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웅 / 「닦는 마음 밝은 마음」
사람을 사귈 때는 소 고삐 길이만큼 사이를 두고 사귄다.
소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날카로운 뿔에 상처를 입거나 좋다고 몸을 비비고,
혓바닥으로 핥는 바람에 몸에 오물이나 침이 묻는다.
반면에 너무 멀면 고삐를 놓치어 도망간다.
도망간 소는 채소밭을 망치고,
잡으려 하면 손길이 닿기 전에 다시 도망가 버린다.
소 고삐 길이만큼의 간격은 소를 다스리는 데 최적의 거리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가까우면 탐진치(貪.嗔,痴,)를 닦지 못한지라 상대에게서 결점을 먼저 발견한다.
상대의 결점이 내 마음 속에 든 나의 결점인 줄 모르고 상대만 나무란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결점으로 나를 평가한다.
아이들이 너무 친해서 까불면 눈청에 눈물 난다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입장에서 남을 너무 가까이 사귀면 약한 마음인지라
좋은 때는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모자라 살점이라도 베어 주고 싶으나,
실큼해서 미워질 때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독(毒)이 올라온다.
좋아한다는 미명 아래 바라는 마음을 연습하며 결과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가까우면 등잔 밑이 어둡듯이 장점이 보이지 않고 너무 멀면 장단점이 함께 보이지 않는다.
닦는 이는 상대의 장단점이 함께 보이지 않고 오직 상대가 부처님으로 보여야 한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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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놓은 봉황은 보일지언정 바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수놓은 봉황은 보일지언정 바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말이 있다.
하품 나는 바늘로 얼마나 지겨운 날들을 노력했겠는가?
피눈물 나는 고생은 나타내지 않고 남에게는 찬란한 봉황의 멋을 보여 주는 미덕이랄까?
이와 같이 남에게 걱정 끼칠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살행(菩薩行)이다.
세파(世波)에 찌든 군상들에게 닦는 이미지 아품을 주어서는 안된다.
마음의 고통이 많은 이들에게 감로수(甘露水)를 베풀려는 자비는 늘 연습되어야 한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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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이 버릇 고치다 잘못하여
조주 스님께서 공부가 익으신 뒤 천하를 한 바퀴 돌면서 많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내리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전국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중국 산동성의 어느 암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셨을 때 일이다.
친구의 12살 난 사미승이 밀떡 두 개 반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왔다.
조주 스님이 손남이시니 밀떡을 먼저 올릴 줄 알았는데 자기 스님에게 먼저 한 개를 올렸다.
조주 스님께서 다시 생각하시길,
이제 남은 한 개 반 중 한 개는 당신께 올리고 반 개는 사미승이 먹을 줄 알았는데
조주 스님께는 드리지 않고 한 개 반을 자기 앞에 당겨 놓고 먹는다.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는 조주 스님인지라 친구에게 핀잔을 주었다.
"여보게,
자네 저 아이 잘 가르치게." 친구가 대답했다.
"남의 아이 버릇 고치다 잘못하여 아이 버리기 싫네."
그때 조주 스님은 크게 깨치셨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두고 잘못 가르친 일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뒤돌아보게 되셨다.
그 어린 사미는 도인을 깨치게 한 공덕을 지었다.
남을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부처님 마음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심부름하는 마음으로 그네들을 만지면 밝은 일이나,
내가 만지고 내가 가르친다면 내 아상(我相)이 작용하여 배우는 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또 가르치는 이의 그림자를 받게 된다.
그때 서로 어두운 업보(業報)들이 충돌하면 밝은 일은 못된다.
흔히들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남을 구속하고 자신의 닦지 못한 독심(毒心)으로 얼마나 남을 괴롭히는가!
완벽하신 부처님의 경우라면 삼세(三世:과거,현재,미래)를 혜안(慧眼)으로 보시고
그 사람이 지어 온 바를 참작하여 밝게 이끌어 가시겠지만
그렇치 못한 경우 아이는 영영 비뚠 길로 갈 수 있고 반항심으로 일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와서 물을 때 성실하게 대답하고 묻지 않는데 억지로 가르치지 않는다.
꼭 가르치고 싶을 때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을 닦고 가르치면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나,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칠 때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마음에 짜증이 일어난다.
짜증이 일어나면 이미 불사(佛事)는 아니다.
그때는 내 정도가 이 정도인 줄 알고 부지런히 그 짜증을 바쳐야 하겠다. (p217)
김재웅 / 닦는 마음 밝은 마음
용화 / 1991.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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