그냥 두었다.
석양이 발그레 유리창 귀퉁이를 유혹하는 업무 마감시간 즈음,  매일을 열었다.
내용을 읽는 순간 덜컥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쪽지 한 장으로 별안간 내 꼬리를 감추어서 미안하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급급하여 변변한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요.
코끼리는 죽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영물이라지 않소?
나도 코끼리처럼 이 회사를 떠난다오.

 

며칠 전 인사담당 임원이 만나자고 했소.
나는 그가 퇴직을 권할 것이라는 것을 감지했소.
식사시간이 지나 휑한 회사 식당에서 냉수를 채운 물 컵만을 앞에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소.

 

"후진 양성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 주시는 게...., "

 

좋은 조건이라며 제시한 것은 퇴직금에 웃돈까지 얹어주고, 

1년간 뒷방에서 자문위원으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임을 감지하고는 그의 얘기가 모두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소.

 

내가 제시한 조건은 단 하나, 

그래도 부서장으로서 일말의 책임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은 마무리를 한 후에 떠나겠다고 했소.
그때 정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오.

 

이 얘기를 인사부로부터 전해 들은 H상무는 퇴직을 극구 말리면서,

곧 후회할 테니 자존심을 버리고 번복하라고 했지만
더 이상 비참하게 사는 것은 스스로 허락되지 않아서 못 들은 척했소.

내 젊음을 바친 곳,  내 전부를 걸었던 곳이기에 비록 몸은 떠난다 해도 회사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소.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부서장으로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치욕스럽기도 했소,
임원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다 보니 나를 향한 동정의 시선조차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오

 

아무튼 퇴직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지난 보름간은 비밀에 부쳐진 완전한 연극이었소.
섭섭하지만 후회는 없소.
나의 미련한 결정이.

 

하늘이 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않겠소?
정을 떼고 나니 홀가분하기까지 하오.

 

나는 지금 서서히 그 코끼리가 되어가고 있소.
나를 찾지 마시오.
당신도 조직에서 죽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고 사시오.

 

 

강직한 성격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S차장이 첫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곳은 바로 내가 근무하던 지점이었다.
당시 나는 대리였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복날,
객장에서 고객들을 위한 수박파티를 할 때면 S선배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직접 재래시장을 다녀왔고,
수백만 원씩 배정되는 지점 접대비도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는 등

그야말로 표준 업무지침 그 자체였다.
그래서 천생 모범생이었던 나와도 코드가 맞았나 보다.

 

주가 폭락으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던 1990년의 '깡통계좌' 정리 시절엔
투자손실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한 고객이 휘두르는 골프채를 같이 피하고,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객장을 함께 지키며 어느새 우린 전우가 되었다.
S선배가 서울로 발령을 받아 올라갔지만 매일 연락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중독된 사이었다.

 

정치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혹여 뒷전으로 밀러 나진 않을까 불안한 감은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터라 그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15년을 같은 회사에서 동고동락했던 S선배가 하오체로 쓴 이메일 하나만 덩그러니 남기고 회사를 떠나다니.

 

얼굴 바로 앞에서 포탄이 터져버린 듯 사지를 분간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선배의 사무실로 뛰어 내려갔을 때,
그의 자리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휴대폰마저 꺼져 있어 행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직원들의 예기로는 환송도 뿌리치고 환한 대낮에 떠났다는 것이다.
코끼리처럼.

 

아직도 여의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서운함과 안타까움,
미안함 그간의 무심함을 자책하면서 이곳저곳 선배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복받치는 감정에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길가 화단에 털썩 주저 않아 흐느끼고 말았다.
내 귓가에서는 계속해서 선배의 마지막 글귀가 들려오는 듯했다.


"당신도 조직에서 죽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고 사시오."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실력 있고 배경도 든든했던 S선배가 밀려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상은 깨졌고,   S선배는 남들처럼 은퇴했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평등하듯 누구에게나 은퇴도 평등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말이다.


알마 전 한 여성 정치인이 인터넷에 '마흔 살 성년파티'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매년 4월 1일이 되면 40대로 넘어가는 후배들을 불려서 축하해주는 두 번째 성년파티란다.
파티 문화가 언제부터 성행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마흔 살의 남자들은 마실 것과 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요원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해야 하는 나이가 바로 마흔 살이다.


요즘에는 15세 중학생을 '십오야'라고 부른다.
15세에는 대낮에도 하늘이 밤처럼 새까맣게 보이는, 즉 미래가 암울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오륙도 (56세가 되도록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다)
사오정 (45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삼팔선 (38세가 되면 직장에서 버티든지 나가서 살길을 찾든지 결정해야 한다)
이태백 (20대의 태반이 백수다)이라는 단어들을 듣고도 쓸쓸했는데,
십오야는 지나치게 앞서갔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 살의 남자는 막 38선을 넘어선 역전의 용사다.
38세까지 직장에서 버텼으면 아주 훌륭하다는 말이다.
그들은 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대상이라는 '삼초 땡'도 지냈다.

 

90년대 학번인 대학 졸업생들은 1997년 외환위기 시절 또는 그 후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입사했지만,
이제 또다시 길거리로 몰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나마 당시에는 20대여서 꿈이라도 있었지만
오늘날 은퇴는 생계위협이나 다름없는 말이기에 마흔 살의 남자는 다른 연령층보다 타격이 크다.

 

또한 40대는 대게 학부형이다.
한 아이를 사회에 내보낼 때까지 소요되는 교육비가 2억 2,000만 원에 이른다고 하니,
지출은 늘어나고 어깨는 한없이 무거운 40대가 은퇴의 길목에 서게 되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40대는 어깨에 해당한다.
무거운 짐을 머리로는 아파서 받칠 수 없고 허리에 받치면 다치기 쉬우므로 어깨로 받친다.
40대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인생의 무게를 받쳐내고 감당해내는 위치인 것이다.
그리고 어깨는 항상 가정과 회사라는 양쪽의 팔을 균형 있게 지지해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직원의 실력과 성실성을 따지는 기업은 30대 직원은 망원경으로 살피면서, 

40대에게는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한다.
하긴 50대는 현미경으로 관찰하겠지만. 

 

그렇다면 돋보기로 본 40대 남자는 어떨까?
확대된 모공,  빠지기 시작하는 모발,
거뭇한 반점 등으로 외양도 볼품없고 인건비 대비 생산성이나 조직 순웅도,

업무 창의성 등도 크게 높은 것이 없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 발휘되는 순발력이나 합의를 도출해내는 협상력 등은 예외로 치부되기 쉽다.

 

관행에 익숙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흡수력도 떨어지고 자기 계발에 소극적인 수동적인 세대,
그래서 끌고 다니기에 버거우나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바로 40대의 남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이웃 일본의 경우,

이른바 '경력자의 집단 은퇴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단카이 세대(전후 1947~1949년에 태어난 세대로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집단으로 은퇴하는 시기가

2007년이었으므로 경력자의 은퇴를 2007년의 문제로 규정하고,

2005년 후반부터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일본 사회는 개척정신과 오랜 경력을 갖춘 세대가 집단으로 은퇴하면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되지 못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회사의 기밀이 외부로 유출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훨씬 건강하고 치열한 의식을 지닌,

보다 세계적이며 도전정신을 갖춘 젊은이가 많아서일까?
한국 사회에서 40대의 남자는 할 일 많고 책임도 크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마흔 살 성년파티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마흔 살 은퇴 파티를 열 것인가?
마흔 살의 남자,   그들에게 은퇴 파티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다.


- 김형래 (p11)

 

 

 

 이 글은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김형래 -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
청림출판 - 2010. 10. 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