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 앨봄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976년 봄, 첫 수업의 시간.
나는 모리 교수님의 널따란 연구실에 들어선다.
사방 벽의 선반마다 꽂힌 수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회학, 철학, 종교, 심리학에 관한 서적들.
마룻바닥에는 커다란 융단이 깔려 있고,
방 밖으론 캠퍼스의 보도가 내다보인다.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열댓 명이 모여서 공책과 강의 요목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부분 청바지에 운동화, 면 셔츠 차림이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강의니 결석하기가 쉽진 않겠다고 속으로 중얼댄다.
수강하지 말까?
"미첼?"
모리 교수님이 출석을 부른다. 난 손을 든다.
"미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좋은가? 아니면 미첼이 더 낫겠나?"
선생님한테 이런 질문을 받기는 난생처음이다.
난 노란색 터틀넥 스웨터와 초록색 코르덴 바지 차림에 이마에는 은빛 머리칼이
덥수룩하게 덮인 교수님을 찬찬히 쳐다본다. 그는 미소 짓고 있다.
"미치가 좋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미치라고 부르거든요."
"좋아, 그럼 나도 미치로 하지."
교수님은 마치 거래라도 성사된 듯 말한다.
"그럼, 미치?"
"네?"
"언젠간 자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주길 바라네." - p43 -
--
“그럼, 우린 화요일의 사람들이군.”
“화요일의 사람들이죠.”
나도 똑같이 말했다. 모리 교수님은 미소를 지었다.
“미치,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그게 뭐죠?”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그는 소곤거리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p104 -
--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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