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 베이커리 - 제5회 크라운베이커리 주부 글잔치」
기도서의 시몬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구가 있다.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가지 끝을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질 때면
나는 이 시를 읊조리며 또 다른 한 사람의 시몬을 생각하게 된다.
그를 만난 80년대는 정국이 혼란한 시기였다.
청춘의 속성이 혼란에 빠지기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반정부 학생 시위와 최루 가스로 대학 가는 비틀거렸다.
친분 잇는 고향 선배가 메가폰을 잡고 시위를 지휘하다 교정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어느 날은 교정에서 한 친구가 사복형사에 쫓겨 달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교정을 가로질러 본관 앞의 가파른 충계를 달음박질쳐 올라 도서관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희번덕이며,
형사는 잘 훈련된 다리로 따라잡아 길게 땋아 내린 머리채를 낚아채었다.
그는 사정없이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악을 단죄하러 온 사자 인양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고,
친구는 친구대로 무어라고 계속 구호를 외쳐대었다.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 형사를 향하여 야만적이라고 힐난을 퍼부어대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교정에서 쫓고 쫓기는 그 두 사람은 모두 자기 나름의 신념대로 행동한 애국자였고,
그것을 멀거니 보고 서 있는 나는 단지 회색분자였다.
나는 소위 '의식화'가 되기 힘든 사람이었던 것 같다.
친구가 부르짖는 정의보다도 그녀의 머리채가 무사하지 못할까 가 더 걱정이었다.
전쟁영화 속에 떨어진 엑스트라 배우처럼 몇 번인가 시위 행렬에 가담하였다가도 전투 태새를 갖춘
경찰과 학생들이 적군 대하듯 대적하는 걸 보면 겁이 나서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하였다.
그렇다고 학구파도 아니었다.
앞날에 대한 목표의식도 없어 그저 팝뮤직에 심취해 있었다.
눈을 뜨면 아편 환자처럼 음향을 최대로 높여 음악을 듣고, 금단 현상이 나타나면 음악다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지하 다방을 나와 학교 앞 거리에 나서면 처음 와 보는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듯
갈 곳을 몰라 망연하였고, 하늘의 태양이 고호의 그림에서처럼 이글거리는 것 같은 현기증이 일었다.
아무리 큰소리로 웃어 보아도 진정으로 기쁘지 않았고 춤을 추어도 즐겁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즐거움의 농도가 짙으면 짙을수록 그 뒤에 오는 허탈감도 그와 비례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시간의 흔적만 기억 속에 맴돌 뿐, 내 손안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때 극심한 허무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할머니를 잃어 벼리고 난 이후,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은
어린 날의 일들은 자욱한 안개에 몸을 숨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나를 괴롭혔다.
아마도 그래서 일찍부터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세월을,
시간의 위력을 인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겨우내 차거운 감방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따뜻한 방 안에서 더운밥을 먹는구나'하는
자책감에 몇 번인가 밥술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에게는 깜깜한 밤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배처럼 확실한 신념이 있었으리라.
거기에 비하면 나는 해답을 찾지 못한 수많은 난제들을 안고
길 잃은 배처럼 허무의 바다 위를 끝없이 표류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쩌면 나는 등대보다 밝고 영원한, 더 높은 가치를 찾아 헤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이 모든 현상에 대하여 신(神)에게 물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교회와 성당 둘 중 어느 곳을 택해야 될지를 몰라 우선 한 번씩 찾아가 보기로 작정하였다.
당시 내가 살던 신반포는 아직도 개발이 덜 된 상태인지라 아스팔트에 질식당하지 않은
흙길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정 붙일 만한 곳이었다.
아파트 사이의 공터에는 누군가 나무토막으로 발목을 치고 아기자기하게 일구어 놓은 텃밭도 있었다.
