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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 오, 클로디아. 정말 대담하군!

by 탄천사랑 2021. 11. 5.

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워드 부인, 전화가 왔는데요."
클로디아가 콘래드를 끌고 가버리자 브리트는 잠시 당황해서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보았다.
데이빗이 보이지 않는 데 실망한 그녀에게 누군가 말을 건넸다.

 

"여피족들의 여왕인 당신이 이 애엄마들의 틈바구니에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얀 테이블에 몸을 기댄 자세로 술을 들고 지나가는 웨이터들을 모조리 세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젊고도 멋있어 보였다.

 

"데이빗, 잔뜩 취했군요."
"골치 아픈 일들을 잊으려고 마시는 거요.
  당신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잖소."  브리트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난 날과 다름없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 일에 미친 남자들에게만 마음이 끌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정력가라는 사실 때문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지금 데이빗은 약간 조롱하는 듯한 눈길로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그러자 문득 다시 스무 살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라도 불장난을 저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빗은 결코 그런 경박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헤어진 지가 그토록 오래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과 어울리는 상대라는 사실을 그녀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자 문득 이 일이 불꽃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중대한 어떤 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작은 불꽃,

어쩌면 가벼운 불장난이거나 하찮은 연애 사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결혼을 위협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어쨌든 간에 리즈는 친구였고 데이빗 역시 그녀에게 보다 안전한 생활을 약속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일이 진행되는 재미도 있고,  과거를 몰아낼 수도 있으리라.

 

게다가 리즈가 이 일을 알 필요는 없다.
신중한 연애라면 브리트에게 충분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데이빗에게는 격려가 필요해 보였다.
그녀는 포도주를 마시는 데이빗을 보고 리즈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결코 자기 아내에게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데이빗,  당신과 파티에 가본 지 벌써 15년도 더 됐어요."  브리트가 그의 귓가에서 달콤하게 속삭였다.
"전 아직도 당신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말이요?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군.
  불행히도 리즈는 이젠 그렇지 않을 것 같소."  브리트는 그의 음성에서 신랄한 기색을 들을 수 있었다.
"난 지금 그녀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맨 아래 있다오.
  첫 번째는 메트로,  그다음은 아이들이오.
  난 가까스로 세 번째에 들어 있소."

 

이건 자기 연민이로군.
가엾은 남자들 같으니,  남자들은 자기들이 우주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 점을 간과한다면 위험에 처하게 돼.
리즈, 넌 바보야.

 

"데이빗. 여기 있었군요."  사람들 틈에서 리즈가 나타났다.

 

.... 맙소사!  리즈는 오늘 밤 콘래드에게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의
촬영비 명세서를 건네 주기로 했던 일을 상기하고 사무실에서 코트와 백을 낚아챘다.
나가는 길에 그 명세서를 그의 사무실 문 밑에 밀어 넣어둘 작정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파일을 밀어 넣으려던 그녀는 문득 그의 사무실 문이 잠겨 있지 않고 틈이 벌어져 있으며

안에서는 아주 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층 전체는 불이 꺼진 상태여서 어두웠다.
그 순간 리즈는 불을 켜려고 했지만 스위치가 엉뚱한 데 붙어있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녀는 천천히 문을 열고 스위치를 더듬어 보았다.
그때 문득 안쪽에서 옷이 스치고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서 콘래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꼼짝 않고 서 있던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스위치를 올렸다.
밝은 빛살이 쏟아지면서 클로디아가 보였다.
그녀의 라 페를라 팬티는 발목까지 내려와 있었고 콘래드는 성급히 바지 앞자락을 수습했다.
당황한 클로디아가 휴지통을 콘래드의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

 

담배꽁초며 플라스틱 컵,
구겨진 종이 따위가 콘래드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리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오, 클로디아. 정말 대담하군!"  그녀는 킥킥거렸다.
"휴지통은 당신이 써야지.
  콘래드 전무님이야 어디서나 그러는 걸!"  (p155)

 


이 글은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역자 - 한기찬
둥지 - 1992.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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