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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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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래의 길

by 탄천사랑 2021. 9. 24.

 「 선농문화포럼 -  추모글」

 

 

 

살래의 길

나흘 동안 블로그에 글을 못 올렸으니 친구들이 궁금할 때가 되었다.
나흘 동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게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열심히 먹으면 먹을 수는 있었다,  한 번 토하고는 소화제 덕을 보면서 잘 견뎠다.
드디어 오늘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 수 있게 됐다.


60년이 되어가는 까마득한 옛날이었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내게 그러셨다.

 

"진형이는 글을 참 잘 쓰네... 꾸준히 글을 써봐.
  쓸수록 빛이 나는 것이 글이거든..."


세월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라도 어렵고,  세상도 어렵고,  집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고...
아르바이트할 시간도 모자라는 와중에 한가롭게 글은 무슨 글을...
노벨문학상을 받겠다는 포부는 고사하고 흔하게 응모하는 신춘문예도 한 번 도전하지 못했다.
대학원 진학도 접었다.
대신 전설처럼 월급 많이 준다는 (주)대우에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도 글쓰기를 놓지 않은 덕분에 대학에 가서 강의도 좀 할 수 있었고
틈틈이 책도 내고 번역서도 꽤 많이 출판하였다.
그렇게 일생을 살다 보니 어려운 세월이 다 지나가고 고희(古稀)를 넘어
이제는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형편이 되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기 암이란다.
무슨 운명이야?   하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살래의 길'이 뭐 별 것인가?
목숨을 걸 만큼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으면 '살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 같으면 '죽을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5월 한 달,  무념무상의 경지로 들어가 '삶의 길'을 가기 위해 다시 노트북을 켰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싶고,   글을 쓰면 행복하다.
'살래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5월에는 오랜만에 사봉의 책이 한 권 나오게 될 것이다.
이름하여 <사봉의 심리여행>  북 디자인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두를 것 없으니 천천히

천천히  '살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p18)

 


Ω  지난 5월에 출판한 신작  <사봉의 심리여행>은 교보문고 POD 도서 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 6월 29일 지병으로 별세하기 전까지 블로그에 남긴 투병일지 중 한 대목을 전재(轉載) 한다. 

20회 조진형 선생은 생전에 선농포럼에서 총 4회 (2011, 2013, 2015, 2017) 기부강좌를 펼쳤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농문화포럼 통권 25호  http://www.sunforum.org
사봉생각 블로그 조진형    https://blog.naver.com/sabong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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