햇볕이 좋은 봄날, 나는 거기 어디쯤 있다는 성당을 찾아가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그도 마침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가는 길이라며 흔쾌히 앞장을 섰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를 나이어린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지 않다. 그는 마른 몸매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지금도 그를 떠올리면 흑백사진처럼 검은 옷차림으로 나타난다. 눈을 감으면
검은 옷의 실루엣으로 그가 다가와 부드러운 표준말의 억양으로 진지하게 얘기하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는 원래 가난한 아이들이 있는 잠원성당에 다니는데 그날은 특별한 일로 반포성당에 가는 중이라 했다.
신(神)을 만나러 가는 길위에서 우연히 만나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 흙길과 텃밭과 봄볕 따위의 애기를
주고받으며 나란히 걸었다.
그는 또 내게 신앙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진솔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때로는
맹목적인 믿음도 필요하더라고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나는 그가 어린 학생답지 않게 생각이 깊은
것이 놀라웠다. 정작 몇 년 더 영상인 나는 사교적인 화술에 능하지 못한 터라 아마 적절한 포장의 예도 갖추지
않고 떠듬떠듬 고민을 털어놓았을게 뻔하다. 그는 자상하게 들어주었고, 그럴수록 나는 요란한 차림새에
겉멋만 들어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키 큰 그의 곁에 서 있으려니 자꾸만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성당이 가까워 오자 첨탑 위의 닭 문양을 '베드로의 닭'이라며 그 유래도 일러주었다. 그때 받은 인상이 얼마나
신선한 것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닭그림을 보면 그를 생각하게 된다.
성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쓴 사람들이 일어섰다 않았다 하는 광경은 생경하였다.
그 무리 속에 엉거주춤 서 있으려니, 그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덤은 표지로 된 조그마한 책자였다.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으레 주는 것이려니 생각하여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 다시 구경꾼의 위치로 되돌아가 그의 존재는 잊어버렸다.
처음 보는 미사는 나를 위한 것은 아닌 듯 좀처럼 친근감이 들지 않았다.
거기서도 나는 성가 한 소절 부를 줄 모르는 이방인이었다.
오만한 젊은 지성이 무작정 신앙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지루한 미사가 끝나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어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심코 그가 준 책을 펼쳐보니 기도서였다.
그런 것이 어디에 소용 닿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어 '별 의미는 없구나'하고
덮으려는데 맨 뒷장에 무언가가 씌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당신은 스스로 당신을 구원하시려 성당에 오신 분,
당신은 구원받으리라" -Simon- 81. 4. 19.
그랬었지! 그가 자신을 12 사도 중 혁명당원 시몬이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구르몽의 시에 나오는 시몬을 생각했었다.
그가 말하는 '구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행간에 실린 그의 마음을 알아보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그 길로 다시 성당으로 달려 나갔다.
미사가 끝난 성당에는 몇 명의 참배자가 있을 뿐,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발끝으로 애꿎은 흙만 툭툭 차 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오던 그날,
길가 텃밭에는 무심한 채소들만 무성하였다.
그가 내게 배푼 마음 한 조각은 웅변보다 힘이 있고 시위 행렬의 구호보다 강하게 마음을 잡아끌어,
그해 나는 주저 없이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 기쁜 소식을 그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으나 곧 그 동네를 떠나오게 되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며 서로 옆모습 한번 흘낏 쳐다본 그와의 만남은 내 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런 완벽한 순수의 순간들은 삶을 밝혀주는 별빛과도 같아,
그것으로 결국엔 지나가버릴 이 허망한 지상에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때때로 살아가는 일이 힘겨울 때마다 나는 질화로 같은 그 사연들을 식을 새라 꼭 부여안는다.
그리하여 데워진 가슴의 온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다.
후일 가정을 이루고 아들을 얻었을 때, 약속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의 세례명을 '시몬'이라 명명하였다.
그가 준 이 기도서에 어린 시몬의 손때가 묻어 쌓일 즈음엔 또 어떤 만남이 예비되어 있을까.
가을이 깊어 낙엽이 내려 쌓이면 나는 버릇처럼 구르몽의 시를 읊조린다.
발 밑에서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면 어딘가에 있을 그를 생각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여 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p13)
- 이원숙 -
(주)크라운베이커리 - 이 작은 풀꽃 하나(비매품)
(주)누리기획 - 1995.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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