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농문화포럼 - 추모글」
살래의 길
나흘 동안 블로그에 글을 못 올렸으니 친구들이 궁금할 때가 되었다.
나흘 동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게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열심히 먹으면 먹을 수는 있었다, 한 번 토하고는 소화제 덕을 보면서 잘 견뎠다.
드디어 오늘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 수 있게 됐다.
60년이 되어가는 까마득한 옛날이었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내게 그러셨다.
"진형이는 글을 참 잘 쓰네... 꾸준히 글을 써봐.
쓸수록 빛이 나는 것이 글이거든..."
세월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나라도 어렵고, 세상도 어렵고, 집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하고...
아르바이트할 시간도 모자라는 와중에 한가롭게 글은 무슨 글을...
노벨문학상을 받겠다는 포부는 고사하고 흔하게 응모하는 신춘문예도 한 번 도전하지 못했다.
대학원 진학도 접었다.
대신 전설처럼 월급 많이 준다는 (주)대우에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도 글쓰기를 놓지 않은 덕분에 대학에 가서 강의도 좀 할 수 있었고
틈틈이 책도 내고 번역서도 꽤 많이 출판하였다.
그렇게 일생을 살다 보니 어려운 세월이 다 지나가고 고희(古稀)를 넘어
이제는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형편이 되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기 암이란다.
무슨 운명이야? 하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살래의 길'이 뭐 별 것인가?
목숨을 걸 만큼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으면 '살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 같으면 '죽을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5월 한 달, 무념무상의 경지로 들어가 '삶의 길'을 가기 위해 다시 노트북을 켰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싶고, 글을 쓰면 행복하다.
'살래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5월에는 오랜만에 사봉의 책이 한 권 나오게 될 것이다.
이름하여 <사봉의 심리여행> 북 디자인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두를 것 없으니 천천히
천천히 '살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p18)
Ω 지난 5월에 출판한 신작 <사봉의 심리여행>은 교보문고 POD 도서 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 6월 29일 지병으로 별세하기 전까지 블로그에 남긴 투병일지 중 한 대목을 전재(轉載) 한다.
20회 조진형 선생은 생전에 선농포럼에서 총 4회 (2011, 2013, 2015, 2017) 기부강좌를 펼쳤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농문화포럼 통권 25호 http://www.sunforum.org
사봉생각 블로그 조진형 https://blog.naver.com/sabong50
'문화 정보 > 독서정보(기고.대담.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계(警戒)하는 경계(境界)인의 조각들 (0) | 2021.11.28 |
---|---|
삶의 의미와 내면의 힘 - 정재우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윤리사무국장) (0) | 2021.11.10 |
청춘의 독서 (0) | 2021.01.21 |
토지 (0) | 2014.05.04 |
그건 사랑이었네 - 120살까지의 인생 설계 (0) | 2010.08.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