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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앤젤로-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의 어머니 마사 엘렌 영 트루먼 - 2

by 탄천사랑 2021. 8. 23.

보니 앤젤로 /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지각 있고 현명한 마사는 해리의 나쁜 시력을 읽고, 

배우고,  성공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매우 현명했다"라고 손녀인 마거릿은 말한다.
그녀는 시력을 교정해줌으로써 아버지에게 더 넓은 세계를 열어 준 할머니에게 감사드리고,
훌륭한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커서 책 속의 영웅들처럼 유명하고 유력한 사람이 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 그러한 해리의 독서 습관은 어머니 마사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1890년 해리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마사는 15마일 떨어져 있지만 더 나은 학교가 있는 인디펜던스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 트루먼 가는 3 에이커의 땅에 지어진 아담한 집을 샀다.
이 작은 농장에서 아버지 존은 다시 가축 거래도 하고 가족들이 먹을 채소도 재배했다.

 

..... 마사가 아늑하고 편안한 곳으로 꾸렸던 트루먼 가정에는 셰익스피어 전집,  빨간색으로 제본된

「플루타르크 영웅전」, 해리가 열 살 때 어머니가 준 네 권으로 된 「위대한 남성과 유명한 여성들

(Great Men and Famous Women)」 따위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녀는 해리가 테니슨의 장시들을 외울 수 있도록 도와 주면서 테니슨에 대한 사랑을 아들과 나누었다.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테니슨 시집은 지금도 트루먼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해리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샀다.

  그러면 해리는 그것을 읽었다."라고 사촌 에셀 놀랜드는 말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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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 여자 대학에서 천부적인 음감을 연마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마사는

해리가 트루먼가에 있는 큰 킴볼 피아노 페달에 발이 닿기도 전에

그에게 소곡이지만 연주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에게 가운데  '다'  음을 알려주었을 때부터 어린 해리는 음악에 매료되었다.
트루먼 가정에서 피아노는 거실에 비치된 가구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가정 샐활의 중심이었다.


.... 그녀는 옆집에 사는 음악 선생님에게 해리를 맡겼다.

그 선생님은 악보를 읽는 새로운 '속성' 방법을 사용해 얼마 안 있어서 해리는

마사가 좋아하는 <봄의 귀환>과 멘델스존의 <무언가>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해리의 솜씨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음률 장치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광고에 그를 등장시켰을 정도였다.  (p94)

 

--- 트루먼가가 인디펜던스에서 보낸 처음 11년은 안정되고 평화로웠다. 
흥분도 잘 하고 곧잘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던 평범한 존 트루먼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마사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던 가정의 수준까지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열렬한 민주당원이었던 존은 지방 정치 무대에서 확고한 기반을 잡았으며,  한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 (1901년 존은 밀 선물거래에 뛰어들어 모든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다)
그것은 해리뿐만 아니라 마사의 희망을 앗아가 버리는 커다란 타격이었다.
그녀에게 교육은 풍족한 삶을 위한 시금석이었다.
시력이 나쁜 탓에 해리는 군인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공부만이 그의 희망이었다.

.... 1914년 임종 때 아버지 존은 해리에게 "나는 실패자였다"라고 속삭였다.
해리는 아버지의 이런 마음 아픈 자기 심판을 언제나 단호하게 부인했다.
경제적으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존 트루먼은 정직한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그의 약속은 보증수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랜뷰 학교들은 조의를 나타내며 문을 닫았고  <인디펜던스 이그재미너>는

"그는 고결한 시민으로 이 지역 사회는 그의 죽음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라고 썼다.

존은 결코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실패자는 절대 아니었다.

 

해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캔자스시 은행에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그가 묵고 있는 하숙집에 캔자스주 아빌렌에서 온 아서 아이젠하워라는 친구도 같이 있었다.
나중에 그 은행의 부행장이 된 그에게는 아이크라고 불리는 동생이 있었다.
당시 아이크의 단 한가지 목표는 아빌렌 고등학교의 풋볼 경기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어린 선수는 나중에 해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p98)

 

해리는 코스모폴리탄 적인 캔자스시의 다양한 문화가 제공하는 것들을 모두 받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캔자스시가, 그리고 그가 꿈속에 그리는 아가씨 베스 월리스가

인디펜던스로부터 전차를 한 번만 타고 가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던 베스는 야구 경기장에서는 강타자로 활약했고,
읍에서는 가장 뛰어난 검술가였으며,  게다가 휘파람도 잘 불었다.

또한 책 읽는 것도 아주 좋아했다.
여섯 살 때 장로교회 주일학교에서 베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하게 된 해리는

죽을 때까지 베스 이외의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라면서 베스가 자신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때문에 기가 죽지도 않았다.

베스는 인더펜던스의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월리스가의 이야기는 마사의 가족사를 따라올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52년 마사 앨런 영이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에서 태어났고,  트루먼이라는 농부와 결혼해서

아이를 세 명 낳았으며,  그곳에서 죽었다는 기본적인 사실들은 알맹이를 놓치고 있다.

마사의 삶은 그야말로 개척 시대부터 우주시대 초창기에 이르는 미국의 역사와 얽혀 있다.

마사는 백 년으로 압축될 수 있는 세계에서 변화가 가장 심했던 시기에 살았다.

 

그녀가 산 94년이라는 세월은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났다.

어려서 마사는 남북전쟁의 여파로 고통을 겪었고,

중년에는 아들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황금 같은 말년에는 대통령인 아들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리고 생존해서 아들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을 본 단 세 명의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마사는 그런 모든 것을 다 목격했다.   그녀는 새로운 것들을,  

적어도 좋은 요소들은 마음 놓고 받아 들었지만 이전 시대의 기준과 믿음에서 벗어나 본 적이 결코 없었다.

강한 의지와 확고한 자치관을 지닌 이 여성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미국의 딸이었다.
마사는 강한 의지와 가치관을 아들 해리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p101)

 

 

 

보니 앤젤로 /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역자 / 이미선 
나무와숲 / 2001.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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