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어디로 가십니까, 워드 부인?"
리즈의 운전수가 그루초 클럽의 문을 열고는
리즈와 브르트를 번쩍이는 자가 XJS 뒷자리에 올라타도록 거들어 주었다.
"노팅 힐이예요.
짐. 내 친구가 차를 둔 곳까지 가야 하거든요."
브리트는 등을 기대고 좌석의 부드러운 크림색 가죽 시트를 쓰다 듬었다.
그녀는 그 냄새를 마셔보았다.
시트에서는 다른 차와는 다른 진짜 가죽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어째서 이 모든 것을 가진 리즈가 행복해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운전수가 딸린 자가용을 굴리는 직장 여성이 얼마나 된다고,
"이 차, 참 좋구나.
이 차를 구하려고 힘들었겠지?" 리즈가 웃었다.
"사실 난 XJS가 아니고 스테이션 웨건을 요청했지.
콘래드 전무가 어떤 얼굴을 했는지,
네가 봐야 하는 건데!
그는 '그건 애들이나 싣고 다니는 차요!.
당신한테는 크림색 가죽 시트가 딸린 까만 XJS를 주겠소.
LWT의 편성자도 그런 차를 타고 다니오.
당신이 변두리 가정주부 같은 차를 타고 돌아다니도록 할 수는 없단 말이요!'하고 말했어."
표본이군, 하고 브리트는 쓸쓸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성공의 대가에 대한 리즈의 경멸은 어느 정도는 그녀를 향하고 있다는 기분을 피할 수가 없었다.
XJS를 갖고 싶다고 해서 뭐가 나쁜가?
아니면 포쉐는 어떤가?
브리트라면 틀림없이 그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 리즈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브리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네 님편은 이 고해성사 어떻게 생각하니?
그걸 그의 경쟁지에 실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어?
<뉴스>를 밀쳐내려는 <월드>로부터 직원까지 빼낸 로간 그린이라면 아마 몸서리를 칠걸."
그랬구나! 그래서 데이빗이 그렇게 정신이 딴데 가 있는 사람처럼 굴었던 것이다.
맙소사, 대체 왜 그는 그 사실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녀는 하필이면 <데일리 월드>에 사실을 얘기했던 것이다.
남편은 결코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리즈는 자신의 얼굴에 떠오른 불안한 표정을 브리트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차 안이 어두운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솔직히 말해서 브리트,
난 모르겠어.
우린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거든." 브리트는 우아하게 그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결혼에도 문제가 생기겠군. (p89)
.... 남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선
여자들이 손톱과 이빨을 모두 동원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건 인생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 아이라도 생기면 여자는 전혀 다른 우주에 속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리즈는 한 친구에게 아기가 생기면 별문제가 없을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리즈는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든가 자유가 없어진다든가 하는
흔한 답변이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는, 그건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그 짜릿한 느낌을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아이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달려갈 때의 그 가슴죄는 기대감 말이야.
그건 꼭 애인을 만나려 가는 것과 같다구."
친구들 중에서 올바른 소리를 해준 건 이 친구뿐이었다.
그녀는 제이미를 낳았을 때 그런 강한 정열이 솟아날지 미처 알지 못했다.
태어난 다음날 쇼올에 싸여 누워 있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그건 아마도 아이를 향한 사랑은 순수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끼리의 사랑에는 당사자들의 과거와 갈망과 불안까지도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복잡하게 얽히고 서로 얽매이게 한다.
그런데 아기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아기는 그저 엄마를 원할 뿐이다.
그때 엄마가 느끼는 사랑은 소박하고 본능적이고 순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공한 여성이라는 면에서 꽤 앞장서 가고 있던 직장여성인 그녀는
직장으로 돌아갈 때면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갓난애를 다루는 일이 너무 고된 일이어서인지
현관을 나서서 소독기라든가 기저귀 따위의 세계에서 벗어나면 거의 안도감마저 들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일단 직장에 나가면 아기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데이지를 낳게 되었다.
이번 산휴(産休)는 좀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길고도 아름다운 여름날 동안 가정과 아이들의 리듬에 푹 잠겨들게 되었고,
비로소 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의 삶 한 부분에 대해 문을 닫고 직장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게 되었다.
좌회전을 하여 켄싱톤 처치 거리로 들어셨을 때
리즈는, 허리를 굽히고 지하철로 발걸음을 서두르던 한 남자가
운전수가 딸린 자동차 뒷자석에 앉아 있는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이런 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8만 파운드라는 봉급에,
벼락부자도 될 수 있는 메트로 주식 매매권,
그리고 내키기만 하면 얼마든지 뉴욕과 LA를 들락거리고,
개인 운전수를 두며 살 수 있는 여자가 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게다가 일은 매력적이고,
그녀는 텔레비젼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여성의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리즈 워드야말로 성공한 여자였다.
약간의 가책과 후회가 있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의 대가치고는 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97)
※ 이 글은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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