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 「칼바르트가 쓴 모차르트이야기」
나는 간단히 '모차르트에 관한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한 인간이나 그의 작품에 관한 '고백' 이란 개인적인 일인데,
이렇게 개인적인 일을 말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나는 물론 음악가도 음악학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에 관한 한, 나는 충분히 고백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위대한 음악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모차르트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요술피리*' 중의 몇 소절 '타미노, 오! 나의 행복이여...'를 아버지가 피아노로
연주하던 그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몇 소절은 나를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그 후 나는 성장했고 이제 나이 많은 몸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차르트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들었고 아주 다른 것을 경험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모차르트는 더욱더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신학 노선*으로 보아 내가 모차르트와는 전혀 다른 음악가를
발견했어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당치 않은 소리라고 고백하는 바입니다.
축음기의 발명으로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매일 아침 우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다음,
그날 신문 기사에 관한 이야기는 회피한 채*, 곧장 교의학(敎義學)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사실도 내가 고백해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
또 한 가지 고백하는 바는,
만약 내가 장차 천국에 간다면 우선은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그다음에 비로소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루터, 칼뱅, 슐라이에르마허*의 안부를 묻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어떤 식으로 해명해야 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관해 아래와 같은 해명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즉 '일용할 양식' 속에는 '연주'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모차르트'가 연주되는 것을 듣습니다. 그것이 젊은 모차르트이건 나이 든 모차르트이건
상관없이 오직 모차르트만을 듣습니다.
연주란 능력을 실현하려는 의지이고 따라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연주의 예술을 모차르트에게서 듣습니다.
아름다운 연주의 전제조건은 모든 사물의 중심을 아는
(왜냐하면 모든 사물의 처음과 끝을 알기 때문에) 어린이적인 지식입니다.
나는 이 사물의 중심으로부터, 또 처음과 끝으로부터 연주되는 모차르트를 듣습니다.
나는 모차르트가 스스로 설정한 절제를 듣습니다.
이 절제는 그에게 만족함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설정한 것인데,
이것은 내가 모차르트를 들을 떄에 나에게도 만족을 주며 용기와 위로를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단지 모차르트에 관해서만 고백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칼 바르트
1955년 2월 13일, 일요일판 Neue Zuricher Zeitung(NZZ)에서. (p13)
참고.
요술피리 : Zauberflote는 흔히 일본식 번역인
'마적(魔笛)'을 우리말로 직역한 '마술 피리' 로 번역하여 쓰고 있으나,
마법이나 마술의 우리말의 뜻은 악마적인 이적으로서 이 오페라의 타미노라는 인물의 성격이나
그의 피리의 기능과 해학성으로 보아 맞지 않는 표현이다.
신학 노선 : 그의 신학은 예수 그리그도 중심적이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특별 계시를 주장하였고 삼라만상을 통한 일체의 자연계시적인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신학 노선은 대표적인 저서 <교회교의학>의 곳곳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신학 노선에 위배되는,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과 로마 가톨릭 교회를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 노선으로 볼때 끝까지 카톨릭 신자였으며 그다지 신앙적인 열심히 없었던 모차르트보다는
경건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로서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던
바흐(Johann Sebastian Bach)와 같은 음악가를 더 좋아해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뜻이다.
회피한 채 : 그러나 이 말은 그가 신문을 읽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려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성서와 신문,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 는 <고백론>으로 유명한 고대 기독교의 위대한 사상가이며 교부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신학대전>을 쓴 중세 최대의 신학자이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Jean Calvin)은 종교개혁자들이다.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는 19세기 최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옮긴이의 주석에서. (p102)
칼 바르트 / 칼바르트가 쓴 모차르트이야기
역자 / 문성모
예솔 / 2006.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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